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존재했다가 없어지게 되는 걸까. 에너지가 있다가 에너지가 없어지는 걸까. 어디로부터 어떻게 사라지는 걸까. 이것은 존재, 모습, 형태에 대한 이야기이다.
잠자는 동안에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했었나 보다. 아침에 문득 할머니의 말이 생각났다.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칼국수 맛이 생각이 났고, 할머니가 믹서기에 갈아주신 토마토+키위주스 맛이 생각났고, 할머니가 사과를 숟가락으로 긁어서 주신 그 맛이 생각이 났다.
아빠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어릴 때 너무 가난해서 돈이 없을 때 할머니가 어린 아빠의 손을 붙잡고 너는 공부하라며 돈을 주셨다고 했다. 7형제 중에서 공부를 잘했던 아빠한테 공부하라고 지원해 주셨다고 했다. 모양은 각기 다른데 모두 사랑이었다.
아이들은 어차피 둥지를 떠날 거라고, 허무하다고 하는 말속에,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인간으로 태어나 온 우주를 다해 사랑해 본 경험을 느끼고 아이와 부모가 같이 성장하는 경험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큰 행복 중의 하나이다. 어떤 것의 씨앗은 할머니로부터 왔다. 보이지 않지만 내가 받은 사랑은 어떠한 형태로 내 주위에 영향을 끼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몇 년 동안 잊고 지내다가, 몇 년 전 삶이 너무 힘들어서 몇 날 며칠을 울다 잠들고, 불면증이 와서 잠도 못 자고 수면제를 먹고 잠든 날,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셨다. 병아리들이 7마리 정도 있었는데 병아리들을 보자기에 다 싸서 내가 다 가져갈 테니 너는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렇게 죽을 것만 같이 힘들 나날들이었는데 할머니가 꿈에 나온 뒤로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들었다. 사랑의 힘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인간의 삶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천천히 다시 채워지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형태로 할머니께 받은 사랑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진다. 이제야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아이를 잘 키우려는 것이 아닌 사랑하려고 키우는 거라고,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러 온 거라고, 인간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이 하나씩 내 삶을 통해 증명해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죽은 뒤에도 어떠한 형태로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것이 살아가는데 자양분이 되고 삶의 이유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