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고, 쓰다 (23) - 우리 할아버지

by 숨CHIP

제목 : 우리 할아버지

작가 : 존 버닝햄 글/그림. 박상희 옮김

출판사 : 비룡소




어린 손녀가 할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바퀴가 달린 일인용 초록 소파에 앉아 사랑스런 미소를 지으며 손녀를 맞이합니다. 할아버지의 손은 어찌나 큰지 손녀의 얼굴만 합니다. 소파 옆에는 작은 탁자가 있고 그 위에 파이프 담배와 성냥이 놓여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심각한 얼굴로 화분들을 바라봅니다. 씨앗을 많이 뿌린 탓인지 식물들이 자라기에 자리가 부족할까 봐 걱정합니다. 손녀는 할아버지의 걱정과는 다르게 흙에 사는 벌레들도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는지 묻습니다. 유리로 지어진 온실 한쪽에는 화분에 심어 놓은 식물이 자라고 다른 쪽에 만들어 놓은 화단에는 조금 큰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온실 곳곳에 물조리개, 겹겹이 쌓인 크고 작은 빈 화분들, 삼지창, 지지대 등의 원예 도구와 구근, 씨앗 봉지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집이 난장판입니다. 색종이와 가위, 인형들, 책, 공, 인형 유모차 등이 바닥에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할아버지와 손녀가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노래가 아닌 각자 같지만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간호사 모자를 쓴 손녀는 커다란 화분과 강아지가 있는 유치원에서 선생님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친구들과 같이 배운 노래를 부르고 할아버지 역시 나이가 들어서도 잊히지 않는 어릴 적 자주 부르던 노래를 부릅니다.


할아버지가 소파에 앉아 곰과 여자아이 인형을 양팔에 안고 있고, 간호사 모자를 쓴 손녀는 아기 인형을 안고 있습니다. 유모차 안과 파이프와 성냥이 놓여 있는 탁자 아래에 인형들이 이불을 덮고 자고 있습니다. 장난감 청진기와 빈 찻잔도 있네요. 할아버지가 안고 있는 곰 인형은 여자아이라고 손녀가 알려줍니다. 원피스에 뾰족구두, 목걸이를 한 곰이 거울이 달린 화장대 앞에서 화장을 하는 장면을 손녀가 설명해 줍니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날입니다. 하트 모양의 어리연이 자라고 있는 정원 연못에는 신이 난 개구리가 비를 맞으며 폴짝폴짝 뛰어다닙니다. 할아버지의 이층집 앞마당에 손녀의 네발자전거와 손수레, 커다란 화분이 비를 맞고 있습니다. 불이 환하게 밝혀진 이층 창을 통해 할아버지와 손녀의 실루엣이 보입니다. 할아버지가 노아의 방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자 손녀가 묻습니다.


할아버지, 그럼 우리 집도 배가 되나요?

참 엉뚱하고 아이의 상상력은 한계가 없습니다.

두 사람이 마냥 사이가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가끔 사소한 말실수로 서먹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합니다. 손녀의 어떤 말에 할아버지의 마음이 상했나 봅니다. 손녀와 할아버지가 서로에게 등을 지고 있습니다. 손녀는 슬픈 표정을 하고 있고 신문을 든 할아버지의 입은 삐죽하게 앞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사람은 다시 사이가 좋아집니다. 하늘이 맑고 푸른 날 정원 화단에서 두 사람은 간식을 먹습니다. 중절모를 멋지게 쓴 할아버지가 초코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앉은 의자 아래에는 테니스공을 입에 문 강아지가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빨간 벽돌을 쌓아 만든 화단 턱을 테이블 삼아 손녀는 인형들에게 간식을 만들어 줍니다. 빨간 벽돌을 갈아 만든 것인지 할아버지가 먹고 있는 초콜릿이 아니라 딸기라고 알려줍니다. 곰과 쥐, 여자아이와 유모차 인형들이 손녀가 만드는 간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단에는 종류별로 다양한 식물과 꽃들이 일정한 구역을 차지하며 자라고 있습니다. 화단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할아버지의 집이 보이고 오른편에는 온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손녀가 타고 온 네발 자전거 뒤로 마당을 평평하게 만드는 커다란 롤러가 보입니다.


파란 하늘 아래로 커다랗고 폭신폭신한 뭉게구름이 떠다니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녀는 언덕 아래로 보이는 바닷가에 가는 중입니다. 할아버지는 이동식 의자와 점심이 든 바구니를 들었고 손녀는 모래놀이 장난감을 양손에 들고 있습니다. 힐긋힐긋 보이는 바다에는 배가 한 척 떠 있습니다. 손녀는 온종일 바닷가에서 놀고 싶지만 네 시에는 차를 마시러 돌아가자고 할아버지가 말합니다. 찻주전자와 찻잔, 디저트를 담을 접시 그리고 머핀과 조각 케이크가 꽃과 함께 차려진 에프터눈 티 시간이 그려집니다. 바닷가로 가는 언덕을 자세히 보면 언덕 구석에 누군가가 버리고 간 빈 깡통과 컵 등이 보입니다.

바닷가 해변에 모래로 만든 양동이 모양의 모래 벽돌이 나란히 놓여 있고 벽돌 위에는 나무막대가 꽂혀 있습니다. 막대와 막대를 줄로 연결하여 손수건 등을 말리고 있습니다. 모래 벽돌의 틀이 되는 양동이와 모래 삽이 보이고 끈이 떨어진 샌들, 파도에 밀려온 불가사리와 조개껍질이 정겹습니다. 할아버지는 중절모를 푹 눌러쓴 채 이동식 의자에 기대어 낮잠을 자고, 손녀는 계속해서 양동이로 만든 모래 벽돌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래 벽돌 위에 세울 나무 막대가 보이지 않습니다. 손녀는 막대가 필요하여 부지런히 막대 사탕을 먹고 있습니다. 여러 개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막대 사탕을 더 사달라고 할아버지에게 조릅니다. 관광객도 많이 찾아오는 해변인지 저 멀리에 호텔과 리조트도 있습니다.


뒷좌석에 인형을 태우고 네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손녀 앞에서 할아버지가 줄넘기를 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렸을 적에 굴렁쇠를 가지고 놀았다고 알려줍니다. 손녀가 태어날 때부터 할아버지였던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손녀에게는 신기합니다. 할아버지 집 창고에는 낡은 크리켓용품이 어지러이 널려 있습니다. 창고는 아주 오랜 시간 방치되었는지 창고에는 바람에 실려 들어온 낙엽과 커다란 거미줄이 쳐져 있습니다.


오랜 시간 호숫가에 자리를 잡고 자라 온 커다란 나무에 붉고 노란 낙엽이 활짝 피었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강에 내려앉아 강을 물들입니다. 들판에는 소 한 마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고 보트에 탄 할아버지가 낚시를 하고 있습니다. 낚시를 할 줄 모르는 손녀는 지루한 표정으로 통에 물을 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물고기를 잡아 저녁 요리를 만들 계획입니다. 그러자 손녀는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할아버지, 고래를 잡으면 어떡하죠?

손녀의 머릿속에는 고래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할아버지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온 마을에 흰 눈이 내렸고 마을 언덕에 아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강아지와 함께 썰매를 타는 아이, 아빠와 함께 썰매를 타는 아이들, 언덕 아래로 눈을 밟으며 달리거나 친구와 힘을 합쳐 커다란 눈을 굴리는 아이들 속에서 강아지도 신이 나 같이 달립니다. 어린 시절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떠오른 할아버지가 꽁꽁 얼어버린 강으로 손녀와 함께 썰매를 끌고 나왔습니다. 어린 시절처럼 신나게 뛰어보고 싶지만 위태위태 나아갈 뿐입니다. 들고 온 지팡이도 소용없어 보입니다. 그런 할아버지가 걱정이 되는지 손녀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줍니다. 아파리 하나 없는 나뭇가지에는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까마귀 두 마리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약병과 연고, 체온계, 알약, 보온 물주머니가 놓여 있습니다. 성냥과 파이프 담배가 놓여 있던 테이블에도 종류가 다른 약병과 물컵이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두 눈이 퉁퉁 부어 있고 무릎 이불을 덮은 채 힘없이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아픕니다. 그래서 오늘은 손녀와 놀 수 없습니다.


손녀는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어린이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TV를 보고 있습니다. TV를 새로 샀나 봅니다. TV에는 바퀴도 달려 있어 어디에서든 편하게 시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가전제품이 들어와서인지 집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소파와 탁자 위치도 달려졌고 바닥에는 카펫도 깔려 있습니다. 변하지 않은 것은 탁자 위의 성냥과 재떨이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파이프 담배입니다. 손녀가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은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는 내용인가 봅니다. 손녀는 내일 아프리카로 배를 타고 떠나자고 할아버지에게 말합니다. 뱃고동을 울리며 드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미지의 땅으로 향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손녀는 두 발을 나무 위자 위에 올리고 쪼그려 앉아 바퀴 달린 빈 소파와 빈 테이블을 바라봅니다. 항상 그 자리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오랜 시간 손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노랗게 변신한 석양이 바닷속으로 서서히 내려앉고 있습니다. 여름날, 할아버지와 모래놀이를 했던 해변도 보이고 해변 가까이에 위치한 할아버지의 집도 보입니다. 손녀가 인형을 태운 유모차를 끌며 푸른 언덕을 달리고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휘날리도록 빠르게 달리는 손녀 뒤에서 할아버지가 키우던 강아지도 손녀를 따라 달립니다. 할아버지가 없어도 손녀는 씩씩하게 달립니다. 그 모습을 응원이라도 하는 듯 유모자를 탄 인형이 소녀를 보며 미소 짓는 것 같이 보입니다.


뒤표지에는 낙엽이 흩날리도록 바람 부는 가을에 강아지와 함께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노랗게 물든 나뭇가지를 흔들며 산책하는 손녀가 추억의 한 장면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그림책 읽고, 쓰다(22)-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