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벽
작가 : 유리 슐레비츠. 강무홍 옮김
출판사 : 시공주니어
작가는 이 책을 부모님께 바친다고 적었습니다.
좁은 시야로 보이는 공간 속에 형태를 알 수 없는 푸른빛이 퍼져 있습니다. 중간과 하단에는 굵고 진한 띠가 있는 것도 같습니다. 어떤 흔들림도 없어 아주 조용합니다.
첫 장면보다 시야가 넓어졌고 푸른빛도 조금 밝아졌습니다. 중간과 하단의 굵은 띠도 어떤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희미하지만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선도 보입니다. 화면 오른편에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검푸른 물체가 새로 나타났습니다. 차분한 색감 탓인지는 몰라도 아주 고요합니다. 어떤 장면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화면의 절반 정도로 시야가 확장되었습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법 선명하게 구분되기 시작합니다. 하단의 굵은 띠와 검은 물체는 호숫가 모래사장과 그곳에서 자라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였고, 중간의 굵은 띠는 호수 건너편에 보이는 산과 호수에 비친 산그림자입니다. 푸른빛이 감도는 호숫가는 싸늘하고 축축합니다.
호숫가 나무는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뭇잎을 빽빽하게 키워냈고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나무 아래 무언가가 있습니다. 호숫가 나무와 그 주변에서 자라는 풀들이 마치 울타리를 쳐 주는 것 같이 보입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호숫가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쌀쌀한 기온 탓인지 잔뜩 웅크린 채 찬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온몸을 담요로 똘똘 말고 있습니다. 발밑으로는 벗어 놓은 신발이 보이고 손자의 머리 위로는 담요를 넣어왔을 배낭도 보입니다.
둥근달이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호숫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달빛을 받은 나뭇잎은 반짝이고 호숫가 바위들도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고 그 모습이 온전히 호수에 비춰집니다. 호수 오른편에 일렬로 늘어선 나무들도 땅과 호수를 경계로 나뉘어 자라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자고 있는 나무 근처에 작은 배 한 척이 뭍에 올려져 있습니다.
호수 안에는 반대의 세상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과 달, 산과 나무, 호숫가에 자라는 풀들도 모두 낮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람이, 실낱같이 아주 가늘고 약한 바람이 호수를 스쳐 지나자, 호수는 살며시 몸을 떱니다. 그 떨림이 호수 속 세상에 전해져 하늘과 달, 산과 나무, 호숫가에 자라는 풀들도 부르르 몸을 떱니다.
실바람을 타고 온 걸까요, 아니면 실바람이 무언가를 깨운 것일까요. 땅과 호수의 경계를 감추며 물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느리고 나른하게 피어오르는 하얀 물안개는 바람을 타고 그 영역을 넓혀갑니다.
어둠이 사라지기 전에 아직 찾아내지 못한 먹이를 발견하려는 듯 외로운 박쥐 한 마리가 소리 없이 호수 위를 맴돕니다.
잠에서 깨어난 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 호수 속으로 뛰어듭니다. 개구리가 뛰어든 자리에는 동그란 물결이 일고 또 다른 개구리 한 마리가 호수 속에 뛰어들 채비를 합니다.
옛 속담에서처럼 일찍 일어난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귑니다. 그러자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화답하듯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어쩌면 산이 들려주는 메아리일지도 모릅니다.
개구리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깬 할아버지가 꿈나라를 모험하고 있을 손자를 깨웁니다. 호수에서 피어난 물안개가 슬그머니 육지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잠에서 깬 할아버지와 손자는 벗어 놓은 옷과 신발을 챙겨 신고 아침 준비를 시작합니다. 각각 냄비를 들고 호수에서 물을 떠 옵니다. 손자는 불을 피우기 위해 나뭇가지를 줍고 할아버지는 손자가 모아 온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피웁니다. 냄비 두 개와 컵 두 개가 사이좋은 할아버지와 손자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아직 새벽의 기운이 걷히지 않은 호숫가에 한 줄기 따스한 온기가 피어오릅니다.
아침을 먹은 두 사람은 짐을 챙깁니다. 손자가 담요를 돌돌 말면 할아버지가 끈으로 단단히 묶습니다. 일을 도와주는 손자가 기특한지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가득합니다. 다 챙긴 짐을 나무 근처에 있던 배로 옮깁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앞에서 끌고 손자가 뒤에서 밀며 낡은 배를 물에 띄웁니다.
푸르스름한 새벽의 기운이 퍼져 있는 호수 위를 배 한 척이 지나갑니다. 배 앞머리에 배낭을 두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마주 보고 앉아 있습니다. 배가 지나온 길을 따라 물길이 생겨납니다. 노가 호수를 만날 때마다 호수 위에 점을 찍듯 하얀 물결이 일어납니다.
끼익, 끼익 노를 젓는 소리가 고요한 호수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킵니다. 무엇이 즐거운지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손자는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합니다. 배가 움직일 때마다 선과 점의 물결구름이 호수를 가로지릅니다.
하늘 저 멀리 노란빛이 새벽을 밀어내며 다가오고 있습니다. 파랗기만 하던 호수도 그 빛을 받아 점점 노란색이 감돌고 산은 본래 모습인 초록을 되찾아갑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탄 배가 호수 건너편에 가까워지자, 한순간에 산과 호수 모두 초록이 되었습니다. 마치 할아버지와 손자를 맞이하러 산이 호수 안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새벽을 밀어내며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태양이 산허리에서 얼굴을 내밉니다. 하늘은 온통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아직 태양의 빛이 미치지 못하는 산꼭대기와 호수와의 경계는 푸른 기운이 남아있지만 머지않아 사라질 것입니다. 아침을 맞이하는 호수는 빨강, 노랑, 초록, 파랑이 서로 다투지 않고 자리하고 그 위를 작은 배 한 척이 고요히 지나갑니다.
이 책의 사용 연령은 4세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