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욱이네 가족회의
작가 : 송새벽
출판사 : 걸음동무
표지를 넘기면 포스트잇이 여러 장 붙어 있는데 가족회의 절차와 규칙이 적혀있습니다.
작가는 <그림책상상 그림책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지금도 활발히 운영되는 그림책 학교입니다.
욱이는 이불을 돌돌 말아가며 방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단순한 놀이가 아닙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기 싫어서 이불속에서 버티는 중입니다. 이불을 따라 욱이의 애착 인형도 함께 굴러다닙니다. 아침 먹게 일어나라는 엄마의 외침에 간신히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떴을 때, 오늘이 그날이라는 생각이 전기처럼 머릿속을 강타하고 지나갑니다.
냉장고 문에 가족회의 규칙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고 고양이 모양 마그넷이 종이가 떨어지지 않게 냉장고 문에 딱 붙어있습니다. 냉장고 문에는 그 외에도 욱이의 요일별 수업 시간표, 이번 주 장 볼 물품, 피자를 주문할 때마다 하나씩 주는 자석 스티커다 세 개 붙어있습니다. 욱이는 엉덩이를 쭈욱 뺀 채 의자에 앉아 한 손으로는 애착 인형을 잡고 궁근 턱을 식탁에 괸 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고민할 것도 많은데 건강을 위해 엄마가 만들어 준 콩밥도 먹기 싫기 때문입니다. 고민은, 지지지난 주 가족회의는 아빠가, 지지난 주는 엄마가, 지난주는 누나가 했고 이번 주가 욱이 차례여서 그렇습니다.
욱이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돌돌 말고 덜덜 떨고 있습니다. 오전 10시. 아직 가족회의 주제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블 끄트머리에 턱을 괴고 누운 애착인형이 욱이를 위로합니다.
이렇게 하면 생각이 날까, 침대 매트릭스에 머리를 대고 애착인형과 함께 물구나무를 섭니다. 학습지 안 하게 해달라고 할까? 아예 아픈 건 어떨까? 열이 나는 것도 좋고. 그러고 보니 배가 아픈 것도 같은데...... 서랍과 방바닥에 나뒹구는 양말처럼 여러 가지 생각이 이리저리 날뜁니다. 서랍장 위에는 가족사진과 함께 탁상시계가 있습니다. 열 시 이십 분입니다.
노란색 변기 커버에 애착인형이 탑승한 비행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변기에 앉아 똥꼬에 힘을 주어 보지만 똥은 나오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가족회의 주제를 생각하기 위해 생각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봅니다.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쳐 놓기도 하고 방바닥을 꿈틀꿈틀 지렁이처럼 기어 다녀도 봅니다. 책도 펼쳐 보고 혼자서 인형 역할놀이를 하며 인형에게 걱정을 토로합니다. 벽에 다리를 걸치고 누워도 보지만 역시나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애착인형과 젠가를 하며 생각을 하는 중에 누나가 지나가며 묻습니다. 다 했냐? 기둥을 잡고 생각을 하는 중에 엄마가 지나가며 묻습니다. 주제가 뭐야? 집 밖에서 생각하기 위해 신발을 신는 중에 아빠가 지나가며 말합니다 오늘 알지?
집 근처 놀이터에는 친구들이 놀고 있습니다. 친구들하고 놀다 보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빠가 말하길, 고민만 한다고 고민이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했으니 잠깐 친구들하고 놀면서 고민도 없애고 좋은 생각도 떠오르면 일석이조입니다.
친구와 철봉에 매달려 노는 중에 놀이공원데 다녀온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럿이 모여 흙놀이를 하며 바다에 다녀온 이야기, 캠핑을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가족회의 주제를 고민할 때는 느리게 가던 시간이 친구들과 놀 때는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리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올 때 즈음 무얼 해야 할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가족회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온몸이 덜덜 떨리고 머릿속은 생각들로 혼란스럽습니다. 잠시 욱이의 머릿속 생각들을 들여다보겠습니다.
가족회의 싫어! 꽥! 내 발표는 더 싫어! 다 안된다고 할지도 몰라. 일요일이라니 거짓말. 캠핑 가고 싶다. 비행기 타는 여행. 못하면 어떡하지? 나 못해.
욱이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져 갑니다.
욱이가 발표장에 섰습니다. 스케치북으로 가족회의 안내판도 만들어 걸어놓았습니다. 발표를 해야 하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갑자기 배가 아파오는 느낌도 들고 발표를 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암감도 밀려옵니다. 몸도 베베 꼬입니다.
생각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합니다. 어찌나 큰 소용돌이인지 컵, 휴지, 게임기, 리모컨이 날아갈 정도입니다.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한 욱이는 애착인형 가면을 머리에 쓰고 자신을 감추어 버립니다.
후! 심호흡을 합니다. 애착인형 가면을 벗습니다. 아... 발표를... 시... 시작. 갑자기 다리를 꼬며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을 하다가, 다음 할 말을 잊어버렸다가, 다시 떠올립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가족 여행을...
발표가 끝났습니다. 욱이의 두 눈에 눈물이 날 만큼 짧지만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욱이 가족은 소파에 앉아 욱이의 발표를 들었습니다. 엄마는 웃었고 누나는 큰 소리로 웃었고 아빠는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욱이의 귀에는 누나의 웃음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가족 여행 가고 싶다…….
욱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가족들의 반응을 기다립니다.
욱이와 누나, 엄마와 아빠, 애착인형까지 거실 바닥에 둥글게 모여 앉았습니다. 중앙에는 커다란 스케치북과 탁상 달력을 놓았습니다. 아빠는 가족 여행을 가고 싶은 욱이의 발표를 다시 확인하고 누나는 욱이의 의견에 적극 찬성합니다. 엄마는 적당한 날짜를 잡기 위한 논의를 제안합니다. 중앙의 스케치북에는 이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가고 싶은 곳
1.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
2. 캠핑장
3. 워터파크
온종일 불안한 표정의 욱이가 웃고 있습니다. 콧노래도 흥얼거립니다. 배에서 천둥소리가 날 만큼 배가 고파옵니다. 아침과 같은 콩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고 시원하게 똥도 쌌습니다. 길었던 하루가 끝나자 깊은 잠이 몰려옵니다. 오늘은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희가 우리 학교의 새싹이야,라는 반 명이 걸린 일학년 사 반 교실입니다. 일인용 책상 옆면에는 가방이 걸려 있고 책상 위에는 교과서가 있는데 오늘의 수업은 나의 가족입니다. 의자에 앉은 아이들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자리에 앉아 칠판 앞에서 발표하는 아이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 욱이가 있습니다. 욱이가 칠판 앞으로 나와 가족 소개와 주말에 한 일 등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가족회의 때와는 다르게 편안하고 밝은 표정입니다. 칠판에는 반 명과 함께 온도계가 걸려 있고 다른 쪽에는 반 규칙과 자주 사용하면 좋은 말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맨 오른쪽 제일 아래에 떠든 사람이 적혀 있습니다. 떠든 사람 송새벽.
욱이 방 서랍장 위에 새로운 사진이 액자에 들어있습니다. 텐트 앞에서 욱이네 식구들이 모두 모여 맛있는 식사를 하는 사진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다시 욱이가 발표하는 가족회의가 돌아왔습니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듯 슬금슬금 몸이 떨려오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어떤 주제가 좋을까?
맨 뒷장에도 포스트잇이 여러 장 붙어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과 여러 가지 다짐이 적혀 있습니다. 맨 앞장과 매우 유사하지만 애착인형이 다른 동물로 바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