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고, 쓰다 (30) - 얼굴은 시

by 숨CHIP

제목 : 그림책 읽고, 쓰다 (30) - 얼굴은 시

작가 : 줄리 모스테드 지음 / 제님 옮김

출판사 : 나는별




책이 꽤 큽니다. 두꺼운 표지를 북커버처럼 별도로 덮고 있는, 표지 위의 표지가 있습니다. 갑자기 이것이 너무 궁금하여 찾아보았습니다.

찾아본 바로는 이것의 명칭은 <덧표지(dust-cover/jacket)>이고, 양장본의 앞·뒤 표지 위에 덧씌운 종이. 표제, 저자, 출판사, 책값, ISBN 등을 인쇄하여 표지를 보호하는 역할이라고 합니다.

앞장 덧표지에는 작가와 옮긴이, 제목이 있고 눈속에서부터 얼굴 밖 세상으로 나비가 날아가는 얼굴이 있습니다.


덧표지를 벗기면 두꺼운 이 책의 진짜 표지가 나옵니다. 보랏빛이 도는 푸른 바탕에 다양한 얼굴과 코, 입, 눈이 그려져 있고 그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어떤 감정이 전해집니다.


표지를 지나 첫 장을 넘기면 책정보 맨 하단에 독특한 내용이 있습니다. 한 문장을 열두 개 언어로 번역하여 일러두기로 소개합니다.


세상 어디에나 얼굴이 있고 우리는 매일 수많은 얼굴을 스칩니다. 빨간 벽돌담 앞 대로에는 많은 얼굴들이 지나갑니다. 눈썹이 거의 일자로 붙어있는 얼굴, 뒤통수에만 머리카락이 있는 얼굴, 단발머리에 화장을 곱게 한 얼굴, 도톰한 입술에 붉은 선글라스를 쓰고 곱습머리를 곧게 세운 얼굴, 하얀 머리에 초록 선캡을 쓴 주름진 얼굴, 양탄자 같은 귀걸이를 한 얼굴, 포대기 안에서 엄마 품에 안긴 얼굴, 캡모자를 쓴 얼굴, 삐죽 머리를 한 소년의 얼굴, 두 아이가 서로 마주 보는 얼굴, 붉은 모자를 쓴 채 힘이 없어 보이는 얼굴, 옷과 머리 모양이 다른 쌍둥이의 얼굴, 읽어버린 강아지를 찾는다는 포스터 속 강아지 얼굴, 붉은 담벼락 끝에 서 있는 포스터에 그려진 강아지의 실제 얼굴, 눈이 과장되게 그려진 광고 포스터 얼굴, 자세히 보면 길가에 설치된 소화전에도 얼굴이 있습니다.


발아래에서 피어나는 꽃들에게도 얼굴이 있습니다. 스치듯 지나가면 모두 똑같은 꽃이지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모두 다른 얼굴을 한 꽃이 보입니다. 눈과 코, 입, 머리 모양 심지어 얼굴 색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맑고 파란 하늘에 두둥실 흰구름이 피어납니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도 얼굴이 있습니다. 똑같은 구름이 없듯 구름 얼굴도 모두 다릅니다. 구름 한 점에 얼굴 하나. 아주 드물지만 구름 한 점에 두 개의 얼굴을 가지기도 합니다. 진한 얼굴과 연한 얼굴, 큰 얼굴과 작은 얼굴. 많은 구름이 둥근 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쪽 구석에 감자채칼이 놓여 있고 화면 가득 감자들이 널려 있습니다. 껍질이 온전한 감자, 단면이 깎인 감자, 껍질이 전부 깎인 감자도 보입니다. 울퉁불퉁한 감자도 자세히 보면 얼굴이 있습니다. 감자에 따라 위치는 다르지만 검은 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감자의 이 검은 점은 어디에서 온 걸까요.

광장에 거대한 얼굴 조형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큰 얼굴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어디에서 온 걸까, 누굴 닮은 것 같아, 예술 작품 같아, 콧구멍이 저렇게 생겼구나, 귀도 얼굴인가. 친구와 같이 있는 아이들은 서로의 두 눈과 얼굴을 마주 보기도 합니다. 광장에서 거대한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 거대한 얼굴과 다를 바 없는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자세히 보지 않거나 본다 해도 스치듯 볼 뿐입니다.

세상에 똑같은 얼굴은 없습니다. 쌍둥이도 어딘가는 다릅니다. 여기 쌍둥이라고 믿기 힘든 쌍둥이도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주근깨를 제외하고는 똑같은 얼굴입니다. 그러나 머리모양을 달리하고, 안경을 쓰고 안 쓰고, 속눈썹이 있고 없고, 피어싱을 하고 안 하고, 립스틱 색도 다른 두 아이는 쌍둥이라고 생각하기 어럽습니다.

얼굴은 눈, 코, 입, 눈썹, 속눈썹, 귀, 머리, 주근깨, 점, 볼, 이마, 턱과 아직까지 이름을 붙이지 않은 수많은 작은 부분들이 어우러져 한 편의 시가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주의 별들이 모여 우주의 얼굴이 되는 것처럼요.


피부도 다릅니다. 털의 종류도 다릅니다. 코의 위치는 놀랍도록 알맞습니다. 때론 다른 누구도 없는 것을 가진 얼굴도 있습니다. 이 모든 조건이 성별, 나이, 환경, 생활습관 등에 따라 달라져 인간의 얼굴은 자기만의 고유한 상징이 됩니다. 화면 가득 고유의 상징성을 가진 얼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얼굴 모양이 달라지거나 눈, 코, 입의 자리가 뒤바뀌면 서로 알아볼 수 있을까요? 목 위에 눈이 있고 눈 위에 입, 그 위에 코가 있는 얼굴. 얼굴만 한 눈이 세 개 달린 얼굴. 코에서 꽃나무가 자라는 얼굴. 눈과 입과 눈썹이 사방으로 흩어진 얼굴. 머리 위에 곤충 더듬이처럼 눈이 달린 얼굴. 코가 두 개인 얼굴. 토끼 귀가 달린 얼굴. 선으로 만들어진 얼굴, 눈이 귀에 달린 얼굴. 눈이 여섯 개 달린 얼굴. 눈에서 꽃이 자라는 얼굴. 각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대화로 서로를 확인합니다.


매일 아침 새로운 얼굴로 갈아입고 달라진 눈으로 세상을 불 수 있습니다. 소녀와 강아지는 서로의 얼굴을 바꿔 입었습니다. 인간의 얼굴이 된 강아지와 강아지의 얼굴이 된 소녀가 바라보는 오늘의 세상은 어제의 세상과 얼마나 다를까요.


특별한 능력 없이도 온 세상의 말을 입으로 할 수 있다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표지 첫 장을 넘겼을 때 하단에 표기된 일러두기의 비밀이 밝혀집니다. ‘안녕, 사랑해’를 열두 개의 언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코가 꽃향기를 더 잘 맡을 수 있을까요? 꽃무리 곁에 모인 서로 다른 종의 강아지 네 마리가 꽃향기를 맡고 있습니다. 강아지가 맡는 꽃향기와 인간이 맡는 꽃향기를 같을까요? 곤충이 더듬이 등으로 맡는 꽃향기는 어떨까요? 꽃향기는 하나인데 어쩌면 모두 다른 향을 맡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눈은 모두 두 개이지만 인종과 살아온 환경에 따라 눈동자의 색은 다릅니다. 검정, 갈색, 초록, 회색, 파랑, 때로는 여러 색이 섞이기도 하고 어스름한 라벤더, 노을빛 해바라기, 한밤의 달빛, 폭풍우 치는 바다와 같은 색을 가진 눈동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같은 눈도 있을까요?


속눈썹이 나비가 된다면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한 소녀의 속눈썹이 점점 자라 나비가 되어 갑니다. 속눈썹 가닥마다 다른 모양의 날개를 지닌 나미가 자라나고 어느 순간, 소녀에서 여인이 될 때, 사랑이 시작될 때 또는 엄마가 될 때 자라나던 나비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속눈썹은 사라집니다.


주근깨 색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면 어떤 색이 좋을까요? 아이들이 줄지어 주근깨를 바꾸고 있습니다. 다양한 주근깨가 든 통을 들고 얼굴 위로 톡, 톡 새로운 주근깨를 받습니다. 그날의 날씨와 감정, 친구와의 만남 등 상황에 따라 연보랏빛 반짝이, 무지개 주근깨로 바꾸면 신이 날 것 같습니다.

동양에서 ‘얼굴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이 얼굴을 통해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한 아이의 얼굴이 네모난 초록 창 안에서 보여집니다. 눈썹과 눈이 처져 있어 기운이 없어 보입니다.


얼굴은 마음을 그대로 비추는 창입니다. 그날 그날의 마음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때로는 속마음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며 얼굴을 조절하려 해 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조금 전 초록 창 안에서 힘이 없어 보이던 아이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말이 없어도 표정만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같은 크기의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것 같은 담이 있습니다. 각각의 벽돌에는 얼굴이라는 것 외에 닮은 것이 하나도 없는 다양한 아이들의 얼굴이 있습니다. 이 얼굴은 어떤 마음일까요? 눈의 모양, 눈동자의 위치, 눈썹 모양, 입의 모양만 보더라도 모두 다른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얼굴은 영원한 걸까요? 아니면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 얼굴도 변할까요? 어린 소녀와 나이 든 여인이 거울을 보고 있습니다. 어린 소녀는 거울 속에서 오래된 자신의 미래 모습을 봅니다. 나이 든 여인은 거울 속에서 오래전 자신의 과거 모습을 봅니다. 나는 변한 것이 없지만 소녀와 나이 든 여인은 같은 사람일까요? 다른 사람일까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라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형제, 부모, 부모의 부모까지. 아이는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날 겁니다. 자라면서 수많은 얼굴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얼굴이 변한다 해도 형제, 부모, 부모의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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