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먹어 보면 알지 : 호랑수박의 전설
작가 : 이지은
출판사 : 웅진주니어
표지를 넘기면 먹음직스러운 수박들이 지면 곳곳으로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깊은 산속, 선녀들이 목욕을 할 것만 같은 은밀한 옹달샘에 팥 할멈이 더위를 식히려 편안한 자세로 둥둥 떠 있습니다. 옹달샘 주위로는 마치 노란 눈송이가 날리듯 반딧불이가 날아다닙니다. 팥할멈은 달콤한 수박 한 조각을 생각하다가 어느 여름 수박소동을 떠올립니다.
모두들 무엇에 홀린 듯한 표정입니다. 동그랗게 뜬 두 눈은 영혼이 없어 보입니다. 숲 속 동물들이 한꺼번에 몽유병이라도 걸린 듯 어딘가를 향해 걸어갑니다. 알껍질을 쓴 아기새, 토끼, 뱀, 너구리, 여우, 사슴, 산양, 곰, 멧돼지, 눈호랑이가 수박, 수우박, 수바아악, 수우우우바악, 수우우박을 중얼거리며 숲을 헤맵니다.
제일 뒤에서 따라가던 눈호랑이 눈에 무언가가 보입니다. 수풀 속에서 수풀에 몸을 숨기고 잇지만 언듯언듯 보이는 둥글고, 검은 줄이 있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눈호랑이가 그것에 다가갑니다. 눈호랑이가 가까이 다가가자 정체가 확실해졌습니다. 수박입니다.
눈호랑이를 앞에 두고 수박이 외칩니다.
- 난 수박이 아니야. 날 먹으면 큰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수박에 눈이 멀고 정신이 홀린 눈호랑이는 수박이 보내는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눈호랑이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수박을 척, 하고 잡습니다.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고는 수박에게 말합니다. 먹어 보면 알지.
- 와사삭!!!
한쪽 앞발로는 수박이 들어간 배를 쓰다듬고 다른 앞발로는 입에 묻은 수박 흔적을 훔칩니다. 혀를 낼름거리며 입술 주위에 묻은 흔적까지 먹어버리고 난 후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눈 호랑이의 몸에 기묘한 변화가 감지됩니다.
- 어, 어,
눈호랑이의 얼굴이 초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 점점 온몸이 초록 수박색으로 변해갑니다. 단순히 색만 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키 큰 눈 호랑이의 몸통이 점점 작아지더니 탐스러운 수박처럼 타원형으로 변하였고 기다랗던 네 다리는 점점 줄어들어 네 발만 몸통에 딱 붙어버렸습니다. 눈호랑이는 순식간에 수박으로 변해갔습니다.
결국 네 발도 모두 사라지고 눈, 코, 입, 귀와 꼬리가 달린 수박으로 완전하게 변해버렸습니다. 눈 호랑이는 자신이 수박으로 변한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수박을 찾아 숲 속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동물들에게 발각될 경우, 단번에 먹힐 것도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수박을 발견했던 그대로 풀이 무성한 숲 속에 몸을 숨겼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여전히 홀린 듯 수박을 찾아다니는 중에 숲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어두워질수록 동물들의 눈은 노랗게 빛이 나기 시작합니다. 동물 무리의 뒤에 있던 토끼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코를 높이 들고 킁킁거립니다. 토끼를 따라 다른 동물들도 코를 높이 들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합니다. 킁킁. 어디선가 수박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노란 눈을 뜬 채 영혼 없는 얼굴로 수박 냄새가 나는 곳으로 몰려갑니다.
풀숲에 들어선 동물들은 뿔뿔이 흩어져 숲을 샅샅이 뒤집니다. 동물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수박생각뿐입니다. 어찌나 수박 생각에 집중하는지 동물들의 머리 위에 수박이라는 생각이 형상화되어 떠다닙니다.
수박 수색이 한창인 가운데 수풀 깊숙한 곳에 조용히 숨어 있던 수박을 토끼가 발견합니다. 그러자 모든 동물들이 수박 주위로 모여듭니다.
- 찾았다. 수박!
수박을 중심으로 동물들이 둥글게 둘러서서 수박을 내려다봅니다. 수박으로 변한 눈호랑이의 시선으로 올려 본 광경은 흡사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수박으로 변한 눈호랑이가 동물들에게 자신은 수박이 아니고 눈호랑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말을 듣고 멧돼지는 냄새를 확인하고, 오리는 수박색이 맞다고 하고, 너구리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무늬가 수박과 똑같음을 확인합니다. 다급해진 눈호랑이는 다행스럽게도 사라지지 않은 꼬리를 흔들며 수박이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눈호랑이의 예상은 ‘꼬리가 있는 수박이 있나?’였을 것 같은데 동물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 있을 수도 있지.
꼬리도 통하지 않자 빙글빙글 회전을 하거나 입을 크게 벌려 이빨을 보며 주며 자신은 수박이 아니라 눈호랑이라고 강력하게 증명합니다. 음, 으으음, 음…. 수박을 앞에 둔 동물들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수박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러고는,
- 먹어 보면 알지!
일제히 수박으로 달려들기 시작합니다. 눈호랑이 일생일대 최대 위기입니다.
커다란 보름달이 뜬 밤이었습니다. 숲 속의 모든 동물들이 수박으로 변한 눈호랑이를 먹어보기 위해 달려들 때, 어디선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수박을 낚아채 보름달을 가르며 하늘로 솟아오른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동물들을 수박을 먹어보지도 못한 채 서로 뒤엉켜 대 혼란을 겪으면서 달에 비친 무언가의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었습니다.
그 존재는 바로 팥 할멈이었습니다. 수박을 낚아챈 팥 할멈은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수박을 되찾기 위해 질주하는 동물들이 팥 할멈의 뒤를 바싹 따라붙습니다. 수박을 외치며 달리는 동물들이 어찌나 거칠게 달려가는지 동물들이 달리면서 날리는 흙먼지가 온 숲을 덮을 지경이었습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저 앞에 낭떠러지 절벽이 보입니다. 원래는 반대편 절벽과 연결하는 다리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줄이 끊어진 지 오래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팥 할멈은 속도를 늦추지 않습니다. 팥 할멈이 절벽 끝에 다다랐을 때 휭-, 할멈은 반대편 절벽으로 수박을 든 채 몸을 날립니다.
슈 – 우
촤 아 아
한참을 날아오른 팥 할멈은 급경사로 이루어진 반대편 절벽으로 미끄러지듯 착지합니다. 미끄러지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고 이윽고 온전히 멈춘 팥 할멈은 땅에 내려놓은 수박을 한 손으로 지탱한 채 비장한 표정을 지었고 그 순간만큼은 미세한 공기의 흐름조차 없는 고요, 그 자체였습니다. 눈호랑이 수박은 정신을 잃은 표정입니다.
눈호랑이 수박을 안전하게 운반한 팥 할멈은 절벽 아래를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린 눈호랑이 수박은 고맙다는 인사를 합니다. 깊은 골 산속 가장 높은 반대편 절벽에는 수박을 빼앗긴 온갖 동물들이 유유히 걸어가는 팥 할멈과 눈호랑이 수박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걸어가는 동안 눈호랑이 수박은 수박인 채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 불안과 걱정을 팥 할멈에게 상담하지만 팥 할멈은 대답 없이 그저 아래로 아래로 걸어갈 뿐이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내려왔는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팥 할멈은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 물에 눈호랑이 수박을 담가 놓습니다. 시원한 계곡물이 온몸을 적시자 눈 호랑이 수박은 이제야 밝은 표정을 지으며 살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팥 할멈도 흐뭇한 표정을 짓습니다.
한참을 지켜보던 팥 할멈은 계곡물에 있던 눈호랑이 수박을 꺼냅니다. 수박을 땅에 내려놓은 팥 할멈은 손가락을 구부려 통, 통, 통 눈호랑이 수박을 두드려봅니다. 그러고는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며 눈 호랑이 수박 앞에 섭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눈호랑이 수박은 동물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팥 할멈에게도 자신의 진짜 정체를 주장합니다.
나는 수박이 아니야. 팥 할멈, 나는 눈호랑이라고.
머리에 쓴 붉은 보자기, 짙은 눈썹, 감정 없는 미소, 영혼 없는 눈빛의 팥 할멈이 눈호랑이 수박을 내려보며 괴기스럽게 말합니다.
먹어 보면 알지!
달빛마저 어두워지는 깊은 밤, 깊은 숲 속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
와 사 삭
시간이 흘러 아침해가 나무 위로 모습을 보이고,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 주위로 새들이 노래합니다. 평화로운 숲의 아침입니다.
숨겨져 있는 숲 속 너른 공터에 누워있던 눈호랑이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정신을 차린 눈호랑이는 자신의 온몸을 더듬으며 확인합니다. 팔, 다리, 얼굴, 배, 털. 심지오 발가락 개수와 발톱 개수도 세어봅니다. 모든 것이 정상입니다. 눈호랑이 수박은 온전한 눈호랑이가 되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공포스러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수박 잡아라!
눈호랑이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넋 나간 표정을 짓더니 앞 발에 얼굴을 묻고는 온몸을 바씩 낮추어 그 자리에 엎드려버립니다. 엎드려 떨고 있는 눈호랑이의 엉덩이로 수박 한 덩이가 데굴데굴 굴러와 엉덩이에 막혀 멈추어 버립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호랑이가 얼굴을 살짝 들고 힐끔 엉덩이 쪽을 쳐다봅니다. 엎드려있던 눈 호랑이의 뒤에는 수박 한 덩이가 놓여 있고 그 앞에 지게에 수박을 실은 팥 할멈이 서 있습니다. 팥 할멈은 굴러가는 수박 한 덩이도 잡지 못한 눈호랑이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수박이 든 지게를 통째로 눈호랑이에게 건네며 시장까지 들어다 주면 수박 한 통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수박이 든 지게를 맨 눈호랑이와 수박 한 덩이를 머리에 인 팥 할멈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숲에서 시장까지 이어진 길을 나란히 걸어갑니다.
할멈, 어젯밤에 뭐 했어?
잤지. 왜?
아니, 그냥. 근데 나, 이제 수박 안 먹어.
그래라, 그럼.
그 시각, 해가 들지 않는 숲 속 수풀 속에 여러 마리의 동물들이 소리 없이 숲에서 점점 멀어지는 눈호랑이와 팥 할멈을, 눈호랑이의 등과 팥 할멈의 머리에 있는 수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나지만 그날 밤의 진실을 밝혀내가 위한 추적은 계속됩니다.
인터뷰어가 숲 속 푸른 뱀에게 그날 밤에 대해 묻습니다. 푸른 뱀은 한 번도 수박을 본 적이 없지만 왠지 수박이 너무 먹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자리를 옮겨 물가로 가니 수달과 곰이 보입니다. 곰은 분위기에 휩쓸려 따라간 것뿐이라 말하고 수달은 수박이 맛없어 보여 안 먹었다고 말합니다.
나무속 너구리들에게도 묻습니다. 너구리들은 뛰는 팥 할멈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예전에 항상 허리와 다리가 아픈 팥 할멈을 위해 시장까지 호박을 날라다 주었다면서요. 그러고는 남은 수박이 있는지 물어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꽃무리 속에 있던 토끼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갑자기 생각난 듯 언제나 호랑이에게 먹히기만 하는 토끼 조상들의 아픈 과거를 이야기하며 눈호랑이 수박을 보자 딱 한 번, 정말 딱 한 번 토끼도 호랑이를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고는 바로 후회하며 눈호랑이에게는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인터뷰어는 숲을 벗어나 팥 할멈에게로 갑니다. 팥 할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추를 쌈장에 찍어 아침을 먹고는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밭에 일하러 갑니다. 인터뷰어가 밭까지 따라오자 노오란 참외를 한 알 따더니 눈호랑이에게 전해달라며 건네줍니다.
마지막으로 눈호랑이에게 간 인터뷰어는 지난밤 수박 꿈에 대해 묻습니다. 눈호랑이는 수박으로 변한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숲 속 동물들과 팥 할멈이 정말 무서웠다고 회상합니다. 그러고는 팥 할멈이 전해주라고 준 참외를 포함하여 당분간 과일은 먹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집니다.
눈호랑이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수박 꿈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인터뷰어의 머리가 두 개라는 사실도 드러납니다.
너 누구냐?
이야기와 인터뷰가 모두 끝나면 그날 밤 일에 대한 앙케트가 진행됩니다. 당신은 수박을 먹고 수박이 된 눈호랑이일까요? 아니면 수박을 먹어도, 안 먹어도 괜찮은 곰일까요?
앙케트마저 끝나면 그림책으로는 드물게 작가의 말이 나옵니다. 거기에 인터뷰어의 비밀이 드러납니다. 인터뷰어의 정체는 바로,
맨 뒤장에는 귀여운 눈호랑이 수박이 이리저리 굴러다닙니다.
뒷 표지의 바코드가 수박 모양입니다.
아, 참고로 눈호랑이와 팥 할멈은 이지은 작가의 그림책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