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커다란 비밀친구
작가 : 경혜원
출판사 : 창비
다양한 풀과 나무가 풍성하게 자라고 있는 한적한 숲 속에 하얀 건물 두 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간판에 십자 모양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병원 같습니다.
노란 개나리와 분홍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바람이 불자 벚꽃 잎이 바람을 타고 여행을 떠납니다. 꽃잎이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 봄빛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옆구리에 책을 낀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도서관을 나옵니다. 책가방을 등에 맨 한 소녀가 도서관으로 들어갑니다.
도서관에 들어온 소녀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습니다. 후드티에 발그레한 두 볼을 지닌 소녀는 자연과학 코너의 책을 꺼내 살펴보더니 데스크로 가져가 책을 빌립니다. 소녀의 뒤에도 책을 빌리려 줄을 서 있는 모습으로 보아 작은 도서관이지만 동네 사람들이 애용하는 곳인 것 같습니다.
화창한 봄입니다. 가로수로 심어진 벚나무에는 연분홍 벚꽃이 화사하게 피었고 담벼람을 따라 길게 늘어선 개나리도 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노란 꽃을 선보입니다. 거리에는 바람에 날려 떨어진 연분홍 벚꽃잎과 노란 개나리가 마치 그림을 그려놓은 듯합니다.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산책을 하고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아빠와 함께 꽃을 보러 나온 딸아이는 손가락으로 꽃을 가리키며 재잘재잘 입이 쉬지 않습니다. 소녀는 그 사이를 고개 숙인 채 땅만 보고 걸어갑니다.
소녀가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은 켜진 불이 하나도 없어 어둡습니다. 쓰레기통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고 거실에는 택배 상자와 우편물, 어제 신고 벗어 놓았던 양말이 어지러이 놓여 있습니다. 식탁으로 사용하는 테이블 위에는 아침으로 먹은 시리얼과 입구가 열려 있는 우유, 그릇이 그대로입니다. 소녀의 집은 정리를 하지 않은지 오래입니다. 소녀의 엄마가 아프기 때문입니다.
소녀의 방에는 가족사진이 있습니다. 엄마와 아빠, 어린 소녀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서랍장 위 선반에는 공룡 인형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어봅니다. 커다란 밀폐용기에 아빠가 쓴 메모가 붙어 있습니다. 시골에서 보내주신 잡채. 덜어서 전자레인지에 꼭 데워서 먹기. 아빠는 소녀와 함께 저녁을 먹지 못할 정도로 늦은 밤까지 일합니다. 소녀는 어두운 거실에 불도 켜지 않은 채 TV에서 나오는 빛을 조명삼아 전자레인지에 데운 잡채를 소파에 앉아 홀로 먹습니다.
밤 10시. 소녀의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립니다. 아빠가 퇴근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아빠를 보지 못합니다.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침대에서 읽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소녀와 아빠가 차를 타고 달립니다. 열어 놓은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생동감 넘치는 봄이지만 두 사람은 표정이 없습니다. 소녀와 아빠는 주말마다 엄마를 만나러 병원에 갑니다.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실입니다. 아빠는 갑자기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엄마가 있는 곳 대신에 복도로 걸어갑니다. 어두운 표정에 한 손으로 머리를 집는 것으로 보아 또 회사 일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 손에 책을 든 소녀는 그런 아빠를 바라만 볼 뿐입니다. 아빠는 주말에도 바쁩니다. 엄마가 아픈 뒤로 아빠는 소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아무런 미동도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잠이 든 모양입니다. 침대 앞 의자에 앉은 소녀는 잠이 든 엄마에게 말을 겁니다.
엄마, 잘 지냈어?
내가 재미있는 공룡 이야기 읽어 줄게.
소녀는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한 줄 한 줄 엄마에게 읽어줍니다. 엄마는 여전히 대답이 없지만 소녀는 읽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책을 읽던 소녀는 조금씩 읽는 속도가 느려지더니 잠이 들기 시작합니다. 잠결에 등에 와닿는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질 때 거대한 그림자와 함께 어디선가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다음은 뭐야?
열려있는 병실 창문으로 거대한 공룡이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습니다. 소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공룡을 직접 만난 겁니다. 소녀에게 말을 건 공룡은 자신을 두리라고 소개하며 책을 더 읽어주기를 청합니다. 소녀는 목을 가다듬고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두리의 눈이 맑게 빛납니다.
목이 긴 공룡인 두리는 소녀는 목에 태우고 병원을 벗어납니다. 소녀의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은 숲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소녀는 두리의 목을 꼭 껴안고 숲을 거닙니다. 웬만한 나무들은 모두 소녀의 시선 아래에 있습니다. 숲 속으로 들어간 두리는 소녀에게 말합니다.
배고프지? 밥 먹자.
두리는 커다란 나무 가지 사이로 얼굴을 쑤욱 집어넣습니다. 그 안에는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빨간 열매가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소녀도 두리도 모두 환하게 웃습니다. 자세히 보니 두리의 양 볼도 소녀와 마찬가지도 발그레합니다.
소녀는 두리를 만난 이후 매일 두리 생각을 합니다. 또 만나고 싶어 합니다. 학교 미술 시간에는 하얀 스케치북에 두리의 모습을 그립니다. 두리를 그리기만 해도 소녀는 행복합니다. 소녀의 오른쪽 책상에 앉은 안경 쓴 친구도 공룡을 좋아하는지 스케치북에 티라노사우르스를 그리고 있습니다. 소녀의 뒷자리에는 연필을 입에 문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어떤 그림을 그릴지 구상합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거나 그림보다는 뒷자리 짝꿍과 수다를 떠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다시 주말이 되었습니다. 소녀는 엄마가 누워있는 병실을 찾아갑니다. 열어둔 창으로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 바람을 탄 하얀 커튼은 잔잔한 파도와 같이 출렁입니다. 그 창가 앞에 의자를 두고 소녀는 엄마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그리고
소녀는 고대하던 두리를 다시 만났습니다. 다시 만나 두리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각양각색의 나뭇잎들이 하늘 위로 자라고 있습니다. 나뭇잎 사이사이의 빈 공간마다 햇살이 들어와 두리의 등 위에 누워있는 소녀에게 닿습니다. 소녀의 몸에 햇살 조각이 스며듭니다. 소녀가 이렇게 편안한 표정을 짓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소녀는 두리의 등에 탄 채 숲을 산책합니다. 숲을 거닐며 두리가 소녀에게 묻습니다. 이번 주는 어땠는지, 별 일은 없었는지. 소녀는 두리와 함께 있으면 모든 걱정이 사라집니다. 두리는 마치 소녀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말해줍니다. 두리는 언제나 여기에서 소녀를 기다리겠다고 약속합니다. 소녀를 바라보는 두리의 모습은 마치 엄마 같습니다.
소녀는 오늘도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거의 매일 도서관에 가는 이유는 주말에 읽어 줄 책과 이야기를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도서관에서 그림 수업 시간에 똑같이 공룡 그림을 그리던 안경 친구를 만납니다. 안경 친구도 공룡을 좋아하여 관련 도서를 많이 읽습니다.
소녀의 방에는 미술시간에 그린 두리 그림이 여러 장 붙어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놓여 있고 세 식구의 가족사진과 소녀가 아주 어렸던 때 엄마와 찍은 사진도 보입니다. 바닷가에서 소녀를 업은 채 브이를 그리는 엄마, 소녀를 무릎에 앉힌 채 소파에 앉아 책을 읽어주는 엄마. 소녀는 빨리 주말이 오기를 기다리며 책을 읽다가 잠이 듭니다. 소녀는 좋은 꿈을 꾸는지 자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있습니다. 늦은 밤에 돌아온 아빠는 빨랫감을 든 채 소녀가 잠든 모습을 바라봅니다. 잠든 소녀를 바라보는 아빠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소녀와 두리는 매주 만났습니다. 두리는 소녀를 만날 때마다 소녀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이름 모를 풀들과 신비한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둘만이 아는 숲 속 비밀의 장소에서 소녀가 두리에게 속삭입니다. 두리는 사랑스러운 눈빛과 은은한 미소로 소녀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날 소녀는 가슴속에 품고 있던 속마음을 두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점점 붉어집니다. 날아가는 새 한 마리가 그 빛을 받아 붉게 물듭니다. 붉은빛이 잦아들고 그 틈을 어둠이 조금씩 채워갑니다. 깊은 숲 속부터 어둠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집에 돌아갈 시간입니다. 용기를 내어 속마음을 꺼내 보여준 소녀에게 두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 수 있어. 그래도 괜찮아.
벽에는 소녀가 그린 그림이 붙어 있습니다. 엄마가 어린 소녀를 꼬옥 안아주는 그림입니다. 그림 아래 소녀가 누워 있습니다. 밤이 깊었는데도 소녀는 쉬이 잠이 들지 못합니다. 책을 읽어도 잠이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침대 위에 한 권, 방바닥에도 책이 있습니다. 커튼이 젖혀진 창을 통해 포근한 달빛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소녀는 머리 뒤로 두 손을 깍지 낀 채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소녀의 눈이 감깁니다. 소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입니다. 소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한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두리가 소녀에게 건넨 말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거리에서 자라는 풀들도 점점 색이 짙어가고 있습니다. 여름이었고 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방학식을 마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에게 달려갑니다. 그 옆으로 소녀가 지나갑니다. 소녀는 오늘도 도서관에 갑니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 사이 공룡을 좋아하는 안경 친구와 단짝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도서관에 모여 좋아하는 책을 읽습니다.
두리에게도 여름방학이 시작된다고 말해줍니다. 커다란 창을 사이에 두고 소녀와 두리는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소녀와 두리는 서로에게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냅니다. 그러고 보니 소녀와 두리는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거실 커튼을 좌우로 펼치자 집 안 가득 햇살이 들어옵니다. 집에서 키우는 화분에 물을 줍니다. 집 안 곳곳에 널려있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대걸레로 바닥을 깨끗하게 닦습니다. 소녀는 신이 납니다. 두리와 여름휴가를 갈 생각에 몸과 마음에 힘이 넘칩니다. 소녀의 방에는 가족사진 위쪽 벽에 붙여둔 두리 그림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림들 사이에 여름휴가 계획이 붙어 있습니다. 두리와 숨바꼭질, 두리와 놀이동산, 두리와 수영장. 휴가를 위한 준비물도 아래쪽에 꼼꼼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엄마 병원 근처 비밀의 숲에는 커다란 나무가 많이 자랍니다. 그중 한 나뭇가지에 새 둥지가 보입니다. 둥지 안에는 이제 막 태어난 아기새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 마리는 머리에 깨진 알 껍질을 쓰고 있습니다. 알을 품느라 고생했던 어미새는 알이 부화하면서 더 바빠졌습니다. 어린 아기들의 배를 채워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미새가 둥지로 다가올 때마다 아기새들은 최대한 입을 벌려 어미의 입에 달린 먹이를 받아먹습니다. 그 둥지 아래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나뭇잎이 한 곳에 모여 무언가를 숨겨주고 있습니다. 나무 앞쪽으로는 여기저기 나무 사이를 살펴보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두리가 있습니다. 소녀와 두리는 숨바꼭질 중입니다.
비밀의 숲에는 마치 나무들이 감추어 주기라도 하는 너른 들판이 숨어 있습니다. 그곳에는 화려한 색을 가진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붉은 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가는 그때 자지러지는 소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놀아동산 롤러코스터보다 더 짜릿한 두리 미끄럼틀을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녀에게 두리는 숲이자 놀이터고, 하나의 세계입니다.
비밀의 숲 너른 들판 한쪽에는 수풀에 가려져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은밀한 호수가 있습니다. 입안 가득 물을 머금은 두리는 아래를 향해 모아둔 물을 발사합니다. 아래에는 자기만큼 커다란 나뭇잎을 우산처럼 들고 통나무를 타고 있는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는 두리가 발사한 물에 온몸이 젖었지만 너무나 신이 납니다. 소녀에게 두리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커다란 비밀친구입니다. 그리고 저 멀리 소녀의 엄마가 누워있는 병원 건물이 살짝 보입니다.
즐거웠던 여름이 지나자고 가을이 물들어갑니다. 마을 도서관의 나무들도 울긋불긋한 옷으로 한껏 치장했습니다. 올봄, 표정 없는 얼굴로 도서관을 드나들던 소녀는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안경 친구와 단짝이 되었습니다. 벚꽃이 만발하던 올봄, 꽃구경을 하는 사람들 사이를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던 소녀는 단짝이 된 안경 친구와 풍성한 단풍을 즐깁니다. 친구와 함께 붉게 변한 단풍을 감상하고 바람에 날아가는 단풍잎도 손에 들어봅니다. 그 주위에도 단풍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은 휴대전화로 찍은 단풍 사진을 온라인에 공유하고, 헤드폰을 낀 채 음악을 감상하며 단풍길을 걷는 여인, 반려견과 산책을 나온 할아버지는 단풍을 보고 즐거워하는 반려견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소녀는 단풍길을 걸으며 언젠가 소녀를 찾아오겠다고 한 두리의 말을 떠올립니다.
모두가 잠이 든 깊은 밤, 가로등만이 어둠 속에서 홀로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 속에 불이 켜진 창 하나가 있습니다. 소녀의 집입니다. 소녀가 창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이합니다. 두리가 소녀의 집에 찾아온 것입니다. 소녀의 얼굴은 반가움으로 가득하고 두리의 얼굴은 엄마처럼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두리는 소녀를 머리 위에 태운 채 소녀가 사는 동네 언덕에 오릅니다. 식물도 잠을 자는 시간, 풀벌레 소리만이 들려오는 숲 속에서 소녀와 두리는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을 함께 바라봅니다. 두리는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소녀에게 말합니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사는 다른 별로. 두리는 엄마가 그립다고도 말합니다.
언덕에 소녀와 두리가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소녀는 떠나야 하는 두리를 위로하듯 가만가만 쓰다듬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별빛이, 땅에는 불빛이 가득합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소녀 역시 알고 있습니다. 소녀와 두리는 지금 바라보고 있는 풍경을 꼭 기억하자며, 서로가 그리울 땐 지금 이 풍경을 떠올리자며 약속합니다.
주말입니다. 소녀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을 들고 엄마를 찾아왔습니다.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 옆 창가 앞에는 항상 소녀가 책을 읽던 의자가 있습니다. 오늘도 소녀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어줍니다. 남아 있는 책의 쪽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열린 창으로 머리를 쑤욱 내밀던 두리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책을 읽던 소녀는 아래로 고개를 떨굽니다. 급기야 눈물이 방울져 떨어집니다. 더 이상 책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 등이 굽고 책을 들 힘도 없습니다. 그때입니다. 언젠가 들어본 말이 들려옵니다.
그다음은 뭐야?
소녀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눈물 때문에 흐려진 눈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봅니다. 그곳에는 아빠가 서 있습니다. 아빠는 미안함과 고마운 표정으로 소녀를 꼭 안아줍니다. 소녀도 아빠의 목을 꼭 껴안습니다. 여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이 두 사람을 감싸 안는 것만 같습니다.
소녀와 두리의 추억이 가득한 비밀의 숲도 가을빛에 흠뻑 물이 들었습니다. 붉게 물들어가는 싶은 숲 속, 언젠가 본 것 같은 거대한 무언가가 숲을 조용히 지나가는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