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고, 쓰다 (38) - 나의 그늘

by 숨CHIP

제목 : 나의 그늘

작가 : 조오 그림책

출판사 : 웅진주니어




표지를 넘기면 모퉁이 벽 아래에 커튼이 쳐진 작은 창이 하나 나 있습니다.

날이 좋은 날, 활짝 열린 창 앞에 검은새가 창밖으로 가지를 펼친 식물을 보고 있습니다.

집에서 키우기에 너무 커버렸다고 생각한 검은새는 화분을 들고 나와 모퉁이 집 바로 앞에 화분에서 꺼낸 나무를 심습니다. 나무를 심기 위해 땅을 파고 나온 흙은 모퉁이 한쪽에 삽과 함께 잘 모아두었습니다. 나무를 심은 자리에 풍성한 잎이 만든 그늘이 생겼습니다. 검은새는 그늘에 누워 낮잠을 잡니다.


아무것도 없던 모퉁이 앞 벌판에 나무가 생기자 동네에 살던 새들도 신기해하며 구경합니다.

해의 위치가 변하자 모퉁이 한쪽이 전부 그늘이 되었습니다. 나무 그림자 위치도 같이 바뀌었습니다. 그 나무그늘 아래 노란부리 새 한 마리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쉬고 있습니다. 모퉁이를 자세히 보니 쉬고 있는 새가 가져온 작은 화분이 보입니다.

해가 중천에 뜬 날입니다. 나무 바로 아래 만들어진 그늘에서 새 두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하나였던 작은 화분도 두 개로 늘었습니다. 새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창 안쪽에서 검은새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퉁이 바깥에서 커다란 고양이 한 마리가 모퉁이 나무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낮잠을 자던 새들은 고양이에 놀라 나무로부터 멀찍이 떨어졌습니다. 나무로 다가온 고양이는 나뭇잎은 물어 뜯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을 본 검은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멀찍이 떨어진 새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뭇잎을 물어뜯는 고양이를 바라봅니다.


집에서 후다닥 뛰어나온 검은새는 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미리 챙겨 온 우산으로 고양이의 턱을 재빠르게 꾹, 찌릅니다. 불의의 습격을 당한 고양이는 온몸의 털이 솟구치도록 놀랍니다. 멀리에서 지켜보던 새들은 서로의 어깨에 날개를 걸치고 조마조마하고 참새 한 마리가 구경꾼처럼 그 앞을 지나갑니다.

모두가 사라지자 검은새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 잎이 뜯긴 나무를 살펴봅니다. 그러는 사이 저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모퉁이 앞 벌판 곳곳에 물웅덩이도 생겨납니다. 집에 들어온 검은새는 창을 열고 떨어지는 빗줄기를 걱정스레 바라봅니다.


멈추지 않고 내리는 비 때문에 모퉁이 앞 벌판은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작은 화분 두 개는 물 위에 뜰 것 같고, 꼿꼿하던 나무도 물살에 조금 휘어졌습니다. 너무 많은 비가 내리는 탓에 창을 닫은 검은새는 나무가 걱정되어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거센 바람과 합쳐 저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합니다. 빗물은 창 바로 아래까지 차 올랐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무가 위험합니다. 커다란 목욕 대야를 집 안쪽에 단단히 묶고는 창 밖으로 꺼냅니다. 거센 비바람에 출렁이는 대야에 탄 검은새는 재빠르게 떠내려가려던 화분 두 개를 집안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한 날개로는 창문 벽을 꽉 잡고 다른 한 날개로는 거센 물살에 휘어지는 나무가 떠내려가지 않게 움켜잡습니다. 온몸이 비에 흠뻑 젖어도 검은새는 나무를 놓지 않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비바람이 멈췄습니다. 먹구름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해가 반짝입니다. 모퉁이 앞 벌판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물웅덩이가 지난밤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벌판 위에 풀이 죽은 검은새가 나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무가 떠내려가는 것은 막았지만 절반 이상의 나뭇잎이 떨어져 나갔고, 남아 있는 나뭇잎도 위태로워 보입니다. 창가에는 줄에 매달린 목욕 대야만이 쓸쓸히 세워져 있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검은새가 대야를 끌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갑니다. 더 이상 힘이 없어지는 나무를 보기가 힘들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가끔 나무그늘에 쉬러 오던 노란부리 새가 멀어지는 검은새를 안쓰럽게 바라봅니다.

밖은 환하지만 검은새의 집은 어둡습니다. 햇빛이 드는 유일한 통로인 창을 커튼으로 막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둠 속에서 모퉁이에 맞물려 놓은 침대에 검은새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습니다. 부리를 벽 쪽으로 향한 것이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검은새의 집은 단촐합니다. 침대 오른쪽으로 이단짜리 작은 책장에는 책이 빼곡하고 책장 위에는 스탠드와 화병이 있습니다. 책장 옆으로 우산과 밀짚모자가 벽에 결려있고 그 아래 장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침대 왼쪽에는 처음 나무가 심어져 있던 빈 화분과 비바람 속에서 건져낸 작은 화분 두 개가 보입니다. 화분 옆으로는 빨래 건조대에 카펫과 수건들이 걸려 있습니다. 가장 커다란 면적을 차지하는 벽면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양의 도형이 제각각이면서도 질서 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석양빛에 검은새의 집도 노랗게 물이 듭니다. 괴로움을 견딜 수 없었던 검은새는 나무가 자라던 빈 화분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어버립니다. 어쩌면 그 안에서 꺼이꺼이 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침이 밝았습니다. 노란부리 새가 자기 몸통만 한 짐을 지고 모퉁이 벌판 나무로 향하고 있습니다. 두 손에는 영양제도 들고 있습니다. 벌써 한 번 왔다 갔는지 병든 나뭇잎이 떼어져 있고 더 이상 휘어지지 않도록 땅에 지지대를 박고 나무를 묶어 두었습니다. 검은새의 창은 여전히 커튼으로 닫혀 있습니다.

노란부리 새는 짐은 풀고 그 안에서 새싹들을 꺼내더니 나무 주위에 심기 시작합니다. 나무뿌리 쪽에 가져온 영양제도 꽂아 놓았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무심히 그 곁을 지나갑니다.

나무 주위로 가져온 새싹들을 다 심어 놓자 빈 공간에 생기가 돌고 숲에 들어온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기분이 좋아진 노란부리 새는 라디오로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춤을 춥니다. 나무도 기운이 나는지 영양제가 순식간에 반이나 줄었습니다. 바깥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오자 무슨 일인가 싶어 검은새는 커튼을 아주 조금만 열고 밖을 살핍니다.

스탠드 불빛이 어두운 방을 밝히는 밤, 검은새는 잠이 들지 못합니다. 침대 위에 앉아 커튼이 쳐진 창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화분의 순서가 바뀌었고 건조대에서 말리던 키페트가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검은새는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갑니다. 지지대와 텅 비워진 영양제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휘어져있던 나무는 어느새 꼿꼿하게 자세를 바로 잡았습니다. 나무 주위로는 새싹들이 잠을 자고 한낮의 흥겨움을 노래 부르던 라디오도 조용합니다. 검은새는 나무 앞에 서서 밤이 깊도록 건강을 되찾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검은새는 아침 일찍부터 바쁩니다. 닫혀있던 창문을 활짝 열어 놓습니다 빈 영양제 통을 뽑아 놓습니다. 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눌러쓴 채 집에서 키우던 화분 하나를 들고 나옵니다. 양동이에 호미와 모종삽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모퉁이 벌판으로 옮겨 심을 생각인가 봅니다. 새 영양제를 들고 오다 검은새의 모습을 본 노란부리 새가 부리를 크게 벌리며 깜짝 놀랍니다. 모퉁이 벌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란부리 새가 심어 놓은 새씩들이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잎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검은새는 들고 나온 화분을 창가 앞에 심어 놓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지탱해 왔던 지지대를 풀어냅니다. 이제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탱할 만큼 나무가 튼튼해졌습니다. 노란부리 새가 끈을 풀고 있는 검은새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기 전 종종 나무 그늘에서 쉬어가던 새들도 모퉁이 벌판에 심을 나무 한 그루를 들고 다가옵니다. 새들의 정성에 대답이라도 하듯 온통 흙더미였던 벌판이 모퉁이를 중심으로 조금씩 푸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새들의 정성 때문인지 모퉁이 벌판이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모퉁이 나무도 크고 굵게 자랐습니다. 창가 아래 검은새가 심은 나무도, 이웃 새들이 심은 나무도 마치 형제처럼 모퉁이 벌판을 풍성하게 합니다. 모퉁이 나무 앞에선 검은새가 양 날개를 펼쳐 보이며 고양이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나뭇잎이 담긴 바구니를 물고 있습니다. 아마도 잎을 따 줄 테니 나무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모퉁이 벽 창에는 전에는 없었던 풍경이 새로 달렸습니다. 땡그랑땡그랑, 불어오는 바람에 풍경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모퉁이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모퉁이 벌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모퉁이 들판으로 변했습니다. 자연은 바람의 힘을 빌어 여러 식물들의 씨앗을 모퉁이 들판으로 떨어뜨렸고 그 덕분에 새들이 심어놓은 식물 외에도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를 잡아기고 있습니다. 모퉁이 들판의 탄생을 축하라도 하듯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내리는 비를 듬뿍 흡수해서인지 고양이보다 더 커버린 모퉁이 나무 아래 고양이와 새 두 마리가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괴로움이 생각나서인지 검은새도 풍경이 달린 창가에서 내리를 빗줄기를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비가 그치고 날이 밝았습니다. 햇살을 받은 모퉁이 나무는 더욱 푸르러 보입니다. 검은새가 다가와 너무를 꼬옥 껴안습니다. 간밤에 내린 비를 잘 견뎌줘서 고마워, 튼튼하게 자라주어서 고마워,라고 나무에게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모퉁이 앞 나무가 하늘로 커질수록 모퉁이 들판도 초록이 짙어지고 다양한 풀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나무 아래서 고양이와 검은새, 노란부리 새가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웃 새들이 들고 와 심은 나무에선 붉은 열매가 열렸습니다. 새 한 마리가 바구니에 열매를 한가득 담았습니다. 이웃 새들은 두 마리인데 한 마리는, 꼼꼼히 살펴보니 모퉁이 나무에서 뻗어나간 가지에 앉아 쉬고 있습니다. 모퉁이는 고양이와 새들의 안락한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석양으로 모퉁이 들판이 노랗게 변했습니다. 모퉁이 나무들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맛있는 낮잠을 잔 고양이도 기분이 좋은지 앞다리는 쭈욱 폅니다. 고양이를 따라 고양이 그림자도 쭈욱 기지개를 켭니다. 새들은 서로 날개를 흔들며 헤어집니다. 내일 또 만나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검은새도 창가에 서서 날개를 흔듭니다.


어둡고 고요한 밤이 되었습니다. 검은새의 집은 두 개이던 화분이 하나인 것을 제외하면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책장, 스탠드, 우산과 모자, 장화. 검은새는 침대에서 곤히 잠이 듭니다.


새벽즈음인 것 같습니다. 침대에서 자고 있던 검은새가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집니다. 무서운 꿈이라고 꾼 것일까요? 가만히 보니 벽 쪽에 기댄 침대 한쪽이 살짝 들려져 있습니다.


커튼이 열린 창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옵니다. 잠은 설친 검은새가 벽에 등을 기대고 두 다리로 힘껏 침대를 밀어냅니다. 침대가 밀리는 쪽에 있던 작은 화분과 빈 화분은 책장 쪽으로 벌써 옮겨 놓았습니다.

검은새는 침대를 멀리 밀어내고 모퉁이를 살펴봅니다. 모퉁이 틈에 흙이 쌓여 있습니다.


어느새 날이 밝아 방 안이 환해졌습니다. 검은새는 응급처치로 카펫으로 흙더미를 가려 놓았습니다. 그리고선 침대에 앉아 이게 무슨 일인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좀 더 알아보기 위해 검은새는 밖으로 나와 모퉁이를 살펴봅니다. 모퉁이 아래는 깨져있고 깨진 틈을 타고 괘 높이까지 모퉁이 벽에 금이 나 있습니다. 원인은 점점 커져가는 모퉁이 나무에 있는 것 같습니다. 검은새가 서 있는 곳 뒤쪽으로 거대한 뿌리가 땅 위로 나와 있습니다. 아마도 모퉁이 나무뿌리가 모퉁이 틈 쪽으로 뻗어가나 봅니다.


집으로 돌아온 검은새는 노트북을 켜고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 쌓인 흙에서 풀디 돋아나고 있습니다.


검은새는 방법을 찾은 것일까요? 틈 쪽에 걸려 있던 커튼을 한쪽으로 밀어냅니다. 점점 더 많은 흙이 검은새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검은새는 양동이에 시멘트를 들고 와서는 잘 개어서 벽에 바르기 시작합니다.


벽에 시멘트를 잘 발라 놓았나 싶었는데 아니었습니다. 창 아래 심어 놓았던 작은 나무가 창턱까지 자랄 때쯤 모퉁이 틈으로 들이치던 흙더미가 시멘트를 밀어내고 검은새의 집 안으로 밀고 들어옵니다. 갈리진 틈으로는 풀들이 자리고 급기야 창틀에서부터 굵은 금이 생기더니 천장을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을 본 검은새는 위기감이 발동합니다.


검은새는 노란부리 새의 도움을 받아 침대를 제외한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 밖으로 가지고 나옵니다. 벽에 생기기 시작한 금은 창가뿐만 아니라 모퉁이 벽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중입니다.


모퉁이 나무가 모퉁이 벽 끝까지 자랄 무렵에는 모퉁이 벽 전체로 금이 번졌습니다. 당분간 바깥 생활을 해야 했던 검은새는 모퉁이 들판에 짐을 쌓아 둔 채 모퉁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담요를 덮고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 곁에서 불안한 듯 고양이가 금이 간 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놀란 고양이가 모퉁이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던 검은새를 물고 재빠르게 벽에서 멀리 물러납니다. 벽에 금이 간 모양대로 조각나며 모퉁이 벽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 창틀도 휘어지고 창문도 떨어져 나갑니다.


한순간이었습니다. 모퉁이 벽이, 모퉁이 벽에 자리 잡은 검은새의 집이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조각난 벽의 파편들이 무겁게 쌓였습니다. 부서진 창문이 간당간당하게 부러진 창틀에 매달려 있습니다. 고양이와 노란부리 새, 검은새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너진 폐허를 바라봅니다. 다른 쪽에선 이웃 새들이 날개로 머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밤이 되자 모두가 모퉁이를 떠났지만 검은새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모퉁이 벽이 무너진 폐허 속, 부서진 벽 조각 위에 누워 하늘만 쳐다봅니다. 잠은 쉬이 오지 않고 여러 생각이 떠오르는 밤이 될 것 같습니다.

아침 동이 떠오를 무렵 검은새가 수레를 끌고 모퉁이 폐허로 다가갑니다. 수레에는 자기 키만 한 망치가 실려 있습니다. 비록 모퉁이 벽은 무너졌지만 모퉁이 들판은 변함없이 푸르릅니다. 모퉁이 나무는 하늘을 향해 계속 자라고 창가 앞 나무도 잎을 무성하게 달고 있습니다. 이웃 새들이 심은 나무도 제법 굵어졌습니다. 모퉁이 나무 앞에는 아직 땅에 심을 만큼 자라지 못한 작은 나무 화분이 놓여 있습니다. 나무 주위로 이름 모를 풀들이 잎을 키우며 들판을 풍성하게 합니다. 풀들 중에는 분홍 꽃봉오리를 맺은 녀석들도 있습니다.

검은새가 머리 위로 힘껏 망치를 들어 무너진 벽 조각들을 잘게 부수고 있습니다. 그 옆에서는 노란부리 새가 잘게 부서진 조각들을 수레에 싣고 있습니다. 혼자 들기 무거운 조각들은 이웃 새들이 힘을 합쳐 옮깁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어지러웠던 폐허에서 무너진 벽들 조각을 치우자 조금씩 땅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모퉁이 나무를 중심으로 한쪽은 나무와 다양한 풀들이 자라는 들판이 펼쳐지고 다른 한쪽은 너른 벌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모퉁이 벽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생명력이 넘치는 푸른 들판은 금세 벌판을 들판으로 변신시킵니다. 물론 검은새와 노란부리 새, 이웃 새들이 만들어 낸 노력의 결실입니다. 모퉁이 벽의 흔적이 사라진 자리에는 그 기억을 간직한 모퉁이 나무가 튼튼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모퉁이 나무기둥 중간에 팔각형의 나무틀이 설치되고 있습니다. 나무기둥을 잡고 선 고양이가 틀이 움직이지 않도록 입으로 밧줄을 잡아 고정시키는 사이 사다리를 타고 오른 검은새가 틀과 틀을 빈틈없이 연결합니다. 노란부리 새는 검은새가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사다리를 잡아주고 있습니다.

모퉁이 나무 기둥에 나무집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나무틀에 판자를 덧대 바닥을 만들었습니다. 판자바닥 위로 나무 기둥을 세워 벽과 지붕을 만들 작업을 합니다. 검은새는 바닥과 기둥이 잘 연결되어 있는지 점검하고 노란부리 새는 판자 바닥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힙니다. 모퉁이 나무 아래에서는 이웃 새들이 판자를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사포질을 하고 있습니다. 모퉁이 들판에는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벽을 허문 들판에도 새로운 풀들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모퉁이 나무를 중심으로 두 개의 기다란 나무 기둥이 지탱하고 있는 나무집이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벽에는 동그란 창을 뚫어 바람 길을 만들었습니다. 평평하게 만든 지붕에도 난간을 만들어 휴식과 들판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지붕에는 그동안 모퉁이 나무 옆에 두었던 작은 화분을 올려놓았습니다. 모퉁이 나무집을 짓는데 도움을 준 고양이를 위한 것인지 나무집 한쪽에 물고기 인형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검은새는 나무집의 입구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노란부리 새는 지붕 난간에서 검은새를 보며 웃고, 고양이는 모퉁이 나무그늘 속에 엎드려 물고기를 바라보고, 이웃 새들은 고양이 다리와 등에 누워 잠을 잡니다. 들판에는 꽃이 피고 불어오는 바람이 잎들이 살랑거립니다.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노란부리 새가 지붕에서 고개를 들고 바람을 느끼고, 따스한 햇살과 바람을 견딜 수 없었던 고양이도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듭니다. 고양이 다리와 등에 누워있던 이웃 새들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모퉁이 나무집 입구에서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던 검은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려 합니다. 다시 새 집이 생겼다는 기쁨인지, 모퉁이 집이 무너진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되찾은 건지,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의 변화를 느끼려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 모퉁이 나무도 창가 나무도 없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웃 새들이 심은 나무만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모퉁이 벽도, 모퉁이 벌판도, 검은새와 모퉁이 벽 안에 지어진 검은새의 집도 모두 꿈이었던 걸까요. 어떤 이의 행복한 상상이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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