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고, 쓰다 (마지막 글) - 알사탕

by 숨CHIP

제목 : 알사탕

작가 : 백희나

출판사 : 책읽는곰


표지에는 눈알만 한 알사탕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소년이 있습니다.

표지를 넘기면 아파트 놀이터가 보입니다. 미끄럼틀에도 벤치에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는지 놀이터 나무들이 달고 있는 잎은 점점 말라갑니다. 수분이 모두 사라져 버린 잎들과 약한 가지들은 나무에서 떨어져 놀이터 바닥에 쓰러져 있습니다.


잔가지와 낙엽이 어지러이 떨어져 있는 공터에 삼각형이 그려져 있습니다. 삼각형 안에는 다양한 색을 가진 구슬 네 개가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고 삼각형과 멀리 떨어진 곳에도 구슬이 하나 있습니다. 누군가 구슬치기 놀이를 하는 것 같습니다.

놀이터 나무 아래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소년이 혼자 구슬 놀이를 하고 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삼각형 안에는 구슬이 네 개 들어 있습니다. 삼각형과 소년 사이에도 구슬이 한 개 있습니다. 반듯하지 않게 그어진 선 뒤에서 소년이 땅과 가깝게 바싹 엎드려 있습니다. 한쪽 눈을 감고 삼각형 안에 있는 구슬과 자신의 거리를 가늠합니다. 마치 숲 속 괴물을 노리는 사냥꾼 같습니다. 손가락을 구부려 발사를 기다리는 구슬을 신중하게 조준합니다. 원래는 상대방이 있는 놀이이지만 소년은 혼자 합니다. 친구들이 놀이에 소년을 끼워주지 않아서입니다. 친구들은 없지만 친구들보다 더 친한 점박이 무늬를 가진 반려견이 소년의 곁에 누워 소년을 지켜봐 주면 좋으련만 반려견은 눈을 감고 자고 있습니다.

한 손은 주머니에, 다른 한 손은 산책줄을 쥔 소년이 놀이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반려견은 소년의 걸음을 따라가기 벅찬지, 목줄이 앞으로 쏠릴 정도로 힘들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저 멀리 미끄럼틀 앞에는 또래 친구들이 모여 공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잎들은 퍼석퍼석 말라갔고, 일찍 말라버린 잎들은 나무에서 떨어져 놀이터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나무 주위의 작은 풀들도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습니다. 쓸쓸한 분위기 탓인지 소년의 얼굴도 쓸쓸해 보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놀이를 하려면 더 많은 구슬이 필요합니다.

문방구에는 온갖 것들로 가득합니다. 학용품, 장난감, 운동 기구 등 없는 게 없습니다. 수많은 물건들 속에서 소년은 구슬이 든 봉지 하나를 집어듭니다. 평소 가지고 놀던 것보다 크고 색도 이상한 구슬입니다. 소년이 구슬 봉지를 유심히 쳐다보자 바지를 배 위까지 끌어올리고 머리가 없는, 네모난 안경에 동그란 눈, 커다란 코를 가진 문방구 주인이 그건 구슬이 아니라 알사탕이라고 알려줍니다.


알사탕을 집어 든 소년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봉지 안에는 여섯 개의 알사탕이 들어 있습니다. 소년은 알사탕 맛이 궁금합니다. 여섯 개의 알사탕 중에 빨갛고 노란 체크무늬 알사탕을 꺼냅니다. 문득, 어디선가 본 듯한 무늬라고 생각합니다. 알사탕을 입 안에 넣고 한쪽 볼로 옮기자 한쪽 볼이 똥그랗게 솟아납니다. 침과 입 안 온도에 녹으면서 알사탕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머리칼이 삐쭉, 두 눈이 커다래지고 귀까지 뻥 뚫릴 만큼 시원한 박하맛 사탕입니다.

책상 위에는 필기구와 스탠드, 휴지, 노트가 있고 책상과 붙어 있는 벽에는 소년이 그린 그림이 붙어 있습니다. 바닥에는 농구공과 조금 전 뜯은 사탕봉지가 굴러다니는 소년의 방입니다. 반려견은 소년의 방 안쪽 입구에서 놀이터에서처럼 엎드려 잠을 자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사탕물이 고인 침을 꼴깍 삼키자 또 또렷하게 들려옵니다. 어디에서 들려오는가 봤더니, 거실 쪽입니다. 소년은 놀라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합니다. 소년의 방문 멀리에 희미하지만 조금 전 입 안에 넣은 알사탕과 유사한 무늬를 가진 무언가가 보입니다.

동, 동, 동, 동, 동

동동아, 여기, 여기, 여기야......


아마도 소년을 부르는 소리 같습니다. 소년의 이름이 동동인가 봅니다.


열린 방문으로 얼굴만 쏘옥 내민 채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봅니다. 거실에는 알사탕과 똑같은 무늬의 소파가 놓여 있고, 동동이를 부르는 것이 다름 아닌 소파였던 것입니다. 동동이의 시선을 눈치챈 소파가 말을 이어갑니다. 소파는 자신의 옆구리에 티브이 리모컨이 껴 있어서 너무 아프다고 말합니다. 지난 일요일부터 보이지 않던 리모컨이었습니다. 사용 후 제자리에 두지 않았다고 아빠에게 혼도 났던 그 리모컨입니다.


동동이는 용기를 내어 소파에게 다가갔습니다. 물론 혼자 간 것은 아니고 반려견과 함께입니다. 반려견은 귀찮은 지 자꾸 딴 곳으로 가려합니다. 동동이가 소파 옆구리에 끼어 있던 리모컨을 꺼내자 한결 편안해진 소파는 할 말이 더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동동이 아빠에게 전해 달라는 말입니다. 아빠에게 소파에 앉아서 방귀 좀 그만 뀌라고 전해달랍니다. 아빠가 방귀를 뀌면 숨쉬기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한 손에 리모컨을 든 동동이는 말하는 소파를 보고 두 눈, 콧구멍 두 개, 입이 모두 벌어지며 놀랍니다.


꼴깍.

입 안의 사탕이 전부 녹아 없어지자 더 이상 소파의 말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정말 이상한 사탕입니다. 동동이 옆에는 그림자차럼 반려견이 눈을 감고 앉아 있습니다. 순간 소년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갑니다. 두 번째로 집어 든 알사탕은 반려견과 같은 점박이 무늬입니다.


길을 가거나 엎드리거나 앉아 있을 때에도 눈을 감고 있던 반려견이 두 눈을 뜨고 동동이 앞에 반듯하게 앉았습니다. 그러고는 동동이를 부릅니다.


동동아.


동동이는 이번에는 놀라지 않습니다. 마치 이럴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표정입니다. 한쪽 볼에 사탕을 문 채 자신을 부르는 반려견을 바라봅니다.


반려견과 동동이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반려견의 행동에 대한 동동이의 오해. 나이 든 반려견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던 동동이. 반려견은 동동이와 대화를 하면서도 하품을 하고, 항상 달려있는 목줄 때문에 목이 가려운지 앞발로 목줄 주위를 긁습니다. 대화를 통해 반려견에 대한 동동이의 오해가 완전히 풀렸습니다. 그리고 반려견의 요청에 따라 한 몸처럼 붙어 있던 반려견의 목줄을 풀어줍니다. 풀어진 목줄 때문인지는 몰라도 반려견과 동동이는 더욱 친해졌습니다. 드디어 밝혀지는 반려견의 이름. 반려견 구슬이는 동동이와 함께한 지 8년이나 되었습니다. 동동이는 구슬이의 눈높이에 맞게 무릎을 굽혀 앉았습니다. 동동이와 구슬이는 우정의 악수를 하고 오후 내내 함께 놀았습니다.


현관문이 열립니다. 열린 문틈 사이로 네모난 뿔테 안경에 인중과 턱에 시퍼런 수염 자욱이 가득한 아빠가 보입니다. 동동아, 아빠다! 아빠는 집에 오자마자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숙제, 청소, 빨래, 숙제, 구슬이 산책, 구슬이 똥치우기, 똥 치우는 비닐, 손 씻기, 삐뚤빼뚤 글씨, 밥 먹는 법, 식탁 예정, 목욕, 속옷 갈아입기 등 잔소리는 끝이 없이 이어집니다. 잔소리의 끝은 이겁니다.

9시다. 얼른 자라.


방으로 돌아온 동동이는 매일 반복되는 아빠의 잔소리가 지겹습니다. 이불속에 숨어 복수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바로 자면서 사탕 먹기입니다. 동동이는 이불속으로 몰래 가져온 사탕 봉지를 뒤져 아빠의 까칠한 턱수염과 비슷한 모양의 사탕을 꺼내 입에 넣습니다. 다른 여타의 사탕과 마찬가지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주방입니다.


ㅅ, ㄹ, ㅅ, ㄹ, ㅏ, ㅅ, ㄹ


처음에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또렷하게 들려옵니다. 그것도 부드럽지만 아주 강력하게 주방에서부터 끝없이 들려옵니다.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사랑해

이불은 푹 눌러쓰고 잠이 들려던 동동이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집니다. 이 소리가 누구에게서 나오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문을 살짝 열고 주방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아빠는 파자마와 티셔츠를 입은 채 싱크대 앞에서 맨손에 수세미를 들고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는 아빠의 마음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아빠에게 다가간 동동이는 아빠를 뒤에서 살짝 안아줍니다. 사랑을 표현하려는 부끄러운 마음과 아빠에 대한 고마움이 동동이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리고는 아빠를 안은 채 수줍게 말합니다.


나도….


분홍색을 띤 사탕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남아 있는 세 개의 사탕 중에 하나입니다. 동동이 집이나 주변에는 분홍색을 가진 무언가가 없어 어떤 소리가 들릴지 더욱 궁금합니다.

동동이가 식탁 위에서 숙제를 하고 있습니다. 입 안에 분홍 사탕을 넣고서 말입니다. 분홍 사탕은 겉에만 사탕이고 달달한 사탕 막이 없어지면 안에는 껌이 들어 있습니다. 그냥 껌이 아닌 풍선껌입니다. 동동이는 풍선껌에 한껏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동동이 볼만큼 커진 풍선껌이 갑자기 열어 둔 창 밖으로 휙, 날아가 버립니다. 이번 사탕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가 보다, 생각한 동동이는 숙제에 집중합니다. 얼마큼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창밖으로 날아가 버린 풍선껌이 동동이 얼굴만큼 커진 채 다시 창을 통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중해서 숙제를 하고 있는 동동에 옆으로 소리도 없이 다가가더니 갑자기 팡, 터지며 어떤 말소리가 풍선껌에서 나옵니다.


동동아, 잘 지내니?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목소리입니다.


돌아온 풍섬껌을 다시 씹고는 더 크게 불어 날려 보내며 말합니다. 할머니, 내 목소리 들려? 아까처럼 한참이 지나 다시 돌아온 풍선껌은 팡, 터지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할머니는 잘 지내며, 어릴 적 친구들을 다시 만나 막 뛰어놀며 재미있게 지낸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동동이에게도 친구들과 많이 뛰어 놀라는 당부도 잊지 않습니다.


동동이가 식탁 밑으로 들어갑니다. 그러고는 잘 씹어 놓은 풍선껌을 식탁 아래 착 붙여놓습니다. 앞으로는 할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언제나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남은 사탕은 단 두 개뿐입니다.


이번 사탕은 알록달록한 색을 가진 사탕입니다. 사탕을 입에 넣자 역시 소리가 들리는데 이번에는 집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들려옵니다.

안녕 안녕 안 녕.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아 밖으로 나갑니다.

소리가 나는 곳은 아파트 한켠에서 자라는 단풍나무 숲입니다. 울긋불긋하게 물이 든 나뭇잎들이 땅으로 떨어지며 동동이에게 인사합니다.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온 숲이 동동이에게 건네는 안녕이란 인사말로 가득합니다. 동동이는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사를 받아본 것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낙엽 양탄자를 탄 것 같이 화려한 숲에는 동동이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 멀리에 동동이 또래의 남자아이가 동동이를 보고 있습니다.


동동이는 직감적으로 재빨리 마지막 남은 투명한 사탕을 입에 넣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탕은 아무리 빨아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사탕이 소리를 들려주지 않자 동동이는 결심합니다. 사탕의 힘일 빌어 내가 말을 하기로.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사탕을 입에 물고 아이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겁니다.


나랑 같이 놀래?


맨 끝장에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동동이와 친구가 즐겁게 놀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 동동이와 친구가 타고 놀던 킥보드와 스케이트보드가 아파트 입구에 세워져 있습니다.


끝.


새로운 기획으로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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