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려보낸 시간
지금껏 하루하루를 변기 속 물 내리듯 무심하게 흘려보냈다. 살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들을 그저 스쳐 보내곤 했다. 당시에는 그것들이 저에게 아무런 필요 없는 것,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치부했던 것이다. 건강을 돌보지 못했다. 아이가 성장하는 소중한 순간들마저 놓쳤다.
'돈이 있으면 행복하고,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는 착각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어려운 문제와 고민을 손쉽게 해결하고자 돈을 우선적으로 좇았다.
정작 제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정말 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도 못한 채 꽉 막힌 어항 속 물고기처럼 답답함을 견뎌야만 했다. 이 상황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자 온갖 것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제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쫓아다녔고, 혹시라도 득이 될 만한 것들에는 기꺼이 시간을 썼다. 어렵게 번 돈으로 명품을 구매하며 저 자신을 포장하기까지 했다. 정말로 잘하는 일이나 원하는 일을 찾지 못한 채 늘 방황하면서도, 마치 바쁜 인생을 즐기는 듯 착각하며 살았다. 나아가야 할 방향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그 중요한 감각마저 잃어버린 채로 그저 몸을 실었다. 남은 인생마저 쫓기듯 살아갈까 봐 늘 아쉬워하고 후회하며 지냈다. 인생 또한 장사와 같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중요한 원칙과 기초적인 지식도, 그 어떤 준비도 없이 거친 세상을 쉽게 맞이하려 했던 이기적인 제 자신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온 제 인생과 점포마저 폭삭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향을 잃은 채 허우적거리다, 삶의 밑바닥에 쌓인 쓰레기 더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다.
멈춰버린 삶의 기계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저는 매일같이 퇴근 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몸은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회사의 기대만큼 성과나 매출을 높이지 못했기에 더 많은 책임과 일이 저에게 주어졌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주어질 때마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오늘 처리하지 못한 일과 내일 처리해야 할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머릿속은 쉴 틈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루 매출이 떨어지는 날이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머리는 돌덩이처럼 무겁고, 몸은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듯 붓는 느낌이다. 항상 피곤함에 지쳐 시간이 나면 그저 잠만 자곤 했다. 모든 것이 귀찮고 피곤했다. "잠만 잘 수 있다면 좋겠다",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심지어는 "그만 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친구들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바쁘다며 '세상에서 가장 바쁜 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끝없이 밀린 업무와 쏟아지는 요청으로 제게 하루 24시간은 늘 부족했다.
일거리를 집으로 들고 들어오는 일은 이제 다반사가 되었다. 가족들에게 집에서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곧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날 좀 내버려 둬"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저의 행동은 우리 가족들에게 점차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아내가 집안일을 부탁하기라도 하면, 짜증과 화를 내기 일쑤였다.
쉬는 날조차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제 기분은 항상 망가졌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그날그날 처리해야 하는 메일 업무들은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송두리째 엉망으로 만들었다. 늘 복잡한 업무들로 가득 찬 머릿속 때문에 제 삶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24시간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공장의 기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체력은 바닥났고, 그만큼 더 많은 정신적인 힘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어쩌다 맞이하는 휴일에는 하루 12시간씩 잠을 잤다.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밀린 TV를 시청하거나 인터넷 서핑, 뉴스 기사들을 클릭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저를 오랫동안 지켜보던 아내가, 더는 견딜 수 없었는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없는 제 삶은 너무 힘들어요." 아내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잠시 후 눈물을 글썽이며 아주 큰 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 집을 그저 잠만 자는 기숙사로 생각하는 것 같군요!"아내는 저와 더 이상 살기 싫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저는 아내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동안 저는 가족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제 머릿속은 신호등 없는 꽉 막힌 차도처럼 혼란스러워졌다. 일은 그전보다 더 손에 잡히지 않았고,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었다. 집안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여 제 머릿속은 더 이상 다른 어떤 생각도 들어갈 틈이 없었다. 머리가 터질 듯 아팠고, 저의 체력은 물컵 하나 들기도 힘들 만큼 방전되어 버렸다. 마치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의 기계처럼 한정된 생산량을 채워야 했지만, 나사 하나가 빠져 더는 움직이지 못하는 고장 난 기계처럼, 저는 완전히 멈춰 서고 말았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