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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감수성의 사이에서

내면의 자람

by 스무디


어릴 때는 갈등이 일어나면 그냥 둘 때가 많았다.


반드시 해결해야한다는 인식은 이기적인 것 같아 내키지 않았고, 어른들의 도움을 청하는 일도 이르는 것 같아서 찜찜함이 남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은 참 신고문화가 발달해서인지 일반적인 상식이 되어서인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갈등을 피하거나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참 많아졌다고 느낀다.


적극적인 해결은 상담이나 대화를 통해 시도하다가 함께 친밀감을 다지는 놀이나 여행, 체험 등을 통해 이루기도 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원만하고 안정된 관계를 위해 사람들이 시간과 정성을 쏟았는가?


점점 작다고 여겼던 갈등마저 논리대로 풀어가려는 수 많은 똑똑한 사람들 사이로 잔잔한 예술적 감수성이 자리잡을 틈은 잘 보이지가 않는다.


끔찍하고 시끄러운 일들이 여느 일상이었던 시절도 있는데, 그런 어려움을 묵묵히 견뎌내고 웃음으로 희화시켰던 옛날은 작금의 시대에 나쁘고 위험한 사고방식들로 매도되곤 하는 것 이다.


그래도 그 난리통 같던 갈등마저 품어안던 정서가 따스한 인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예전의 영화나 인기를 끌던 드라마 같은 영상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고... 힘들어 보이는 상황을 피하려는 의식보다는 거칠게 일어선 파도를 잠재우려는 노력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두고 보며

다른 한 편으로 산책같은 일상을 즐기려 일어선다면, 더 없이 짜릿한 감수성을 만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혜는 진리의 산물이라고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면 용기는 특별한 감각의 결정체로부터 생겨난다고 말하고 싶다.


산 꼭대기에서 야호라는 한마디 외침을 내뱉기 위해, 메아리를 직접 들어보겠다는 정의적인 동기 하나만으로도 그 땀방울 송글거리는 고생을 사서 했던 청춘들의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물거품이 되어버렸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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