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관계라고 해서 영구적인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삶이란 여러 사람들이 맞물려 조화를 이루며 움직일 때 원활해지는 톱니바퀴 같아서, 한 번 놓쳤다 하더라도 다시 만나게 되는 접점이 있다면 제대로 꼭 들어맞게 다시 자리를 잡아 연결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금수와 달라서 아무리 약해보이는 상대방일지라도 반드시 해쳐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지는 못한다. 다만, 보아하니 크나 큰 잘못을 저질러 다른 누군가를 해할 것 같다거나 나 자신을 속여 화를 미칠 것이라 예견될 때, 마치 당장이라도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라도 할 것 처럼 위협감을 느낄 때...
상대를 향해 공격적인 날을 세우는 게 가능해진다. 합리화로 자신의 행동에 정당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만약 결과가 참담해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라도 한다면 임기응변으로 변호할 준비까지 철저하다... 왜냐하면, 피해자니까. 먼저 당하기 직전에 정당방위를 가한거니까.
누가 진정한 피해자일까? 뚜렷한 흔적도 없으면서,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위협을 느껴 날을 세웠다는 건 심리적인 방어기제가 발동하여 행동을 조작한 결과다.
가해적인 접근으로 매도당한 이는 주로 말이 없다. 말 하는 것 조차 틀림없이 왜곡된 채 받아들여 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전혀 공격적인 접근의 의지가 없었다고 한다면, 억울함을 삼키며 나의 어떤 행동과 말들이 그토록 오해를 일으켰는가, 도저히 상식 밖의 태도였나... 등등 필요이상 깊이 문제를 파고들게 된다.
그렇게 수 차례에 걸쳐, 한 번 찍힌 감 재차 찔러보듯 지속적인 매도를 당한다면... 마치 사회에서 사라지기라도 해야할 듯이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심정이 든다. 피해자와 가해자로 양분하는 관계의 논리가 위험해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데서도 받아주는 이가 없는데, 이제 그는 어디로 가야할까...
다른 이들이 자신에 대해 유독 냉혹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한 번 돌아보자. 나 또한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누군가를 지나치게 몰아내거나, 나를 향해 목마름을 표하는 자를 밀어내고도 냉정하게 웃어넘긴 적은 없는지...
끊어진 관계란 역량의 차이에 의한 잠시 멈춤이었다. 그 관계를 지속하거나 발전시킬 만큼 내가 갖춘게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을 누구에게나 솔직하게 말한다면 얼마나 우스울 수 있겠는가... 연인 사이라면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아마, 십중팔구는 "상관없어! 너가 부족해서 날 못 만난다니~ 왜 갑자기 나약한 소리야? 너나 힘내고, 볼 일 없으면 끊는다. 뚝!" 아무렇지 않은 척... 순간의 자존심을 내비치며 먼저 끊을 수 있다면 그러려고 할 것이다. 그러는 편이 상처를 덜 받을 것도 같으니까... 하지만 달라야한다.
관계는 오랜동안 유지하고, 가능한 여러명과 맞물려 있어야 점차 힘을 받는다. 고통과 힘듦을 지나 어둔 시절을 함께 극복한 사이야말로 진정 흩어질 수 없는 우정과 인덕을 맛보게 된다.
지금, 인간관계의 손절을 생각하거나 그런 과거로 인해 등골 오싹한 때가 있다면... 과감하게 그 생각을 지우자. 지나고 나면 잠재워질 낯설음의 감정일 뿐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