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없애야 잘 큰다.

by 스무디




어릴적에 깊이 각인된 상처나 기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어딘가에 숨어있어,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인 불편함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그 상처를 만드는 간 정작 타인이 아닌 자기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학교에서 생긴 트라우마?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약자, 혹은 피해자의 입장이 된다는 것은 도덕적인 측면에서 가해자의 반대편에 선다는 이유만으로 바람직해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보호여부, 심리와 연극적인 면들을 모두 고려하여보면 그 또한 잠재되어 있는(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들이 많다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이런 상황이다.

학생A는 부모님 중 한분이 교육자시고 바빠서 아이를 홀로 둘 때가 많았지만, 늘 적은 시간이라도 마주할때면 사랑을 듬뿍 표현하며 아이의 정서적 충족을 위해 원하는 걸 대부분 들어주셨다.

학생B는 부모님 두분다 일용직이시고, 말보다는 체력을 키우는 것이 주요한 일이시기에, 늘 밥 잘먹고 엄마아빠 없어도 씩씩해라~ 고 가르치셨다.

A는 유약하지만 친구를 사랑하는 아이로, 잘 웃고 학교에서 순응하는 성격으로 자랐다.

B는 말주변은 부족하지만 늘 건강하고 활발한 성향으로 자라서 긍정에너지를 주고 있다.

어느날 저 두 학생이 서로 화장실에서 다투는 일이 발생한다. A는 자신의 휴지를 훔쳐가 놀리고 있던 B가 너무 싫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창피해져서 울분을 터트려버렸다.

B는 A가 싫다고 하는 표현을 잘 알아듣지 못했으며, 휴지는 훔쳐간 게 아니고 볼일 볼 때 맡아주려다가 오해를 산 거라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둘은 부모님이 개입하며 심리상담을 진행했고, 각각 상대방을 향한 원망이 큰 상황이라, 트라우마가 남을까봐 걱정된다는 우려에 따라 아이들이 훗날 이 일을 떠올려도 더 이상 불쾌감이 남지 않을 때까지 치유과정을 가져보기로 했다.


우선 심리극을 통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졌다.


그 후, 놀이치료 과정을 통해 조심스레 둘의 화해를 유도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물과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나 안되겠다며 둘이 가까워지는 결과까지는 바라지 않는다는 양측 부모의 반응이 돌아왔다.

상담사는 그러한 고비를 넘겨야 사회성도 발달하고 학교생활을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며 설득하려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다가 아이들이 원치않는 방향으로 변할 것 같아 싫다는 것이다.

결국 두 학생은 그 후로 쭉~
부딪치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고, 졸업을 맞을 때까지도 등돌린채 인사조차 하지 않는 사이로 남았다.
영영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위 아이들은 자라서 A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공립학교의 교사가 되었고, B는 건설현장의 인재가 되었다. A는 힘든 상황에 부닥질때마다 다른 사람 탓을 하다가 결국 더 좋은 환경을 찾겠다며 사립교원으로 전향했으나, 학폭 사건이 암초가 되어 장기휴직을 하게되었고, B는 보기에 연약한 동료나 후배가 눈에 띌때마다 무시하는 표현을 쓰다가 밀려나게 되었다. 물론 가상의 이야기다...

좀 더 나아간다면, 그들은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 편안한 가정을 꿈꿨으나 자녀들이 학교에 가자 점차 자신들이 그러했듯 부적응 현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된 걸 깨닫게 된다.

결론은

트라우마는 사회성의 적이다.
결국은 스스로 뚫고 나가야 할 껍질이다.

어릴때는 신체적 안전을 위해 반드시 가려주어야 할 것들이 있지만, 정서적 안전은 가능한 완곡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여러 가능성과 포용력을 기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면역과 예방효과'도 쌓고 안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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