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혁 씨. 어머니 아침에 오시라고 할 수 있어?”
남편(민혁)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파출소에서 퇴근하자마자 슬이를 재우느라 근무복을 이제야 벗고 있다.
나도 두 달의 출산 휴가 후 시댁에 슬이와 별이를 맡기고 출근한 지 일주일째다. 아침에 슬이를 업고 별이를 시댁에 데려다주는 것이 문제였다. 너무 졸려서 잘 걷지도 못하는 별이를 깨운다는 게 마음 아팠다. 어머님이 아침에 와주신다면 될 것 같았다. 그러면 어머님이 슬이를 업고 가고 내가 별이를 안고 가면 깨우지 않아도 될 터였다. 하지만 민혁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별이를 지금처럼 깨우면 되지 않냐는 것이다.
“우리 본관은 선산이니라. 자 따라 하거라. 착할 선, 뫼 산”
“차칼 선 메 산”
나는 아직 학교에 가지 않아 글자를 몰랐다. 뜻도 모르고 나는 할아버지의 말에 무조건 따라 했다. 할아버지는 상투에 도포를 입고 있었다. 매일 혼자 염불 같은 것을 외웠다. 할아버지는 시골 훈장이었다.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7살 때 나는 충청북도 산척 시골로 보내졌다. 언니 한 명과 동생이 두 명 있었지만 언니는 학교 때문에 안 되고 동생들은 너무 어려서 내가 선택된 것이다. 너무 가난해서 집안에 한 사람이라도 식구를 줄이고자 하는 아빠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1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외톨이였다. 또래 친구들이 하나도 없었다. 서울에서는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며 다방구 놀이들을 하면서 놀았었는데 그곳은 어른들밖에 없었다.
“어머님이 오시면 별이는 더 잘 수 있고 힘들지 않잖아.”
하지만 민혁은 안 그래도 피곤한 어머니를 깨우기 싫다고 했다. 어머니도 집안일에 아버님 수발에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리 별이가 내겐 더 중요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우리 아이들에게 최대한 배려해주어야 한다고 나는 말했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엄마를 깨우는 거 난 못해. 하려면 민하 씨가 전화해”
민혁은 결국 이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걸 왜 못해? 아이들을 위해 그 정도도 할 수 없어?”
내 목소리가 심하게 떨린다. 마치 나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다. 민혁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알지 못한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아기가 먹다 남긴 젖병을 힘껏 던졌다. 쨍하는 소리가 나면서 젖병은 거실 유리창에 부딪혀 분유 액체가 온 사방에 파편처럼 튀었다. 생각보다 소리가 너무 컸다.
태어나서 초등학교에서 체육시간에 던지기한 것 말고는 뭔가 던져본 것이 처음인 것 같다. 잠시 정지된 화면처럼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정신이 돌아오는 것일까? 조금씩 몸이 떨려왔다. 갑자기 아기가 큰소리로 운다. 자고 있었는데 소리에 놀라 깬 것 같다. 민혁은 수건을 가져와서 닦는다. 다행히 거실 유리창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직도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너 정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넌 아빠 아냐? 나만 엄마야?”
슬이가 큰소리로 울어대지만 난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민혁은 젖병을 치운다. 그리고 침대에서 이 상황을 불안하게 지켜보던 별이를 안았다.
“잠깐만 나갔다 올게”
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눈물을 닦고, 울고 있던 슬이를 안아 올렸다. 슬이는 놀랐는지 자지러지게 울었지만 잠에 겨워 곧 잠들었다. 민혁은 한 시간 후 돌아왔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새벽 한 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동생과 함께 이웃집의 처마에 울면서 서있다. 지붕의 처마 사이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여름이라 그렇게 춥지는 않았는데도 나와 동생은 서로 몸의 흔들리도록 떨고 있다. 잘 시간이 이미 지났지만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아빠가 술을 마시고 막내 여동생을 집 밖으로 내던졌다. 아직 한 살도 안 된 아기였다.
다음날 어머님이 아침에 오셨다. 어머님은 슬이를 업고, 나는 잠든 별이를 담요에 싸서 안았다. 다섯 살이나 된 별이를 안아서 힘들긴 했지만 별이의 얼굴은 너무 예쁘고 평화로웠다.
어머님은 어제 뉴스 봤냐고 물으셨다. 미국이 난리 났다고 빌딩이 다 폭파되었다고 했다. 어제는 2001년 9월 11일이었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깜짝 놀랐지만 출근시간이 촉박해서 대충만 들었다. 전철 안에서 정말 무슨 전쟁이라도 나는 건가 걱정했다.
출근해보니 이상하게도 사무실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어머님의 말이 거짓말인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는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어제 테러로 폭파되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아이러니하게도 어젯밤보다 많이 평온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