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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Jan 28. 2023

아빠의 85번째 생일

- 엄마가 없는 날들- 

 “아빠. 오늘 아빠 생일, 저녁 식사할 거니까 옷 입으세요.”

 “생일이라고? 오늘인가? 알겠네.”

나는 남편과 함께 아빠를 모시러 간 참이었다. 민혁은 주차장 차 안에 있고 나는 현관 앞에 서서 아빠를 기다린다. 아파트는 지어진 지 30년이 넘어 벽은 바랬고 가구도 낡아졌다. 싱크대는 문고리가 없는 서랍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1989년, 내가 대학 1학년이던 때 이사 온 집이다. 벌써 33년 전인가? 나는 결혼 전까지 7년 정도 이 집에서 살았지만, 아빠는 여기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봉천동 판자촌 산동네-달동네라고 하지?-에서 20년이 넘게 살다가 그 지역 전체가 재개발로 철거되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광명의 18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를 받았다. 그땐 왜 그리 커 보였던지. 허름한 판잣집 같은 집에서만 살다가 이 집을 보니 궁전 같았다. 온수가 콸콸 나와서 공중목욕탕을 가지 않아도 되었다. 겨울에도 웃풍이 없었다. 방바닥에 이불을 깔 때마다 느껴지던 따스한 공기, 게다가 집안에 화장실이라니! 


 〔내 나이 오십에 여기로 왔지.〕

엄마도 갖은 고생 끝에 아파트에 살게 되어 엄청나게 좋아했었지. 갑작스러운 간경화로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4년째이지만 아직도 엄마가 없다는 것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때 엄마 나이가 이제 내 나이가 되었는데 왜 엄마는 없는 걸까? 

 

“맛있는 식당 예약했어요.”

나는 말하면서 아빠를 바라보았다. 

 〔애고, 밥 사줄라고? 역시 우리 딸밖에 없다.〕 

엄마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잘 듣지 못하시는 아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는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방안은 가득 펼쳐진 한문책에, 쓰다 만 한지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원래 있던 좌식 책상과 좌식 의자, 그리고 몇 달 전 무릎이 아프다고 해서 내가 가져다준 입식 책상과 입식 걸상이 모두 한 방 안에 있다. 책상 두 개에 펼쳐놓아도 모자라서 방바닥에도 종이들이 널려있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족보를 써왔다. 벌써 4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미완성이다. 엄마는 정말 싫어했었다. 아이가 다섯인데 살 궁리는 안 하고 저런 것만 보고 있는다고 많이도 싸웠었다. 벌써, 집에 아빠 혼자만 남은 지 3년째인가? 2년 전 같이 살던 막내 남동생마저 뇌종양으로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빠는 생일 케이크 위의 촛불을 훅 불었다. 힘이 없어서였는지 하나밖에 안 꺼지자 옆에 있던 제부가 불어서 꺼버렸다. 나는 접시를 가져오고 케이크를 잘라 나눈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언니와 여동생들과 제부와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모두 마땅한 대화 주제가 없어 앞의 TV를 바라본다. TV가 엄청 크다는 둥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 와중에 아빠는 우리나라 역사 어느 대목의 이야기인지 모를 이야기를 꺼낸다. 말소리도 어눌하고 집중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를 이야기다. 우린 이미 익숙해져 아빠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딸기 케이크가 맛있는지 먹는 데 집중한다. 딸기 케이크가 맛있긴 했다. 

사실 엄마가 케이크를 정말 좋아했는데. 


  나의 어린 시절은 회색빛이다. 어둠 속에서 나는 울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된 것은 거의 아빠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난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아빠는 여자를 무시했고 딸들도 본인의 시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빠는 우리 네 자매의 교육을 반대했지만, 엄마의 힘든 싸움으로 우리는 모두 대학까지 다녔다. 

 막노동에 절어 힘들면서도 족보를 만들고자 했던 아빠와 5명의 아이의 생계에 한글도 모르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엄마와 그래도 공부하고자 했던 우리, 우리 집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아무리 졸려도 아버지가 들어오기 전에 잠을 자면 안 되었다. 단칸방에서 엄마는 어린아이들이 잠을 자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벽장에 넣어두곤 했다. 나와 동생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잠에 빠져들었다. 그럴 때면 무서운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김 씨 족보는 이미 완성된 것이 있다. 친척 누군가가 몇십 년 전에 작성해 놓은 것이다. 그 족보는 항상 아빠 집 책장에 꽂혀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이 족보가 빠진 게 많다며 처음 시조부터(신라 경순왕이라고 한다) 자기 대까지 꽉 채운 족보를 만들려는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있나 보았다. 그러나 몇십 년이 흘러도 지지부진 끝날 줄을 몰랐다. 

 나는 싫기도 하고 관심이 없기도 해서 잘 몰랐지만 완성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족보는 태어난 날짜와 사망 날짜가 정확히 들어가야 한다. 많은 작업이 끝나있었지만, 마지막 남자들의 사망 날짜를 몰라 작업을 못 하는 것 같다. 촌수가 가까운 사람들이라도 이미 연락이 끊어진 사람들도 많았고 더군다나 **김 씨라면 엄청나게 많을 텐데 그 빈칸들을 어떻게 채울 수가 있을까? 아무런 가치도 없고 아무도 관심 없는 족보는 결국 완성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완성한다 해도 아빠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기뻐할 사람이 없다. 아빠 혼자라도 기뻐할 날이 올까? 솔직히 나 또한 관심이 없다.)

 전에는 자신의 일생일대의 사업인 족보를 완성해야 한다고 얼굴빛이 항상 안 좋았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빠의 인지능력이 떨어진 것인지 전처럼 그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9시가 넘었다. 다음날이 월요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떠올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는 허리도 구부정하고 머리도 하얗게 세어 훨씬 더 작아 보인다. 원래도 마른 체구인데 요즘은 더 마른 것 같다. 

 “저번에 제가 사다 드린 코트 입고 오시지 그랬어요. 추운데 얇은 잠바만 입으시고.”

아빠는 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 신발을 신으신다. 나에게 목례한다.

 “잘 계시게. 나오지 말고.”

〔느그 아빠는 어떤 옷이 있는지도 몰라. 그놈의 하-나도 쓰잘데기 없는 족보 보느라고 암-것도 모른다. 그나저나 잘 먹고 간다. 딸들 때문에 호강이네.〕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는데도 나는 한참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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