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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Feb 22. 2023

꽃길 아닌 진흙 길을 걷겠습니다

 -나의 팀장님에 대한 오마쥬-


 “뭐예요? 엄마?”

 “축하 할라고! 우리 딸 공무원 시험 합격해서 내가 사 왔지.”

 엄마의 손에 들린 까만 비닐봉지에는 맥주 한 병이 담겨있었다. 대학 합격했을 때는 등록금 때문에 초상집 같았는데…. 가난한 우리 집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의미였다. 

 대학 졸업, 그해 시험 본 후 25살에 시작해서 28년째인가? 솔직히 적성도 아니었고 전공하고도 전혀 관련이 없어서 이렇게 오래 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공무원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를 한 가지만 대라고 한다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평생 존경할 수 있는 분을 만난 거요!” 


 “번호판 내놓으라고! 이걸 줘야 내가 일을 할 거 아냐. 지금 세금이 중요해?”

조용하던 사무실에 큰 소리가 들려왔다. 옆의 팀에 있던 나는 인상을 쓰며 일어섰다. 선글라스를 쓴 남자였다. 손에 든 핸드폰에는 애플 마크가 찍혀있다. 세금을 내지 않아 영치된 그의 차는 에쿠스(*승용 중에서도 고가의 차량)였다. 그는 교도소를 갔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은 돈이 없으니 그냥 번호판을 달라는 것이다. 자동차세를 내지 않으면 번호판영치 (*자동차 번호판을 지자체에서 떼어가는 것)를 당할 수 있다. 세금을 거두기 위한 강제 징수방식이다. 그런데도 세금을 내지 않고 번호판을 달라니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정말 돈이 없어서 세금을 못 내는 사람들도 있다. 생계형 체납자의 경우에는 나누어 내거나, 분납계획서를 받고 주는 경우가 더러 있긴 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고 더군다나 세금 안 낸 것을 자랑처럼 큰소리를 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렇지만 폭력적인 이 민원에 담당 직원이 주눅이 든 것 같았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온 신입 여직원이었다. 모기만 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죄송한데 번호판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세금을 내셔야 드리는 거죠.”

 “무슨 소리야? 이렇게 답답한 아가씨가 있나. 번호판 주면 돈 벌어서 주면 되잖아.”

 가관이었다. 


 그때 당당하고 중후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반말이십니까? 어디서든지 반말하면 안 되지만 특히 공공기관에 오셔서 반말하시면 안 되시죠.”

숱이 많고 짧은, 염색하지 않은 은회색 머리, 빛나는 총기 있는 눈, 옆의 팀장이었던 H 팀장님이었다. 예상대로, 큰소리치던 민원인은 너는 누구냐? 높은 사람 데리고 와라. 나는 구청장을 투표로 뽑았다. 내가 준 세금으로 월급을 받지 않냐. 등등 이런 진상들의 레퍼토리를 그대로 대본처럼 쏟아냈다.

 H 팀장님도 거기에 맞서 물러섬 없이 소리를 치면서 싸웠다. 내가 당신보다 세금 더 많이 낸다. 나도 똑같은 구민이다. 법을 지키고 나서 말을 해라. 등등 결국 말로는 안 돼, 몸싸움까지 하려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가서야 일은 끝이 났다. 경찰이 오고 진술서를 쓰고 그렇게 말이다.

 대부분 팀장, 과장들은 그런 경우 앞에 나서지 않는다. 담당자가 힘든 민원 때문에 절절매도 고개 숙이고 모르는 척하는 경우가 많다. 힘든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거다. 하지만 H 팀장님은 불의를 참지 못하셨다. 직원보다도 더 열심히 일했고 민원 해결도 적극적이었으며 항상 직원을 보호하려고 힘썼다. 

 15년 전,  이곳으로 전입해 왔을 때 우연히 H 팀장님의 팀으로 발령받아 팀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같은 팀에서 일한 것은 그 후 한 번 더 있긴 했지만 총 5년을 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항상 H 팀장님은 나의 모범이셨다. 평생 나의 롤모델이다. 

 그러나 팀장님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의외로 시기와 질투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H 팀장님이 그 후 과장님으로 진급하실 때 경쟁상대가 되었던 사람들과 그 라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팀장님은 노조에서 일을 오래 하셔서 과장으로 승진하실 때 노조에서 힘이 되어주었다. 이런 것이 공격의 빌미가 되었다.

 어느 사회이든지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대부분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바른 사람일수록 꽃밭이 아닌 진흙 길을 걷는 법! 하지만 팀장님은 진흙탕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든 길을 찾아 당당히 걸어가셨다.  노조에서 오래 일하셨고 힘든 주차관리과에서 정년퇴직하셨다.  퇴임식 때 나는 너무 서운해서 말도 못 하고 조용히 사진만 찍었다.


 “아 과장님! 여기 웬일이세요?”

 “민*씨야말로 웬일이에요? 나는 여기 다닌 지 꽤 됐어요.”

 H 팀장님이 정년퇴직한 후 일 년이 지나갈 때쯤 도서관에서 우연히 팀장님을 만났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팀장님의 동네가 바로 우리 집 옆 동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팀장님은 주택관리사 공부를 하고 계셨다. 1년도 넘게 새벽같이 나와 공부하고 퇴근 시간에 맞추어 집에 간다고 했다. 역시 팀장님은 퇴직하셨어도 열심이셨다. 

 그 후 나는 가끔 도서관에 갈 때마다 팀장님을 찾았다. 팀장님의 책상은 노트북 실 쪽에서도 거의 안쪽이었는데 항상 작은 태블릿 PC를 걸어놓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계셨었다. 그러다가 내가 이사를 하게 되었고 아마 그때쯤 팀장님도 시험에 합격하셨을 거다. 

 또다시 3년이 흘렀다. 최근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팀장님은 수도권에 있는 어느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이 되어 생활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곳에서도 우리 팀장님은 또 바른말을 하시고 바른 행동을 하시고 계시겠지. 

 사람들이 꽃길만 걷길 바란다는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꽃길만 걸어서는 바른길을 걸을 수 없을 테니까. 편한 길보다는 가끔은 진흙 길을 걸을 수도 있고 돌길도 걸을 수 있겠지만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팀장님이 걸었던 그 쓸쓸한 길을 나도 담담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걸어가고 싶다. 


퇴근이 늦었다. 밤하늘에 오리온자리가 총총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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