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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Mar 18. 2023

내부의 적 2

-공원 고양이들 -민원 편 

 컴퓨터에 민원이 찍었다는 사진이 보였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이른 봄 점심시간, S님이 외출냥 봄이에게 간식을 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봄이는 S님의 무릎에 올라가려는 것처럼 다가와있고 S님은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고 있다.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내가 먹는 것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 다른 동물에게 신경 쓰고 밥을 주는 장면을 보고 급식 터를 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굴까? 이 급식 터가 사적 적치물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누굴까? 사적 적치물이라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은 대체 누굴까?

 

 “팀장님. 저 구청장님 면담 좀 하게 해 주세요.”

나는 직원 노동조합을 찾아갔다. 노동조합에 아는 직원이 있었다. 구청장은 워낙 합리적이고 생각이 트여있는 분이라 나는 먼발치에서 항상 존경해 왔다. 12년간 근무하면서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구청장님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겠다는 것을 사적 적치물이라고  주지 못하게 하실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합 직원은 구청장은 바빠서 만나기 힘들다며 다른 과의 과장님을 소개해주었다. **과의 과장님으로 오랫동안 조합 간부를 해왔고 집에 2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계신 분이었다. 그분은 보건소장과도 친분관계가 있어 보호팀장의 직속상관인 보건소장을 만난다면 오히려 일이 잘 풀릴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몇 년 전 동 주민 센터에서 근무할 때 아는 단체 사람들이 있는데 캣맘 단체를 했던 분이라며 도움이 될 거라고 이분도 만나보자고 한다. 그날 저녁 퇴근 후 보건소장을 과장님과 함께 만났다.

 “우리 동물보호팀장이 진짜 똑똑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그렇게 얘기했다면 맞을 거예요.”

보건소장만 만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법에 배치되지 않고 오히려 법에 근거한 일임에도, 사실 그냥 밥을 먹게 해 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임에도 통하지 않았다.  이미 공공 급식터를 설치한 구가 설치하지 않은 구보다 훨씬 많았다, 그렇지만 우리의 요구는 우리 구 전체에 급식 터를 설치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사료를 지원해 달라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이미 있는 30센티미터의 나무 급식터 그릇 두 개에 그동안 했던 것처럼 아무런 지원 없이 사료와 물을 주겠다는 거였다. 

 

 공원에는 10년 전에 설치한 커다란 조각과 미술품들이 여러 개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솔직히 자연과 어울리지도 않고 흉물스러웠다. 이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면서 어째서 이렇게 작은 30센티미터, 잘 보이지도 않는 나무로 된 급식 터는 문제가 된다고 하는가? 급식 터는 깨끗했다. 위생문제는 말할 수가 없다. 보건소 측도 알고 있었다. 그냥 그들은 민원이 무서운 거였다. 민원이 싫은 거였다. 다시 말해 일하기 싫은 거라고 해석할 수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우리도 민원임을 알게 해주는 것, 이 일이 해결되지 않았을 때 더 큰 민원을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일을 하고 싶지 않은데 더 큰 민원이 생길 수 있다면 그것을 막고 싶겠지. 


 고양이들이 민원을 제기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굶어 죽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보건소장과 헤어진 후, 과장님과 함께 **공인중개사를 찾아갔다. 그분은 캣맘 단체 회원이었고 집에 일곱 마리의 고양이를 구조하여 키우고 있었다. 공인 중개사 사장과 같이 일하는 분이 **일보사 기자였다. 그들은 급식터 철거 반대 연명부를 받아주고 만약 급식 터를 철거할 때는 기사화하겠다고 말했다. 과장님이 다시 보건소장과 통화했다. 그제야 보건소장도 이해한 듯했다.

 “그러면 급식터를 치우라는 민원은 한 명이니까 만나서 설득해 보라고 할게요. 캣맘 단체랑 언론이 움직이면 일이 너무 커져요.”

보건소장은 절대 기사화는 안 된다며 자기가 담당팀장에게 전화하겠다고 했다. 더 큰 민원이 생긴다니까 문제가 완전히 달라졌다. 


 다음날 아침, 과장님이 잠깐 내려오라고 했다. 아침부터 보건소 담당팀장과 담당자가 찾아왔다. 상담실로 내려갔다. 과장님과 내가 나란히 앉았다. 

 “그동안 계속 인정하던 것을 이제 와서 안 한다니 그건 말이 안 되죠. 규정이고 뭐고 다 똑같지 않습니까?”

과장님이 먼저 말했다. 의외로 동물보호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아 그건 원칙상 그렇다는 이야기고요. 우리가 인정해 주겠습니다.”

순순히 인정하겠다고? 역시 민원이 무섭긴 무섭구나. 난 한숨을 놓긴 했지만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공식적인 인정은 겉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또다시 급식 터에 대해 사적 적치물 신고가 들어올 수 있다. 이번 신고도 벌써 몇 번째였다. 나는 말했다. 

 “보건소에서 인정한다는 마크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오히려 보건소도 편해져요. 공공 시설물이라고 한다면 누가 뭐라 하겠어요? 법에서도 공공기관에서 급식 터를 설치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 민원들이 계속 문제제기하는 것은 공원에 사적 적치물을 설치했다는 것으로 지자체에서 인정한 공적 설치물이라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보건소가 승인했다는 문구를 넣으면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다. 시비를 건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결국 담당팀장은 급식 터에 보건소 마크를 붙여도 된다고 인정했다. 나는 돌아와서 바로 보건소마크와 문구를 인쇄해 급식 터에 붙였다. 

 〔이 급식 터는 보건소에서 허가한 것으로 임의로 치우거나 훼손하면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길고양이들이 먹고산다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 것이었구나.’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나는 이렇게 당연하게 밥을 먹는데 그들은 밥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길고양이에게 아사는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재난이었다. 당장 밥이 없을지도 모르는 세상이 우리 길고양이들에게는 현실이다. 공원 고양이들은 그나마 나은 삶이었는데도 한순간에 급식 터가 없어질 수도 있었다. 

굶는다는 것을 걱정해 본 적이 언제였지? 아주 어릴 때 몇 번 굶어본 적이 있었나? 

 이제 다이어트를 빼고는 굶어본 적이 없는 나는 밥 먹기가 너무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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