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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May 21. 2023

레미의 꿈 2

공원고양이들- 레미 2편

 사거리에서 아기고양이를 놓친 후 며칠이 지났다. 강치 아저씨에게서 한밤중에 톡이 왔다. 그는 공원에서 아기고양이를 발견했다며 동영상을 보냈다.

  며칠 전 사거리에서 놓쳤던 그 삼색이었다. 영상에서 삼색이는 온 힘을 다해 울고 있다. 이건 엄마를 찾는 울음이다. 규칙적으로 모든 힘을 다해 우는 울음소리. 아기고양이가 내는 소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 처음에 아리를 집에 데려왔을 때 3일 밤낮을 이렇게 큰 소리로 울었었다. 그래서 이런 울음소리를 알고 있다.

 불행하게도 아기고양이가 엄마를 잃어버렸다면 몇 날 며칠을 운다. 엄마를 찾을 때까지. 아니면 엄마를 포기할 때까지. 구조할 수도 없고 엄마도 없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삼색 아기가 8차선을 건너서 공원으로 왔다는 것이 대견했다. 작은 몸으로 차가 쉴 새 없이 달리는 8차선을 건너다니. 그래도 살길을 찾아낸 것이다. 공원은 급식 터가 있으니까. 


 며칠이 또 지났다. 공원을 돌다가 그 삼색 아기를 발견했다. 아기는 급식 터에서 밥을 먹고 있다. 공원 바로 앞에 있는 다세대에 숨어 사는 듯 밥을 다 먹고 그 집으로 들어갔다. 똑똑하게도 급식 터 근처 집을 찾아냈다. 다행이었다.

 삼색 아기 고양이는 작지만 강한 것 같다. 내 손을 물고 8차선을 건너고 급식 터를 찾아내기까지 아기로서 쉽지 않은 길을 헤쳐 왔다. 

 무슨 이름을 지어줄까? 고민 끝에 영어와 한글의 기묘한 조합을 거쳐, ‘레미’로 지었다. 브레이브(용감한)의 ‘레’와 귀요미의 ‘미’를 땄다. 용감하다는 의미도 넣음과 동시에, 예쁜 이름을 짓고 싶었다. 용감한 귀요미 레미는 매일 급식 터에 나타났다. 처음엔 나를 피했지만 몇 달이 지나자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레미는 이름처럼 용감하다. 다른 고양이들이 와도 도망가지 않는다. 그 급식 터에는 이사 온 고양이들이 세네 마리 더 있었다. 레미가 가장 작았는데도 가끔은 레미가 그 고양이들을 깔고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장난치는 건지 레미는 겁이 없었다. 

 한 달 전, 이사 온 다른 고양이를 중성화시키려고 잡으려다 예상치 못하게 레미가 잡혔다. 포획 틀에 레미가 들어갔다. 사실 레미는 작고 어려서 한두 달 더 있다가 잡으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보통 중성화는 6개월에 한다. 추정컨대 그때 아마도 4개월 령 정도였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놓아주면 다음번에 포획 틀을 알아볼 수 있어서 잡기 어려울 수 있다. 고양이들은 똑똑해서 한번 포획 틀에 들어가 잡혀본 아이들은 다시는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빠르긴 하지만 레미를 중성화했다. 조금 빠르게 중성화하는 것이 임신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테니까. 4개월부터는 2킬로그램만 넘으면 중성화할 수 있어 요건은 되었다. 레미는 포획 틀에서 도망치려고 하도 뛰고 부딪혀서 코의 피부가 다 벗겨졌다.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거의 다 회복되어 예전의 예쁜 얼굴을 되찾았다.  


 아리는 집에 온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중성화도 하고 성묘가 되었지만, 여전히 작다. 원래 잘 크지 않는 것 같다고 수의사는 말했었다. 원래 작은아이들이 있다고 했지? 그래도 오렌지색 태비 아리는 처음 왔을 때처럼 천방지축이다. 애기 때부터 자기보다 몇 배 큰 루이, 라온을 때리고 다녔었는데 지금도 루이, 라온을 이기려 들고 실제로도 이기는 것 같다. 루이, 라온이 귀엽다고 봐주는 건가? 

 아리가 처음 집에 왔을 때는 사람을 피해 다녔다. 급식 터도 없는 곳에서 태어나서 살다와서 식탐도 강했다. 밥을 다 먹고 다른 아이들 것까지도 먹어버려서 문을 닫고 밥을 주어야 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고 중성화를 하면서 완전히 성향이 바뀌었다. 애교가 엄청 많아졌다. 이제는 침대에서 자고 지나갈 때 꼬리를 감는다. 작고 이쁜 아리는 모두의 귀염둥이다. 사람들은 물론이고, 고양이들까지도 아리를 봐준다. 실제로도 우리 집의 여섯 마리 고양이중 가장 어리고, 가장 작은 데다 애교가 많아 최고 귀요미가 되었다. 

 아리는 9살이 된 루이, 라온, 새온 어르신 틈에 끼어서 낮잠을 자고 있다. 오히려 한 달 나이가 많은 다온이와 2살이 많은 루나가, 길에서 집에 온 게 아리보다 6개월 정도 늦어서 그런지 아직 잠이 많지 않다. 아리는 제일 어려도 집에 먼저 온 선배로 이제 하루의 대부분을 낮잠으로 보낸다.


 레미는 이제 6개월령 인가? 중성화를 빨리 해서 그런지 레미도 유난히 작다. 아기 같은 느낌이 아직도 난다. 생애 처음, 길에서 겨울을 맞기에 걱정이 많다. 힘들 테지만 잘 견뎌야 할 텐데.

 아리와 레미, 똑같이 길에서 태어났지만, 운으로 갈린 생은 너무도 다르다.


 인간의 삶도 이렇겠지?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 같을까? 나도 재벌의 삶은 모르지만, 집고양이들과 길고양이들의 삶을 보면서 인간의 삶이 떠오르는 것은 나뿐만 일까?

고양이 공장이 없어지고 거기에서 임신과 출산만을 반복하는 품종냥들이 없어지고, 생명을 상품으로 사고파는 그런 사회가 없어질 날이 올 수 있다면 좋겠다.

 펫샆이 없어지고 아리처럼, 우리 레미 같은 길고양이들이 집으로 들어갈 날은 진정 꿈일까?

 생명을 문자 그대로 생명으로 대하는 사회는 진정,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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