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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Sep 28. 2023

아직도 후회 중

-나의 부동산 실패기-

 “와. 드레스 룸이 넓다.”

  “근데 방들이 왜 이렇게 작지?”

 나와 별이는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며 다 새것이라서 좋아라 하고 있는데 남편 민혁은 계속 집이 작다며 구시렁거린다. 같은 33평이지만 지금 사는 구형 33평에 비해 ##시의 모델하우스의 방은 작아 보이긴 했다. 그래도 구역이 나뉘어있어 오히려 정리가 편할까? 구형 아파트에는 없는 현관 창고(골프용품 수납용도?), 팬트리(주방용품 수납 창고), 드레스 룸이 있다.

 안방 드레스 룸은 넓어서 마음에 들었다. 내 옷과 민혁의 옷, 그리고 이불은 정리가 잘될 것 같다. 그러나 침실 1, 2가 작아서 별이와 슬이의 방에 옷장을 넣을 수는 없겠는데? 팬트리를 개조해서 드레스 룸으로 쓰면 되겠다. 안방 드레스 룸으로는 다 소화하기 힘들 테니까.

 주방은 ㄷ자 형 구조로 동선이 편할 것 같다. 작은 창이 달려있어 조망과 냄새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좋아 보인다. 거실은 약간 작은 듯했다. 여기에 캣타워도 놓아야 하고 서재도 만들어야 하고 85인치 T, V까지. 짐이 많긴 하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집을 샀다. 2년 만에 18평에서 24평으로 넓혀갔다. 돈 한 푼 없이 전세자금 대출부터 시작했었기에 집을 샀어도 대출이 많았다. 아이 두 명의 사교육비와 생활비가 빠듯해서 매달 나가는 대출이자가 아까웠다. 은행만 도와주는 것 같았다. 전세로 이사하고 열심히 저축해서 청약하리라 마음먹었다. 

 별이가 중학교 갈 때쯤 집을 팔고 새집 전세로 이사하였다. 대출을 전부 갚아 기분이 좋았다. 빚이 하나도 없다니 날개가 달린 듯 날아갈 것 같았다. 게다가 처음 간 새집은 펜션처럼  깨끗하고 넓었다.

 그러나 2년 만에 전세금이 1억 5천만 원이나 오를 줄은 몰랐다. 원래 전세금의 40% 정도가 오른 것이다. 월급은 거의 동결 수준인데 말이다. 대출을 받지 않으려고 전세로 이사 왔는데 이제는 전세도 대출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2년마다 전세금을 올려주면서 우리의 대출은 늘어갔다. 집을 사야만 대출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전세로도 충분히 대출이 쌓일 수 있었다. 

 삼 년 후 별이의 고등학교가 집에서 먼 곳으로 배정되었다. 버스로 40분 걸리는 거리였다. 나는 좋은 학교란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학교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이사를 했다. 마침 새 아파트 단지가 학교 근처에 있다. 하지만 전세가 거의 없다. 1,200세대 단지에 전세매물이 33평과 46평 각각 하나밖에 없다. 확장형 46평이 나왔는데 33평이랑 크게 가격 차이가 없었다. 그냥 구경만 하리라 생각했는데 너무 맘에 드는 것이 아닌가. 방들과 거실이 모두 넓었고 인테리어도 훌륭했다. 우리는 계약을 했다. 방이 4개라 서재까지 만들었다. 


 “이 집 너무 괜찮은데 살까?”

당시 미분양 되었던 그 단지 46평 집 가격은 평당 9백 정도로 4억 5천 정도였다. 하지만 민혁은 부동산 가격은 떨어질 거라며 사지 말자고 했다. 너무 비싸다며. 

무리해서 대출을 받으면 살 수 있었겠지만 나도 대출이자가 백만 원 이상 나가는 것은 싫었다. 그렇게 내 집 마련은 멀어졌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가파르게 올라가기만 했다. 매매가격뿐 아니라 전세 가격 또한 계속 천정부지였다. 7년을 살던 그 집에서 2년마다 몇 천씩을 올리다가 2020년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집주인이 2년 만에 전세금을 한꺼번에 추가로 2억 5천을 올리면서 우리는 옆 동네 구축 33평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집을 줄였어도 1억을 더 추가해서 전세 계약을 했다. 

 우리가 7년 살았던 그 아파트의 가격이 단 7년 동안 드디어 세배로 오를 때까지도 집을 안 산 것에 대해 크게 후회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집값이 오르더라도 다른 집도 오르니까 그 집을 팔 수는 없을 거다. 그렇다면 결국 내 손에 돈이 들어온 것은 아니다. 그건 결국 돈을 찾을 수 없는 은행에 넣어놓고 사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나? 

 평수를 줄였어도 나는 새로 이사 온 집이 마음에 들었다. 19층으로 안양천 전망이라 도심 속의 자연이었다. 아침마다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심지어 밤중에는 개구리 소리도 들렸다. 

더욱이 열심히 저축해서 그동안 쌓였던 전세대출을 다 갚았다. 이제 우리 집은 15년 전 집을 팔았을 때처럼 또다시 빚이 하나도 없었다. 청약하게 되면 대출을 내겠지만 그 정도는 감당하리라. 


  ≪** 집값, 서울보다도 더 높아≫≪청약 광풍, ** 12억을 찍다≫ ≪**시 전국 최고 집값≫

 내 마음이 흔들린 것은 이런 기사가 부동산 시장을 도배할 때부터였다. 이제 전세로 15년을 살아 청약 점수도 높았고 아이들이 대학교에 다녀서 더는 학교를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었다. 말하자면 **시에서 우리는 청약을 넣기만 하면 당첨권이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청약을 넣을 수가 없었다. 부동산 시장만 3배 뛴 것이 아니었다. 청약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자잿값, 인건비 상승으로 건설비 자체가 올라갔다. 월급은 10년 동안 거북이걸음인데 부동산은 광속으로 에베레스트산이 되어 있었다. 

몇 년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열심히 저축해서 집을 사리라 했던 내 생각은 또다시 무너졌다. 


 “나는 뭐 집이 없어도 돼. 그거 꼭 있어야 해?”

민혁은 이렇게 말하며 본인의 책임을 회피했다. 결국 내가 나서야 했다. 나는 집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몇 년 동안이나 아침마다 인테리어 사이트와 전원주택 블로그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어떻게 집을 꾸밀지,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나는 항상 생각해 왔다.

 우리 고양이들과 함께 테라스가 있는 집에서 햇볕을 맞고 싶었는데. 이런, 망했다. 7년 전에 은행 이자를 감당하고 그 집을 샀더라면 나았을 텐데. 드디어 나는 나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20년을 살던, 이 **시에 청약하려면 엄청난 대출에 원금은 차치하고 이자만 매월 이백만 원 가까이 은행에 내야 한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 찾은 곳이 서울에서 더 멀어진 ##시였다. 그곳의 모델하우스를 민혁과 별이와 함께 보고 왔다. 다음 주 청약을 넣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 아파트 단지는 지금보다 직장에서 멀어지기는 해도 지하철이 있으니까 괜찮다. 아이들도 대학생이니까 학교 좀 멀어도 되고, 아빠도 이제 안 계시니까 굳이 **시에 살지 않아도 되잖아. 

 솔직히 말해서 **시는 좋은 게 하나도 없어. 교통도 지옥이고 지하철도 콩나물단지고 공원도 큰 거 하나 없고 말이야. 이제 여기 떠나서 속 시원하다!! 


 그런데 가슴 한구석이 왜 이렇게 헛헛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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