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하 Oct 22. 2023

나를 기다린 거니?

-루나 5-3

급식 터에 눈이 한 뼘이나 쌓였다. 아침 일찍 출근한 나는 꼬마 빗자루를 가지고 가서 급식 터 위를 털었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급식 터로 들어오는 길도 대충 눈을 치워주었다. 치우다가 보니 눈 위에 고양이 발자국이 찍힌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다?

 ‘루나 발자국 아냐? 두 마리잖아. 나란히 가는 것 같은데.’

이건 분명 루키와 루나 발자국이다. 지난밤, 같이 왔다 간 것 같다. 내가 보지 못했어도 근처 어디선가 루키와 루나는 함께 사는 것이다. 루나는 떠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내 얼굴에 웃음이 가득 피어났다. 나는 사료를 가득 붓고 미지근한 물을 핫 팩 위에 올려놓았다. 


 눈이 많이 내려 두 마리의 고양이 발자국을 확인한 지 며칠이 지났다. 1월 말이지만 햇볕이 났다. 건물들 모서리에서는 눈 녹은 물이 비처럼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일기예보에서는 밤은 여전히 영하이지만 오후 기온은 영상 8도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점심시간,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젖소 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루키였다. 본능적으로 나는 루키 근처를 훑었다. 루키 뒤쪽으로는 아무도 없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때 주차장 건너편 쪽으로 또 다른 고양이가 덤불 사이를 지나는 게 보였다. 

이 허리 밑 까만 치마 무늬는? 루나! 안 보인지 정확히 15일 만이었다. 

 “루나. 너 어디 갔다 온 거야?”

나의 호들갑에 루나가 뛰어왔다. 추르에 닭고기까지 꺼내어 루나에게 주었다. 루나는 왠지 허겁지겁 먹는 것 같다.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루나는 길냥이답지 않게 식탐이 별로 없었다. 골골송을 부르는 루나를 보면서 털을 만져보았다. 루나의 뒷다리 근처의 털이 많이 빠진 것도 같다. 어디서, 싸운 걸까?

 “집 떠나면 고생인데 도대체 어디서 지내는 거야. 루나!”

 집을 떠나도 루키는 루나만큼 걱정되지 않았다. 루키는 경계심이 많은 고양이라 자기 앞가림은 할 것 같았지만 루나는 개냥이라 훨씬 더 걱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루키와 루나가 같이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다. 루키가 지켜줄 것 같다. 

 그날 오후는 햇살이 주차장 급식 터를 비추었다. 겨울 햇볕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루나는 눈이 다 마른 겨울 집 위에 올라가 햇볕을 쬐면서 자고 있다. 루키도 똑같은 포즈로 겨울 집 위에 올라가 있다. 겨울 집에 들어가서 자면 좋을 텐데. 겨울 집이 너무 답답해서 그러는 건가? 햇볕이 있어도 밖이라 추울 것 같다. 퇴근하기 전 나는 루키와 루나에게 닭고기를 한 번 더 배달해주었다. 햇살이 포근해서였는지 루키와 루나는 오후 내내 겨울 집 위에 있었다. 

 그 후부터 그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급식소에 나타났다. 내가 보지 않을 때라도 밥은 먹으러 오고 있었고 단지 잠만 겨울 집에서 안 잘 뿐이었다. 핫 팩을 넣어주었어도 추웠나 보다. 주차장은 노상에 있었으니까. 매일 보지 못하는 것은 서운했지만 그래도 항상 밥은 먹으러 온다는 것은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가장 추운 1, 2월이 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 모임이었다. 친구 중 한 명이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한 마리를 더 키우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 입양할 고양이를 문의했다. 공원에는 아기 고양이가 세 마리 살고 있다. 쌍둥이 까치, 또치는 엄치의 아기들로 이제 4개월이 되어 무럭무럭 크고 있었고 두 달 전에 공원에 온 밸리는 3개월로 접어든 턱시도 아기다. 세 마리의 아기 사진을 보여주자 너무 귀엽고 예쁘다고 다들 놀랐다. 

하지만 나는 다음 날 아침, 친구에게 다시 루나의 사진을 보냈다. 아직 아기들인 까치, 또치, 밸리는 공원에 잘 적응하고 있다. 어쩌면 공원에서 잘살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루나는 지나치게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라서 꼭 입양을 가야 했다. 나는 루나를 보내고 싶었다. 

 그동안 루나는 성묘라서 입양을 갈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친구라면 성묘라도 예뻐하며 키울 것 같다. 워낙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기가 아니라도 루나 같은 개냥이라면 좋아할 것 같다.

 그렇지만 사진을 보내놓고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친구도 새끼 고양이를 좋아하면 어쩌지? 나의 불안한 마음과 달리 착한 친구는 곧 답장을 보내왔다. 

 〔아. 이쁜 아이네? 루나? 괜찮을 것 같아〕

 〔그런데 얘가 매일 볼 수는 없는 아이라서 시간을 좀 줘. 나타나면 데려다줄게.〕

나는 답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른다. 루나가 입양을 가다니! 마음속에 항상 답답했던 무언가가 내려가는 것 같았다. 


 “루나. 너 여기 있네? 입양 가는 거 어떻게 알고 왔어?” 

그날 퇴근하려고 주차장을 나서는데 급식 터에 루나가 와 있다. 기회였다. 나는 바로 집에 전화했다. 다행히 남편이 비번이라 집에 있었다. 캐리어를 가져오라고 하고 별이까지 불렀다. 루나는 개냥이라 포획용 틀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안아서 캐리어에 넣으면 될 것이었다. 30분을 기다려 별이와 남편이 오고 캐리어를 가져왔지만, 루나를 잡지 못했다. 의외로 루나는 놀란 듯, 때마침 나타난 루키 뒤에 숨었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못 잡고 시간이 지나갔다. 결국 별이와 나는 포기하고 다음 날 포획 틀을 가져오기로 했다. 개냥이 루나도 포획 틀이 있어야 했나?


 〔미안하지만 입양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것 같아. 아무래도 그냥 한 마리만 키워야겠어. 내가 좀 일이 바빠지기도 할 것 같아서〕

그날 밤, 친구에게서 톡이 왔다. 실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친구는 출, 퇴근 거리가 멀었다. 

 최고 개냥인 루나도 입양을 갈 수 없는 건가? 아기 때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기 루나는 얼마나 예뻤을까? 사이즈만 작아진 포동포동하고 말 많은 귀여운 고양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음 날, 겨울의 막바지라 날씨는 추웠다. 그래도 오후에는 조금 따사로운 햇살이 나오긴 했다. 점심시간에 공원을 다녀오는데 루나가 햇볕을 쬐고 있다. 신기하게도 루키도 없이 혼자였다. 그동안 루키는 혼자 온 적이 많았지만, 루나는 없었는데? 전날 잡으려다 도망가서 당분간 안 올까봐 걱정했었는데 바로 나타나다니. 마치 루나는 나를 기다린 것 같다. 잠깐 간식을 주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 루나 지금까지 여기 있었어? 추운데?”

5시간이 지나고 퇴근하는데 루나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찬바람이 불어 안쓰러웠지만 따라오려는 루나를 따돌렸다. 공원 급식 터에 밥을 주고 도서관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루나는 계속 나타났다. 그냥 나타나는 게 아니라 오전에 나타나서 퇴근 시간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월요일에 입양하려고 잡으려다 실패한 후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타나서 종일 급식 터에 있는 것이다. 

나는 루나를 매일 보아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추운 날씨에 밖에 있는 루나가 걱정됐다. 루나는 감기도 든 것 같았다. 영하의 날씨에 계속 밖에 있으니 당연하겠지.


 “루나. 저기 있네?”

토요일 오후, 급식 터에 밥을 주려고 별이와 함께 사무실에 왔다. 별이가 먼저 루나를 보았다. 루나는 겨울 집 위에서 자고 있다. 겨울 집에 들어가서 자지는 않아서 담요를 겨울 집 위에 깔아주었었다. 전날 내가 담요를 깔아주고 퇴근할 때 그 모습 그대로 루나는 담요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설마. 어제부터 지금까지 밤새도록 여기 있었던 건 아니지? 루나야.”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추운 데서 밤을 보낸 거니? 

 루나. 나를 기다린 거니?

이전 02화 루나! 여기 매일 오고 있는 거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