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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22. 2023

최강 고양이 루나

-루나 5-4

일주일 동안 루나는 나를 기다린 것일까? 아니, 만난 지 이틀째,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던 그때부터였을까? 이렇게 계속 영하의 날씨인데 며칠째 주차장에서 꼼짝도 하지 않다니 도대체 어쩌자고. 

 루나는 밥도 먹지 않고 별이의 손을 핥으며 차가운 바닥을 뒹굴고 있다. 

 ‘루나는 왜 우리 집에 오지 못하는 거지? 다섯 마리는 되고 여섯 마리는 안 돼?’ 

루나는 개냥 중의 개냥이라 동물 학대자를 만날 위험이 다른 그 어떤 고양이보다도 컸다. 그걸 잘 알면서도 나는 지난 3개월간 외면해왔다. 그러나 드디어 나는 깨달았다. 루나를 입양할 사람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을, 루나가 나를 기다렸듯 나도 루나를 기다려왔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뒤돌아가서 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캐리어를 들고 오는 나를 발견하고 별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엄마. 정말이야?”

 “루나 데려가자. 너무 불쌍하잖아.”

별이는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나와 함께 밥 주러 왔었기 때문에 루나를 여러 번 보았다. 그동안 루나에게 정든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이 점을 노렸다. 별이만 오케이한다면 남편 민혁과 둘째 슬이는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다. 별이가 찬성한다면 루나의 입양은 승산이 있다. 슬이와 민혁이 반대를 하더라도 2대2, 50퍼센트이고 어쩌면 슬이는 내 편일 거다. 

 “엄마. 한번 데려가면 돌이킬 수 없어.”

 “당연하지. 근데 안 들어갈지도 몰라. 저번처럼”

며칠 전 친구가 입양하기로 한 날, 한 시간 동안이나 시도했어도 루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 별이가 루나를 유인했다. 닭고기를 보여준 후 다시 캐리어 속에 넣었다. 루나가 머리를 캐리어 속에 넣고 닭고기 냄새를 맡았다. 루나의 머리와 가슴이 캐리어에 반쯤 들어갔을 때 별이가 재빨리 루나를 밀어 넣고 지퍼를 잠갔다. 

 “뭐야? 이렇게 쉬워?”

 “들어간 거 맞지?”

 갑자기 갇혀버린 루나는 어리둥절한 것 같았지만 의외로 조용했다. 우리는 차에 루나를 싣고 동물병원으로 갔다. 범백 검사도 음성이 나오고 전반적으로 루나는 건강하다고 했다. 수 의사는 이빨을 보더니 어린아이 같다고 한다. 1년도 되지 않아 보인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루나는 웬만한 성묘보다 몸집이 컸고 중성화까지 되어있어서 최소 몇 년은 된 줄 알았다. 

 어린 고양이였구나.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와서 루나를 슬이 방에 풀어놓았다. 길에서 살다가 처음 집에 왔는데도 루나는 편안해 보였다. 따뜻해서였는지 곧 잠이 들었다. 혹시 집에서 살던 아이인가? 

 어쩌면 루나는 집에서 키워졌다가 어릴 때 버려진 게 아닐까? 길을 헤매다가 캣맘에게 발견되어 중성화되었고 그곳에서 살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구청으로 이사 왔나 보다. 사나운 아이가 나타났던지, 아니면 모험심에 길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루나의 과거, 잃어버린 조각이 맞춰지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개냥이였던 이유가 있었던 걸까? 

 슬이는 자기 방에 잠들어있는 루나를 보고 웃음 지었다. 3개월 전 루나가 나타났을 때부터 얼마나 루나 얘기를 했는지 슬이도 루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민혁도 의외로 별말이 없다. 대세가 기운 걸 알아챘나? 그는 작은 방석에 내 목도리를 베고 잠든 루나를 보고 놀라기까지 했다. 

 “고양이 맞아? 아니 어떻게 첫날부터 저렇게 누워있어?”

민혁은 신기한 듯 루나를 바라보았다. 

 “루나는 개냥 중의 개냥이라니까.”

나는 개냥에 방점을 찍으며 답했다. 루나는 마치 우리가 그동안 키웠던 고양이처럼 집에 적응했다. 하루 만에 방묘문 앞에서 내보내 달라고 시위까지 했다. 그동안 주차장과 아파트단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살았는데 갇혀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하지만 거실로 내보내 줄 수는 없다. 혹시 모를 전염병의 위험과 조심스럽게 기존의 아이들을 만나야 해서 2주간 격리가 필요했다. 바이러스의 잠복기가 2주 정도 되었고 성묘로서 갑자기 만나면 싸울 수 있어서 서로의 냄새에 먼저 적응해야 한다. 

2주의 격리 기간 동안, 루나는 집에는 잘 적응했지만, 사람이 꼭 옆에 있어야 했다. 사람이 안 보일 땐 큰 소리로 울다가 사람만 보이면 갑자기 귀여운 소리를 냈다. 게다가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루나는 방문 앞으로 다른 고양이가 지나가면 달려가서 방묘문에 붙어 아는 체까지 했다. 다른 고양이들은 기겁했지만, 루나는 친해지고 싶은지 방묘 문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원래 공원에서 살던 다온이는 집에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3개월이 걸렸나? 그래도 특이하게도 다온이가 싸우지 않고 다 맞아주어서 기존의 우리 집 4마리의 고양이 루이, 라온, 새온, 아리는 다온이와 잘 지내고 있었다. 


 드디어 2주가 지났다. 나는 합사에 대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밖에서도 사나운 루키랑 잘 지냈기 때문에, 우리 집의 순한 고양이들과도 당연히 잘 지낼 거라고 확신했다. 루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천사 고양이니까 당연히 고양이도 좋아하겠지? 여섯 마리의 고양이들이 서로 포개져서 잠도 자고 그루밍도 해주는 평화로운 장면을 나는 꿈꾸었다. 

일요일 저녁 다 모여서 슬이 방문을 열었다. 루나는 이 순간을 기다려온 듯 성큼성큼 거실로 나왔다. 오히려 다른 고양이들이 거실에 있다가 루나의 눈치를 보며 머뭇머뭇했다. 

 “아냐 루나는 착해. 단지 몸집만 클 뿐이야.”

나는 안심시키려고 간식을 꺼냈다. 같이 밥을 먹고 놀아주면 친해질 거야. 하지만 루나는 밥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루이를 바라보는 루나의 눈은 인간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빛이 났다. 의외로 몸집이 가장 큰 루이가 겁을 먹은 듯 뒷걸음질 쳤다. 순간 루나가 루이를 쫓았다. 루이는 곧 전속력으로 도망갔다. 루이가 도망가자 루나는 다른 아이들도 쫓았다. 여섯 마리 모두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난리 통 속에서 별이와 내가 겨우 루나를 잡아서 다시 슬이방에 넣었다. 

 루나가 루이보다 작았음에도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실 루이는 사람들이 모두 아메리칸 고양이라고 할 정도로 몸집이 컷다. 루나는 5.5킬로그램이었으니까 7.5킬로그램인 루이보다 2킬로나 작았다. 보통 길고양이들은 5킬로 정도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루나는 길고양이치곤 조금 큰 편이긴 했다.

 그렇지만 몸집보다도 나이가 더 큰 변수였나? 루나는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기다. 추정컨대 2살 정도? 일 것 같다. 수컷이고 한창때라 힘이 셌다. 반면에 루이와 라온, 새온이는 9살(인간의 나이로 따진다면 일반적으로 7을 곱한다. 9*7=63), 힘이 떨어질 시기이고 아리는 8개월밖에 되지 않은 작은 암컷이었으며 다온이는 겁이 많아 누구랑 싸우는 법이 없었다. 

 그 후에도 우리는 조심스럽게 몇 주 동안 계속 합사를 시도해 보았지만, 루나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루나는 다른 고양이들을 보기만 하면 쫓아가서 덮쳐 목을 물려고 했다. 자기가 서열 우위라는 것을 확인하려는 걸까? 길에서 살아남으려는 본능일까? 

 보통 다묘 가정들은 힘이 센 아이들과 약한 아이들을 분리해 놓는 경우가 많다. 약한 아이들이 공격을 당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생에서는 집과는 달리 분리해 놓을 수 없다. 그래서 고양이들은 서열 싸움으로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루나는 추정컨대 야생에서 최소 1년 이상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했을 터였다. 

 라온이가 루나의 발톱에 얼굴이 긁혀 상처가 생기고 나서야 루나를 합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세월이 흘러 루나의 힘이 빠지기 전까지는, 합사는 힘들 수 있을 것 같다. 

 방묘문이 없어서 만약 싸울 수 있었다면 루나는 다섯 마리의 고양이 모두를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거실에 나오자마자 루나는 그것을 알아챈 것일까? 루나를 풀어놓는다면 온 집안이 전쟁터가 될 수 있다. 

 순진하게도 나는 동그란 눈과 외모 때문에 루나가 약하고 순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성격이랑 외모는 다른데 왜 전혀 생각을 못했던 걸까?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루나는 최강 고양이였다. 루키도 사실 루나를 따라다닌 걸까? 


 루나의 하얀 털이 햇볕에 달궈져 따스하다. 루나는 나의 손을 핥고 있다. 집에 온 지 팔 개월째이지만 아직도 루나는 5대1로 격리되어 지낸다. 방문앞을 조용히 지나가는 아이들을 방묘문으로 갑자기 달려들어 공격한다. 방묘문이 있어도 기존의 아이들은 깜짝 놀란다. 격리해놓아서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난리가 났을거다. 

 최강 고양이 루나! 애들 좀 괴롭히지 말고 같이 잘 지내면 안 되니? 

 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더니 고양이 속도 전혀 알 수가 없는 거였다. 

오늘도 루나는 거실에서 혼자 일광욕 중이다. 언젠간 꼭 테라스가 있는 전원주택으로 이사 가서 우리 루나, 루이, 라온, 새온, 아리, 다온에게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를 선물해야지. 

그나저나 로또를 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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