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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22. 2023

낭만 여행 고양이

-루나 5-5

 루나는 우리와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고양이다. 고양이가 여행이라니!

 우리 집에는 루나 말고도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더 있지만, 같이 여행 갈 수 있는 고양이는 오직 루나뿐이다.

 루나는 처음부터 보통 고양이와는 달랐다. 나와 길에서 만난 지 3개월 후, 우리 집에 데려갔을 때 루나는 마치 살던 집 같은 반응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침대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더니 바로 잠을 자는 게 아닌가? 

 루나가 바로 적응하는 걸 보고 나와 별이는 생각했다. 어쩌면 루나는 여행도 데려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예감은 적중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루나와 함께 11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루나가 집에 온 것은 1년 2개월 전 초봄이었고 그때부터 강아지처럼 루나를 데리고 한 달에 한 번, 애견펜션으로 1박 2일의 여행을 다녔다. 여행은 주로 나와 별이, 루나 이렇게 셋이서 간다. 슬이와 남편(민혁)은 일정이 많아, 가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집에 남아있는 다른 고양이를 돌보기 위해 가족 중 한두 명은 남아야 했다. 

 펜션에서, 나와 별이는 각자 해야 할 공부와 준비해온 책을 읽었다. 루나는 그런 우리 옆에 붙어 앉아 잠을 잤다. 집에서는 다른 고양이들이 있어서 온전히 엄마와 누나가 옆에 붙어있긴 힘들었다. 그리고 집에서는 바빠 잘 놀아주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장난감으로 교대로 계속 놀아주었다. 루나는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장난감을 계속 물고 왔다. 길냥이로 살았을 땐 어떻게 살았던 걸까? 놀아줄 사람도 없었을 텐데.

 여행에서 루나는 외동 고양이로서의 행복을 누렸다. 몇 번의 여행이 지나고 나서부터 루나는 이 루틴을 눈치 챈 것 같다. 여행을 마치고 출발해야 할 아침 시간이 되면 루나가 사라졌다. 찾아보면 침대 밑이나 장롱에 들어가 있었다. 

 다시 집에 가는 게 싫다는 건가? 집에서 출발할 때는 캐리어에도 순순히 들어갔는데 아마도 루나도 여행을 좋아하나 보다. 


 “루나 봐. 바다 보고 있네!”

서해는 저녁노을이 지고 있다. 작년 여름에 갔던 강화도 펜션이었다. 창밖으로 지는 오렌지빛 노을에 나와 별이와 루나까지 우리는 노을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또 한 번은 복층 펜션에 갔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밑에 1층에서 공부하고 있어도 루나는 2층 침대에서 잠만 잤다. 호텔식 침구여서 푹신해서 그랬던가? 

 “엄마, 나와 봐. 별이 진짜 많아!”

 무척 맑은 봄날이었다. 강원도 횡성의 펜션의 밤, 하늘 가득 별이 총총 빛났다. 어림잡아 200개 정도의 별을 본 것 같다. 서울에서는 10개만 보아도 많이 본 것인데 말이다. 루나는 별을 보러 나간 우리들을, 방안에서 바라보며 야옹거렸다. 왜 위험한데 나갔냐고, 빨리 들어오라는 것처럼. 


 처음 만난 날부터 내 발밑에 구르면서 애교를 피우던 루나를 나는 3개월이나 차가운 길에 두었다. 결국 루나의 계속된 애교와 시위에 굴복하여 우리 집 다섯 마리의 고양이에 이어 루나는 여섯 번째 고양이가 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고양이들과 루나는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루나는 처음 보자마자 루이, 라온을 공격하고 새온, 아리, 다온을 쫓았다. 루나는 공격적인데다 몸집도 컸다. 기존의 아이들을 제압하고도 충분히 남는 힘이 루나에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루나를 격리해야 했다. 루나가 온, 일주일 후 세 개의 방에 모두 방묘문을 설치했다. 별이 방에는 한살이 채 되지 않은 아리, 다온이 살고, 슬이 방에는 언니들만 따르는 9살 삼색이 새온이 자리를 잡았고, 안방에는 아기 때부터 안방마님인 10살 라온, 그리고 라온과 쌍둥이 애교쟁이 턱시도 루이가 침대 한가운데 앉아있다. 

 세 개의 방이 다 차있어 어쩔 수 없이 루나는 거실에서 대부분의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아무래도 다른 아이들은 루나가 무서운 모양이었다. 모두들 몇 번씩 쫓겨본 경험이 있다. 트라우마 때문인지 방에서 나오려 들지 않았다. 

 교대해주려고 루나를 다른 방에 가두고 거실에 5:1로 아이들을 풀어놓아도 어느새 방 안에 들어가고 없어서 다시 루나를 내보내게 된다. 반면에 루나는 방에 있는 것을 싫어했다. 방묘문 앞에 붙어서 팔을 내밀고, 방묘문을 물어뜯으려 한다. 그러니 세월이 지날수록 루나가 거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 수 밖에. 

 그래서 루나와 여행을 가는 것은 1석 3조였다. 루나에겐 온전히 사랑받는 느낌과 방묘문 없는 집을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를 가지는 것이었고, 루이, 라온, 다온, 아리, 새온에게는 방묘문을 열어놓고 거실과 방을 맘대로 다닐 수 있는 자유로운 날이 될 수 있었으며 또한, 루나의 무서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좋겠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에게 루나 없는 세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세 번째는 나와 별이, 모두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집에 있으면 쉰다고 해도 쉴 수가 없다. 평일에는 밤 10시나 돼야 집에 오니 주말에 집안일이 쌓여있는 것이 당연했다. 

 왜 이리 할 일이 많은지. 집안일은 산더미 같았다. 떠나지 않으면 쉬기 힘들다. 별이도 한 달에 한번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처음엔 기존의 고양이들이 갑자기 자유를 뺏기게 되어 루나를 데려온 게 약간 후회도 되었었다. 길에서는 루나는 천사였고 그래서 당연히 합사가 잘될 것이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우린 루나의 가족이다. 혼자 살던 루나에게, 강아지처럼 사람을 좋아하는 루나에게 이제 가족이 생겼다. 루나가 없을 때에도 우리 집은 다섯 마리의 고양이와 동거하는 집이었지만 이제 루나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루나 없는 세상은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다. 


 루나가 아이들하고 잘 지냈으면 좋았겠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이래서 우리도 여행을 가는 거잖아. 루나에게 감사해야하나?

열두 번째 여행은 어디로 갈까? 루나! 서해는 보았으니 이제 동해를 보러 갈까? 이번에는 공기 좋은 수목원? 아니면 별이 총총 많이 뜨는 산으로 갈까?

루나는 대답도 없이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다.

 애고. 진짜 상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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