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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22. 2023

이룰 수 없는 버킷리스트

-까치, 또치 2-2


〔 요즘 또치 보셨어요?〕 

〔 못 본 지 일주일 된 것 같아요〕

캣맘 단톡방(*일 년이 지난 이제 고수 캣맘 E님과 공원 캣맘 J님, 그리고 나만이 남아있다. 오피스텔 신혼 P 님은 강치를 파양한 직후 나갔고 직장인 캣맘 S님과 공원 캣맘 J님이 사소한 문제로 다투어 S님이 단톡방을 나갔다)에서 J님이 내게 말했다. 

 까치, 또치가 태어난 지 1년 3개월이 지난 때였다. 6개월 때 같은 날 잡혀 중성화도 같이한 그들은 한살이 넘었어도 다른 고양이들보다 작아서 아기 느낌이 났다. 또치는 수컷, 까치는 암컷인데도 또치가 오히려 까치보다도 조금 더 작았다. 보통은 수컷이 암컷보다 30% 정도 더 큰데 말이다. 

 공원에서 태어나서 살아와서 그런지 까치, 또치는 우리를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 어릴 때부터 거리두기를 해 와서 밥을 주면 2m 앞까지 와서 똘망똘망 쳐다보곤 했다. 동물 학대자가 나타날까 봐서 나는 공원 고양이들과 항상 거리를 두어왔다. 그래도 언제든지 공원에 가면 볼 수 있는 아이들이었는데 일주일 전부터 또치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놀러 갔을까? 

가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오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특히 암컷보다 수컷일 때 모험심이 발동하는 건지 그런 경우가 가끔 있었다. 구청 주차장 루키는 몇 번 그랬었다. 몇 번의 모험 끝에 지금은 다시 주차장에 정착한 것 같다. 

 또치도 돌아오겠지? 겨울 오후 잠깐 내리쬐는 햇볕에 까치만 남아 덩그러니 앉아있다. 

 “또치야! 까치만 두고 어디 간 거야. 빨리 돌아와.”

나는 까치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 

 턱시도 벨리가 샐리와 테리를 데리고 나타났다. 지난 해 초, 밸리도 한 달 된 아기로 나타났었는데 이제 한살이 넘어 여기 이사 온 아기들을 돌보고 있다. 윤기 나는 까만 털에 몸집도 작아서 언뜻 보면 집에서 잠깐 외출한 아기 고양이로 보이는 밸리가 이렇게 공원 보모의 역할을 자처하다니 기특하기만 했다. 처음에 밸리도 하치가 돌봐주었었는데. 

 2년 전 늦가을에 아기였던 까치와 또치, 그리고 밸리까지 하치는 독박육아를 했다. 하치가 로드킬로 죽은 이후 남겨졌던 까치, 또치, 밸리가 이제 성묘가 되어 이사 온 아기들을 돌보고 있는 거다. 더군다나 하치와 밸리는 수컷인데도 말이다. 

 정말 인간보다 훨∼씬 나은 고양이들이라니! 


 “민쌤, 까치가 죽었어요!”

그날 오후 3시, 내 전화기가 울렸다. 나는 바로 받았는데 직장인 캣맘 S님이었다. 단톡방을 나가고 나서는 연락을 잘하지 않았었다. 

 “네? 뭐라고요?”

나는 듣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해석이 되지 않았다. S님은 울고 있었다. 그럴 리 없다. 2시간 전에 밥을 먹었는데? 일렬로 벤치에 앉아있었잖아?

 “아, 무슨 말씀이신지. 일단 내가 거기로 갈게요. 공원이죠?”

나는 그대로 뛰어나갔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공원이 보였다. 모든 것이 두 시간 전 그대로였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설마 까치가 죽을 리 없어. 

 공원을 둘러보자 오피스텔을 나눈 1차선 건너편에 S님이 있는 게 보였다. S님은 보도블록을 바라보며 울고 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바닥에 까치가 누워있다. 외상은 없어 보였지만 눈은 뜬 채로 입도 벌린 채였다. 다가가 만져보았다. 즉사했는지 이미 굳어있다.

 “로드킬 당한 걸 누가 보도블록에 올려놓았나 봐요. 어떡해요. 까치 불쌍해서.”

S님은 울면서 말했다. 나는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여기는 1차선, 일방통행 도로에다, 학교 앞이라 속도제한이 걸려있어 저속으로밖에 못 달리는데 어떻게 된 거지? 까치가 어떻게 로드킬을? S님은 눈을 뜬 채 죽은 까치가 안 됐는지 눈을 감겨주려 했지만, 그것조차 되지 않았다. 

 나의 감정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성은 현실을 파악하고 있나 보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짧은 시간, 생각이 많아졌다. 로드킬 당한 동물들은 보통 생활폐기물로 분류되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겨 버려진다. 까치는 쓰레기차에 실려 쓰레기더미에 깔려 소각장에서 태워지겠지.

 하지만 까치는 쓰레기가 아니다. 까치를 쓰레기 취급할 수 없다. 까치는 특별한 존재였다. 몇 번이나 까치를 입양하려고 생각했었다. 내가 입양했었다면 까치가 여기 누워있지는 않았을 텐데. 내게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다.


 “까치는 공원에서 태어났으니까 공원에 묻어주어도 될 것 같아요. 내가 묻어줄게요.”

나의 말에 S님은 눈물을 닦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S님은 불법 아니냐며 괜찮겠냐고 말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내가 감당할게요.”

까치는 공원 언덕 한편에 묻혔다. 동아리 회원 두 명을 오라고 해서 함께 묻어주었다. 겨울이라 삽이 잘 들어가지 않았지만, 힘을 다해 구덩이를 팠다. 까치를 들어 구덩이에 눕히고 다시 삽으로 흙을 덮고 낙엽을 덮었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혼이 나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한다 해도, 여기가 아니라 그 어떤 곳에 묻는다 해도 다시는 까치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영화와는 달리 타임머신이 없다는 것을, 나는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치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며칠 전 나의 메모장을 오랜만에 펼쳤다. 거기에는 첫 번째부터 순서대로 적혀진 버킷리스트가 있다. 호주에서 한 달 살기, 오로라 보기, 은하수 보기, 자막 없이 미드 감상하기 등 여러 가지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설령 이루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살아 있는 한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있는 것이었지만 이제 다시는 이룰 수 있는 가능성조차도 없는 항목은 단 하나였다.

 마지막에 적힌 글 이었다. 시간 순서대로 적혀있어 가장 최근에 썼던 것이다. 

 - 까치, 또치 데려오기

나는 그 글씨를 한참 바라보다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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