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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22. 2023

개냥이 테리

-테리 3-1

지난해 9월, 테리는 한 달 된 아기로 공원에 나타났다.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아마도 옆의 중학교 쪽에서 온 것 같다. 거기에는 중학생들이 밥을 주는 급식 터가 있었고, 중성화되지 않은 고양이들이 몇 마리 있어 보였다.

 테리가 처음 왔을 때,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애기라서 귀엽기도 했지만 짙은 회색 고등어태비로 눈과 귀가 컸다. 꼬리가 풍성하고 끝부분이 말려있어 다람쥐꼬리 같았다. 엄마도 없이 혼자 나타나 어떻게 잘 적응할까 싶었다. 그런데 아빠가 나타났다. 역시 한 달 때 공원에 와서 이제 한 살이 된 밸리가 아빠처럼 테리를 돌봤다. 겨우 내내 겨울 집에서 같이 자고, 같이 다녔다. 

 공원에 온 지, 4개월이 지나면서부터 테리는 누구에게든지 머리를 비볐다. 나는 걱정했다.  위험한 행동이었다.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었는데.

나는 공원 바로 옆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들을 의심했다. 공원에는 밤마다 산책 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그들 중 몇 명이 테리에게 간식을 주고 쓰다듬은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간식을 주었겠지만, 어린 테리가 유독 사람을 따르게 된 것이다. 

 착해서였을까? 순해서였을까? 

 공원에 손을 타는 고양이들이 늘고 있었다. 공원 급식이 안정적으로 공급될수록, 중성화가 잘 진행될수록, 그래서 고양이들의 모습이 더 깨끗하고 귀여울수록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고양이와 접촉하려 했다. 달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고양이들이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애기 때부터 만진 아이들은 집냥이 만큼이나 개냥이가 되어갔다. 개냥이들 테리, 카레, 예치, 그중에서도 가장 손을 타는 고양이는 테리였다. 

 점심시간, 공원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테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지나갔다. 사람들을 말릴 수도 없고 말을 듣지도 않았다. 나는 항상 불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숨을 쉬는 것 밖에 없었다.

 두부 사건이나 폐 양어장 사건 등 유명한 고양이 살해사건들, 그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 학대 사건들은 사람과 친근한 동물들을 겨냥한 것들이다. 사람과 친근하지 않다면 일단 잡기가 힘들었으므로 타깃이 되기 어렵다. 

 범죄자들은 연쇄살인범들처럼 쉽게 잡을 수 있는 대상을 골랐다. 무서운 일이었지만, 그 대상은 유아나 여성처럼 애기 고양이거나 개냥이다. 

 예쁘고 귀여운 테리지만 입양할 사람이 없을 건 분명했다. 그동안 몇 번의 실패 끝에 나는 현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첫 번째 입양 실패(공원 근처 캣맘 파양 사건)로 우리 집에 온 다온이(강치), 그리고 구청에 살던 개냥이 루나까지 우리 집의 여섯 번째 고양이가 된 이상 이제 나도 E님처럼 입양을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테리는 어쩌면 루나보다 더 개냥이였다. 루나는 그래도 자기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만 좋아했지만, 테리는 공원에 오는 누구나 좋아했다. 강아지처럼 아무에게나 가서 비비고 뒹굴었다. 집고양이라면 사랑받을 일이지만 길고양이라면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


〔 테리, 이번에 중성화하면서 입양공고 내보는 게 어떨까요? 안될지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미친놈들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서〕

 테리의 나이가 6개월이 되어 중성화를 시켜야 할 날이 왔다. 나는 동아리 임원진 단톡에서 또다시 이렇게 말했다. 테리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것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야 한다고. 

〔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걱정하지 말아요〕

 **과의 과장님인 동아리 회장님이 답했다. 회장님은 집에 두 마리의 고양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회장님은 먼저 개냥이인지 확인해보고 사진도 다시 찍자고 했다. 개냥이가 아니면 파양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 어머! 세상에 강아지보다도 더 하네요!”

 테리는 최상급 개냥이였다. 개냥이 테스트를 가뿐히 통과했다. 회장님을 처음 봤는데도 부르자마자 달려와서 그냥 안겼다. 회장님은 이쁜데, 또 이렇게 개냥이라니 입양은 무조건 될 거라고 빨리 공고하자고 했다. 

 그날 포획 틀도 필요 없이 손으로 잡아 중성화병원에 보냈다. 중성화하는 동안, 내가 안고 있는 모습으로 사진도 예쁘게 넣어서 입양공고를 했다. 우리는 또 한 번의 기적이 테리의 묘생역전으로 이어지기를 마음가득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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