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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22. 2023

테리, 다시 돌아오다

-테리 3-2

 “전화가 한 통도 안 와요. 어떡하나.”

회장님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동안의 경험이 있어 나는 연락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회장님은 전혀 생각 못 한 것 같았다. 공지만 올리면 예쁜 테리를 입양하려는 직원들이 줄을 설 거로 생각했다. 처음에 내게 너무 연락이 많이 올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던 터였다. 

 회장님은 자신만만했던지 임시 보호까지 부탁했다. 테리가 중성화한 후 입양이 될 때까지 임시 보호를 할 사람이 있는데 어쩌면 그 직원이 입양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과의 남직원이었는데 동아리를 후원하고 있는 분이었다. 사무실 근처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아 외로워서, 고양이를 친구 삼으면 좋을 것 같다고 과장님은 말했다. 사람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테리인데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니, 나는 좀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아무도 안 나타난다면 공원보다는 백배 낫겠지. 고양이 물품을 빌려주기 위해 그 직원과 만났다. 

 “제가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요. 투석환자거든요”

놀랍게도 남직원은 환자였다. 40대였는데 30대 초반부터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투석을 받는다고 했다. 몇 년 전에 여동생 신장을 이식받았지만, 몸이 받아들이지 못해 실패했다고 한다. 지금은 일주일에 3번 월, 수, 금 투석을 받는다. 투석은 신장이 하는 일을 대신 기계로 피를 걸러주는 것이다. 한번 할 때마다 4시간이 걸린다. 근무시간 후에 투석을 받아야 하니까 월수금은 집에 가면 거의 12시가 된다고 한다. 이런. 

 거기에다 힘들어도 운동을 해야 해서 화, 목도 스포츠센터에 수영하러 다닌다고 했다. 대단한 사람임에는 분명했지만, 테리를 입양할 수는 없는 분이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잠자는 시간 외에는 없지 않나? 테리는 개냥이라서 입양할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인데 사람을 볼 수조차 없다면 도대체 왜 입양하려는 거지?

 “제가 입양하겠다고 한 적은 없는데, 과장님이 제 말을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과장님이 고양이 좋아하냐고 물어본 말을 그냥 그렇다고 했는데 말이 와전된 것 같다고 난감해했다. 어쨌든 과장님은 입양이 금방 될 거라고 잠시만 임시 보호해달라고 해서 테리는 중성화한 후 그 직원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열흘을 기다려도 입양 전화는 단 한 통도 없다. 나는 혹시나 그 남직원이 테리에게 정이 들어 키우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어림없는 얘기였다. 들리는 이야기로 그분은 자신도 돌보기 힘든 와중에 고양이를 떠맡아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힘들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는데 왜 정이 안 들까? 나라면 다시 못 보낼 텐데.’

처음엔 투석환자라 맡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입양 자가 아무도 없자 내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나 내가 환자였다면 또 다른 이야기일까?

 이제 방법은 하나였다. 다시 공원으로 되돌아오는 것. 

테리는 공원에서 잘살았으니까 다시 돌아와도 괜찮을 것이다. 살던 곳이니까 적응도 필요 없겠지. 그래도 공원에 돌려보내기 싫었다. 길고양이는 내일을 알 수 없으니까. 더구나 개냥이라면 훨씬 더 위험하다. 

 2주 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분은 과장님께 더는 어렵다고 얘기한 모양이었다. 그 주 토요일, 캐리어를 가지고 직원의 집에 갔다. 

 테리는 침대에서 강아지처럼 자고 있다. 이렇게 평화롭다니. 

공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공원은 누구든 올 수 있는 곳이니까. 잠깐 방심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이 이번엔 괜찮을지, 아니면 어떤 커다란 위험을 초래할지 아무도 모르지. 

 집은 안전한 곳이다. 그렇지만….  

 나는 테리를 우리 집에 데려갈 수 없음에 절망했다. 합사가 안 되는 사나운 루나만 아니라면. 

 ‘테리야. 정말 미안하다.’

 자다 깬 테리가 내게 몸을 비벼왔다. 나는 테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빠르게 캐리어에 넣어버렸다. 

 공원 중간 급식 터에 이미 밸리와 카레가 있다. 테리를 풀자 밸리 쪽으로 뛰어갔다. 밸리는 기다린 듯 테리를 잠깐 핥은 뒤, 함께 철쭉나무 꽃들 사이로 사라졌다. 

 같이 갔던 회장님은 저렇게 밸리와 테리가 사이가 좋은데, 테리 입양했으면 밸리가 엄청 서운했을거라며 차라리 잘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밸리와 테리가 함께 사라진 덤불을 오래도록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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