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3-3
〔 공원 시설공단입니다. 주차장에 고양이 사체가 있는데 저희가 처리해도 될까요?〕
월요일, 밀린 일이 바빴다. 한창 일하는 중이라 문자 확인이 늦었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공원 주차장이라면, 내가 모르는 고양이가 없을 텐데. 혹시 다른 지역의 고양이가 지나가다가 죽었을 수도 있지만 거의, 아마도, 내가 아는 고양이일 것이다.
〔 죄송하지만 사진을 보내줄 수 있나요?〕
내 문자에 공단에서 직접 전화가 왔다. 사진은 안 찍었다며 사체 찍기는 좀 불편하다고 했다. 나는 직접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동아리 직원 중 하나를 불러서 같이 가고 싶었지만 이런 좋지 않은 일로, 더군다나 근무시간에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은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테리 어디로 간 걸까? 엄마.”
“그러니까.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지난주 일요일, 같이 급식하러 왔던 별이와 함께 나는 포스터를 보고 있었다.
≪고양이를 찾습니다. 나이 6개월 정도, 완전 사람 따름, 원래 공원에 살았던 고등어 태비, 혹시라도 이 고양이를 입양하시거나 보호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연락 바랍니다. 010-****-****≫
공원 중앙 벤치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에 붙은 포스터였다. 글자 밑에는 테리의 흑백사진이 있다. 잉크가 번졌는지 테리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테리는 완전 개냥이여서 별이도 예뻐할 수밖에 없었다. 포스터에는 공원 캣맘 J님의 핸드폰번호가 적혀있다.
“테리가 며칠째 보이지 않아요. 누군가 입양하려고 데려간 것 같아요”
며칠 전, 공원 캣맘 J 님의 전화가 왔었다. 나도 매일 공원에 가기 때문에 테리가 안 보이는 것은 알았다. 그래도 나는 좀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어쨌든 기다리지 않는다 해도 다른 할 일은 없었으니까.
J님은 누군가 테리를 입양했다고 확신한 것 같다. 그러니까 저런 포스터까지 붙였겠지. 입양했다면 좋은 일 아닌가? 그런데 왜 J님은 난리가 난거지? 오피스텔 사람 중에 개냥이 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J님은 아마도 입양을 추진하고 있었나 보았다. 하지만 좀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고 내게 말했었다. 정확히 대화해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을 잘 모르는 사람 중 하나인 것 같았다. 그래서 테리를 누군가 입양을 했더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급하게 포스터를 붙인 것 같다.
나는 누군가 입양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천 명이 넘는 구청 직원 게시판에 공지했다가 다시 돌아온 테리 아닌가. 주변에 입양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다른 곳으로 떠났거나, 로드킬이거나, 최악의 경우 범죄의 희생양이 된 일도 있을 수 있다. 테리는 누구라도 따라갈 수 있는 개냥이였으므로 사라진 것은, 그래서 더욱더 문제였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는 아이면 어쩌지? 설마 테리일까? 그렇더라도 사실을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나을 거야. 무슨 일이든, 무엇이든 알아야 하지.
나는 나 자신을 다독였다. 이윽고 주차장이 보였다. 지하 주차장 2층이라고 했던가. 공단 직원이 말해준 B2 C11 구역에는 아무것도 없다. 전화를 걸었다. 공단 직원은 다시 그쪽이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그 근처 어디라고.
여기란 말이지. C9 구역부터 주차되어있는 자동차 밑까지 살피면서 걸어갔다. 내 걸음은 평소와 다르게 느렸다. 천천히, 천천히. 공단 직원이 잘못 본 것이면 좋겠다. 옷가지 같은 쓰레기더미를 잘못 볼 수도 있잖아. 커다란 쥐일 수도 있고.
차라리 아무것도 없었으면.
내 바람이 무색하게도 C11 구역 주차된 자동차 뒤에서 무언가 보였다. 털 뭉치 같은 것이. 나는 얼음처럼 굳어졌다. 저건가? 확인해야 한다. 천천히 시야에 검정과 갈색 무늬가 들어왔다. 이런.
태비 무늬, 다람쥐 꼬리처럼 말린 풍성한 꼬리, 테리는 입을 작게 벌리고 누워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결국 테리였구나. 어쩌다 지하 1층도 아니고 지하 2층까지 내려온 걸까?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누군가를 따라왔을까?
외상은 없어 보였다. 주차하는 차에 부딪혀 급사한 듯 차 끝에 조용히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어떡해야 하지?
두 달 전, 까치처럼 나는 공원에 묻어주고 싶었다. 테리도 공원이 고향이잖아. 생후 한 달 된 모습으로 엄마도 없이 공원에 나타났었지.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민*쌤 마음은 알지만 그러면 공원이 완전 무덤이 돼요. 법을 지켜야 하는 우리가 계속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불법인데.”
나의 전화에 답한 동아리 회장인 과장님 말씀은 명백히 옳았다.
그래. 계속 묻을 수는 없어. 사물함에서 종량제봉투를 가지고 왔다. 테리를 다리부터 종량제봉투에 넣었다. 죽은 테리는 뻣뻣하게 굳은 말린 카펫 같았다. 20리터짜리 봉투가 약간 작았다. 굳어져서 잘 넣어지지 않았지만 억지로 구겨 넣었다.
내가 해야만 한다. 누구도 도와줄 사람은 없으니까. 테리는 눈을 뜨고 있다. 겨우 봉투를 묶었으나 얼굴이 약간 보였다. 나는 그 종량제봉투를 다시 힘겹게 쇼핑백에 넣고 나서 터덜터덜 사무실을 향해 걸었다.
왜 이렇게 무겁지? 자꾸만 쇼핑백 맨 어깨가 처졌다. 테리는 작은 고양이인데. 공원에 있는 다른 고양이들보다도 더 작았어. 6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중성화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입양공고 내려고 귀도 자르지 않았어. 사람을 그렇게도 좋아했지.
루나만큼이나 아니, 루나보다 더.
사무실 건물 오른쪽 옆에는 청소 화물차들 주차공간이 있다. 주차 공간 옆으로는 재활용품 창고가 있고 그 앞에는 쓰레기를 적재한 8톤짜리 화물트럭이 하나 있다. 천천히 나는 화물차 뒤편으로 다가갔다. 화물차 쓰레기 칸에는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다. 다리 한쪽이 없는 의자, 말라비틀어진 꽃바구니들, 각종 잡동사니.
나는 다시 쇼핑 백안의 테리의 눈을 보았다. 정지된 갈색 눈은 마치 세상을 원망하는 듯, 아니면 세상을 잊으려는 듯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테리야, 미안해. 인간 없는 고양이별로 가렴.”
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쇼핑백을 봉투째 힘껏, 쓰레기차를 향해 던졌다. 개냥이 테리는 쓰레기더미 위로 올라가서 그 너머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