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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22. 2023

루나! 여기 매일 오고 있는 거지?

-루나5-2

 “루나! 잘 잤어? 우리 애기!”

 루나가 오기 전까지는 점심시간에 주차장과 공원에 밥을 주러 갔었다. 하지만 루나가 나타난 후부터 나는 기다릴 수가 없어 출근하자마자 밥을 주러 갔다. 루나는 겨울 집에서 자다가 나와서 양양거리고 내 발밑에 구르고 하느라 밥은 뒷전이었다. 그런 루나 옆에서 루키는 아랑곳없이 밥을 먹었다. 가끔 루키는 옆에서 애교부리는 루나를 덤불 너머에서 유심히 지켜보았다. 설마 배우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루나는 나에게 개냥이라는 개념을 송두리째 바뀌게 했다. 우리 집 개냥이이던 루이가 더 이상 개냥이가 아니게 됐다. 루이는 나를 보면 다가오긴 했지만 뛰어오지는 않는다. 손을 핥아주긴 하지만 골골송을 같이 부르지는 않는다. 밥이 먼저지 사람과 노느라고 밥을 안 먹지는 않는다. 

 루나는 너무 개냥이라 만날 때마다 헤어지기가 힘들었다. 나는 점심시간과 퇴근 후에 공원과 사유지 급식 터에도 가봐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루나와 만나는 시간은 10분을 넘기 어려웠다. 나는 가야만 했다. 루나가 그냥은 안 떨어지려고 해서 밥 먹고 있어서 안 볼 때 재빨리 도망가거나 그런 시점을 놓치면 나는 발을 “쾅”하고 굴러서 겁을 주었다.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로. 그러면 루나는 더는 따라오지 않고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다. 그 눈을 바라볼 수 없어 돌아서는 내 눈이 뜨거워졌다. 


 “애기 안 볼 때 몰래 가라. 너 가는 거 알면 엄청나게 운다.”

20년 전, 시어머니는 아침마다 텔레토비(*영국에서 인기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방영했던 아기들 대상 프로그램)를 틀어놓고 별이가 나를 보지 못하도록 조심했다. 잘못해서 내가 출근하는 것을 들키는 날은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었지. 잊고 있었는데 그때의 북받친 슬픈 감정이 떠올랐다. 갑자기 툭 떨어지던 눈물방울들….

 루나는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닌데 왜 나는 엄마의 감정을 느끼는 걸까?


 〔세상에! 역대급 개냥이네요.〕

다른 캣맘들도 얘기를 듣고 다들 루나를 보고 싶어 했다. 점심시간, 캣맘 J님과 S님이 8차선을 건너 처음으로 구청에 왔다. 루나는 신기하게도 사람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캣맘들을 처음 보았음에도 자기에게 호감 있는 사람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양양, 골골, 구르기, 핥기까지 동시 4종 세트를 선보였다. 모두 첫눈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에게 친근감을 표현하는 고양이가 동물 학대자에게 노출된다면 그건 최악이었다. 모두 단톡방에서 루나 걱정을 했다. 하지만 걱정뿐이었다.

 사실 루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고양이였다. 엄청난 개냥이에다가 동글동글한 귀여운 외모, 게다가 사나운 루키와도 잘 지내는 걸 봐서 성격도 순한 고양이다. 품종 냥 들도 이 정도의 개냥이는 별로 없겠지? 그런데도 입양되기는 어렵다. 흔하디흔한 코숏에다가 성묘 아닌가. 나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집에는 이미 5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그래도 이곳은 경찰서가 바로 옆에 있어 동물 학대자들이 찾아오기 쉽지 않은 곳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루키 이외에는 다른 고양이도 없어서 싸울 일도 없다. 겨울 집과 핫팩도 있으니 그렇게까지 춥지는 않겠지. 여기에서 떠나지 않고 루키와 잘 산다면 그나마 괜찮을 것이다. 다행히 루나는 나의 바람처럼 루키와도 잘 지냈고 겨울 집에서 잠도 잘 잤다. 


  겨울이 한창이었다. 루나가 온 지 한 달이 넘었다. 1월 중순쯤, 눈이 펑펑 내린 후부터 루나와 루키가 보이지 않았다. 공사 소음 때문일까? 그때쯤 구청은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느라 곳곳에 임시 벽을 세우고 공사 차량도 왔다 갔다 해서 소음이 엄청났다. 

 인간의 청력이 30이라면 개는 60, 고양이는 90이라고 한다. 우리도 소음 때문에 일하기가 힘들었는데 고양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영하의 날씨에 갈 데가 없을 텐데. 나는 구청 뒤편 아파트 단지에도 가보았지만 루키와 루나의 발자취를 찾을 길이 없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루키가 나타났다.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루나는 보이지 않았다. 

 〔루나는 개냥이라서, 처음 보아도 안기니까 누군가 키우려고 데려간 게 아닐까요?〕

 캣맘 S님이 말했다.

 〔아마도 이사 오기 전 살던 곳으로 돌아갔을 것 같아요. 전에 캣맘을 다시 찾아갔나 봐요.〕

 캣맘 J님도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아뇨. 그렇지 않을 거예요. 틀림없이 루나는 나타날 거예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고가 났거나 길을 잃어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걸까? 아니다. 그럴 리 없다. 한 달 동안이나 루키랑 잘 살았는데 갑자기 혼자 길을 건넜을 리 없다. 누가 데려간 것 같다는 캣맘 S님의 말도 사실이 아닐 것이다. 개냥이 중의 개냥이인 루나지만 누군가 데려가진 않았을 거다. 세상은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아니니까. 가전제품 대리점 앞에서 5년이나 망부석으로 살았던 팬서를 이미 보지 않았던가?

 살던 곳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J님의 말도 아닐 것 같다. 그곳에서 여기로 이사 왔다면 이유가 있었을 거다. 다시 돌아갈 이유는 없지 않나? 그곳보다 여기가 좋을 확률이 훨씬 높다. 

 나는 루나를 기다렸다. 루나는 나타날 것이다. 아니 나타나야만 한다. 좋은 곳을 찾았다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거의 없을 테니까. 생각보다 현실은 더 차갑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열흘이 지나도록 루나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사료 그릇을 보고 희망의 단서를 얻기까지 했다. 루키 혼자 먹기에는 많은 사료가 없어졌다. 게다가 루키도 밥만 먹으러 올 뿐 겨울 집에서 자지는 않았다. 이것은 두 번째 단서였다. 루키와 루나는 같이 다녔었다. 그랬다면 지금도 같이 지낼 것이다. 

 사실 아침, 점심시간을 통틀어도 내가 주차장 급식 터에 나가는 시간은 30분을 넘지 않는다. 시계도 없는 루나가 하루 중, 내가 오는 30분을 맞춰서 나타나기는 어려울 터였다. 구청 뒤쪽에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있다. 그곳 지하실 같은 곳, 어디에선가 루키와 루나는 같이 잠을 잘 것 같다. 단지 나의 눈에 띄지 않았을 뿐, 루나도 계속 밥을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닐까? 

 일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창문을 보니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급식 터에도 눈이 하얗게 쌓였다. 어디선가 루나도 이 눈을 보고 있겠지. 함박눈이 흩날려 점점이 회색이 된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루나 꼭 나타나야 해. 분명 여기, 매일 오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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