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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터와 간수

9마리의 햄스터를 키우다

by 민하

햄스터와 간수


우리는 마트에 갔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고 호객행위에 시끄러웠다. 마트 한복판에 조그마한 종이상자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남자 직원이 큰소리로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날이라 선물더미를 쌓아놓은 것 같았다.

무엇인가 가보았더니 햄스터였다. 생명을 종이상자에 넣어서 파는 것이다. 초등학생이었던 별이가 햄스터를 사달라고 졸랐고 두 마리를 5천 원에 샀다. 그것도 암수 두 마리. 마트 직원은 생물학자가 아님에도 암수를 기가 막히게 알았다. 작은 털 뭉치를 들어 올려 엉덩이를 보고는 암수를 바로 판별해 냈다.

햄스터를 샀으니 집이 필요했다. 플라스틱으로 된 것도 있었고 철제로 된 것도 있었고 모양도 여러 가지였다. 플라스틱으로 된 햄스터 집은 창문이 없어서 밖을 보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철제로 된 집은 밖이 다 보이니까 답답하지 않고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이천오백 원짜리 햄스터를 위해 이만 오천 원짜리 햄스터 집과 햄스터를 위한 톱밥 오천 원, 그리고 햄스터가 운동할 수 있도록 쳇바퀴도 칠천 원을 주고 샀다.

우리는 햄스터를 집에 데려가서 정성껏 키웠다. 하루 세 번 호두, 해바라기 씨 등이 섞여있는 견과류 밥과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거꾸로 매달려져 있는 물통에도 매일 물을 갈아 주었다. 톱밥도 푹신하게 삼사일에 한 번씩 갈아주었다.

하지만 햄스터는 우리가 사준 집이 정말 싫은지 매일 철창에 매달려 이리저리 탈출을 시도했다.

몇 시간씩 철창에 매달려있기도 했고 작은 이빨로 열심히 철제 기둥을 갉아댔다. 100년을 갉아도 끊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햄스터는 포기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면 잠을 자다가 깨어나면 다시 또 철창에 매달렸다. 가끔은 쳇바퀴를 돌리며 운동도 했다.


이 개월이 지난 어느 주말 아침이었다. 햄스터에게 밥을 주려고 햄스터 집을 들여다보았다. 햄스터의 모습이 이상했다. 이상하게 뒤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배에 무엇인가를 매달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자세히 바라보니 새끼였다. 7마리의 새끼를 소리 없이 밤새 낳았다.

나와 아이들은 인터넷을 뒤져 어떡해야 할지를 알아냈다. 수컷은 따로 분리시키고 엄마와 애기들은 신문지로 집을 덮어 어둡게 해 주었다. 안정을 취하고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새끼들은 새끼손가락보다 더 작았으며 털이 하나도 없어서 분홍색 피부가 보였다. 어떤 아이들은 분홍색 등에 두 줄의 회색 줄이 있었다. 나중에 보니 그 줄은 회색 털로, 나머지는 하얀 털로 자랐다.

새끼들이 커가는 모습은 너무도 귀여웠다.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큰 털 뭉치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은 정말 상상할 수도 없이 예뻤다. 새끼들은 함께 놀기도 하고 지치면 함께 포개져서 잤다. 햄스터의 하품을 보는 날은 너무 기분이 좋았다. 조그마한 몸집에 작은 입으로 하품을 하면 별이와 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새끼들은 커갔고 그럴수록 서로 다정하던 모습에서 점점 싸워가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인터넷을 보니 햄스터는 원래 혼자 사는 독립적인 동물이라 같이 키우면 서로 싸우다가 결국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햄스터 집을 한 마리에 하나씩 사게 되었다. 햄스터 집이 총 9개가 되었다.

처음에는 예뻐하던 아이들도 몇 개월이 지나자 관심이 없게 되었다. 결국 나만 남게 되었다. 어차피 우리 집의 음식과 청소를 맡은 나는 햄스터 집의 청소와 음식 공급도 맡을 수밖에 없었다.


햄스터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집에 정을 못 붙이고 항상 철창에 매달려 많은 시간을 보냈다.

9개의 철창에 9마리의 햄스터들이 매달렸다. 햄스터들에게는 간수가 있었다. 어차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던 나는 그들에게 이 집이 감옥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줄 수 없었고 내가 간수가 아니라는 것 또한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무기수였다.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무기수가 되었다. 단지 잘못이 있었다면 너무 귀엽게 생겼다는 것, 그리고 번식력이 좋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햄스터의 평균수명은 3년에서 4년이라고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6년을 살았다. 감옥에서 오래 사는 것은 오히려 지옥일까. 나는 항상 놓아주고 싶었으나 집에서만 살았던 아이들이 나가면 길 고양이 밥이 될까 봐 놓아줄 수 없었다.

나는 결국 햄스터 2세대에 걸쳐 7년 동안 간수로써 살았다.


어린 시절 집이 산동네였기 때문에 항상 자연과 함께 했다. 아카시아 향기를 맡고 개울에서 올챙이와 놀았다. 민들레와 쑥, 냉이를 찾아다니며 뛰어다녔다. 집은 비록 달동네의 허물어져가는 판잣집이었지만 그곳만이 나의 집은 아니었다.

햄스터도 인간의 집이 아닌 자연에서 살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가고 싶은 곳도 가고 자기의 집도 만들고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무기수가 되지 않았을 텐데.


어린 나는 밖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다. 나가보니 제비들이 우리 집 처마에 집을 짓고 있었다. 까만색 제비들은 발랄한 참새와는 다르게 신사처럼 보였다. 검은색 연미복을 입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멋있다. 제비들이 새끼들을 낳고 키우는 모습을 날마다 지켜보았다. 지푸라기와 진흙으로 지붕과 기둥 사이에 지은 허접한 제비집이었지만 엄마 제비와 아빠 제비는 연신 먹을 것을 물어와 새끼들에게 먹여주었다. 진흙집은 새끼들에게는 훌륭한 집이 되어 주었다.


자연이 그립다. 나는 커튼을 열고 아파트 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본다.

하지만 지평선 끝까지 크고 작은 네모난 회색 건물들만이 프랙털처럼 펼쳐져있을 뿐이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햄스터 아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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