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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13. 2021

보닛 전문, 아기고양이

아리2-2


 낮 12시 40분, 34도의 온도에, 체감온도는 40도가 넘었다. 8차선의 도로 위로 온천 같은 열기가 올라왔다. 나는 점심 먹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이다. 횡단보도 옆 어디선가 규칙적인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알 수 없어 가로수 밑 화단과 일렬로 갓길에 주차된 차 밑을 뒤졌다. 형체는 찾을 수 없었지만 20분이 지나도록 고양이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는 알람 소리처럼 들려왔다. 

 근처 주차된 차에 귀를 대본 결과 하얀 승합차 보닛 속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차 앞 유리창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81수**** 차주분이시죠? 혹시 차에 고양이를 두셨나요? 소리가 자꾸 나서요”

  “아닌데요.”

퉁명스러운 남자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나왔다. 

 “아 그러면 멀리 계신 게 아니면 좀 나와 보실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고양이가 자동차 어딘가에 들어간 거 같아요.”

갑자기 전화가 뚝 끊겼다. 이 매너는 뭐지? 그때 앞의 상가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전화기를 든 채로 나온다.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차주인 아저씨와 나는 차로 다가갔다.

 아저씨가 보닛을 여는 순간, 작은 갈색 고양이 머리가 보였다. 

  “아, 맞네요. 여기 있었네.”

내가 잡으려고 하니 쏙 들어갔다. 

 “저게 죽을라고 여기 들어갔나?”

아저씨는 동물에 호의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큰일이다. 어떻게 보닛에서 빼낼 수 있지?

겨울에 추워서 아기 고양이들이 보닛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늘은 찌는 듯 한 더위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가기도 한다지만 차는 정오의 햇볕에 화로처럼 달구어져 있었다.

 아저씨는 막대기를 가져와서 보닛을 쿵쿵 두드리기도 하고 보닛의 뚜껑을 쾅 닫았다 열었다 했다. 나도 사료 통을 들고 와서 흔들기도 하고 야옹 소리도 내보았지만 고양이는 나오지 않았다.  

 아저씨가 어디선가 공기를 뿜는 기계를 가지고 와서 보닛에 대고 뿜었다. 나는 애기 고양이가 놀랄까 봐 말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계가 큰소리를 내자 애기 고양이가 놀라 자동차 밑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도로 옆 화단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나도 잡으려 뛰어갔지만 고양이가 더 빨랐다. 손바닥만 한 고양이는 봉고차 뒤에 주차되어있던 택시 밑바닥을 통해 택시 보닛으로 또다시 들어갔다. 

  ‘승합차 보닛에 이어 택시 보닛이라니.’

보닛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이 쥐들이 굴속을 드나드는 것처럼 능수능란하다. 하지만 보닛에 있다가 갑자기 시동이라도 걸리면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이제는 택시운전사를 불러야 하나. 아저씨는 택시 주위를 왔다 갔다 하고 나는 택시에 전화번호가 붙어있나 보았으나 아무것도 없다.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택시에 잠시 기대었다. 애기 고양이는 택시 보닛 속에서 또다시 큰소리로 울었다. 


 “구청이죠? 고양이 사체가 길에 있어요. 너무 끔찍해요. 빨리 치워주세요”

몇 달 전 내가 구청에서 숙직하는 날, 밤 10시쯤 전화가 왔다. 남자 직원과 함께 트럭을 탔다. 가로등이 어두워 사체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호텔 끝에서 끝까지 걷다 보니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희미한 형체가 나타났다. 끔찍하다는 전화 때문에 걱정되어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의외로 사체는 마치 자는 것처럼 인도에 얌전하게 누워있다. 

 차에 치인 것을 누군가(신고자) 보도블록에 올려놓았나 보다. 회색 태비(*줄무늬)다. 가슴께에 보라색 국화꽃이 하나 놓여있다. 신고한 사람이 놓은 것인지, 아니면 지나가던 사람이 놓아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동물 사체 처리 요령’에 따라 사체를 비닐봉지에 담아 구청 뒤 쓰레기장에 버린다. 만약 동물 사체가 주인이 있을 것 같은 개이거나 고양이라면 주인을 찾아 연락해야 한다. 하지만 길고양이처럼 야생동물일 경우에는 「생활폐기물」로 분류되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어져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지게 된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고양이가 있다. 집에 사는 고양이와 길에 사는 고양이. 

똑같이 생기고 똑같은 유전자를 지녔지만 둘의 삶은 천지 차이다.  길에 태어난 고양이는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이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연명하는 경우도 많아 병에 걸리기도 하고 길을 건너다가 교통사고로 죽는 경우도 많다.

  눈을 떠 보니 캣타워와 영양 많은 사료, 간식에 둘러싸여 있다면 이제부터 하루 종일 잠만 자도 좋다.  

 집고양이라면 인간이 모든 시중을 들 테니까.

 고양이 사체를 처리하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구청으로 거의 하루 몇 번씩 전화가 온다. 길에서 고양이가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 생존 자체가 힘겨운 일이다. 


 “나왔어. 거기 나왔어요!”

갑자기 아저씨가 나에게 소리쳤다. 도로 옆 화단으로 다시 아기 고양이가 뛰어들었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몸이 움직였다. 나는 재빠르게 팔을 뻗어 고양이를 움켜쥐었다. 이번엔 내가 빨랐다. 고양이의 자그마한 몸통이 잡혔다. 오른손으로 들어 올리며 왼손으로도 놓치지 않도록 뒷다리를 그러쥐었다. 그때였다.

 “아,” 

 아기 고양이가 나의 왼손 집게손가락을 물었다. 나는 고통으로 찡그렸다. 그래도 내가 놓지 않자 이번에는 다시 오른손 팔목 위를 물었다. 하지만 절대로 놓지 않았다. 내가 놓친다면 아기 고양이는 어디론가 도망쳐서 쓰레기를 먹으며 살 것이다. 더 운이 나쁘다면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

 이 소동에 지나가던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내 주위에 둘러섰다. 나는 맨손으로 아기 고양이를 들고 있다. 또 물지도 몰랐다. 나는 말했다. 

 “저기 혹시 수건 같은 거 있어요? 얘를 싸서 데려가야 할 것 같아서.”

 주위에 있던 센스 있는 한 남자가 앞의 음식점으로 들어가서 수건을 빌려왔다. 그걸로 얼굴을 감싸 물지 않도록 애기 고양이를 다시 안았다. 내 몸과 아기 고양이까지도 마치 샤워한 것처럼 땀으로 젖었다. 아기 고양이를 잡고 있는 왼 손가락과 오른손 팔에서 피가 점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아기 고양이를 놓칠세라 오른손에 힘을 주고 동물병원을 향해 걸었다.


 내 손을 보더니 수의사는 목장갑을 끼고 진찰했다. 다행히 범백(*고양이 파보 바이러스(Feline parvo virus, FPV)에 의해 발병하는 바이러스성 장염. 전염성이 매우 강하고 치사율이 높아 모든 고양이 종에게 치명적임)도 음성이고 건강하다고 한다. 2개월쯤 된 700그램 정도 되는 암컷 고양이였다. 이미 우리 집에는 3마리의 고양이가 있지만 이 아기 고양이를 집에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다.

 안방에는 라온(갈색 태비)이가 살고 있고 별이 방에는 새온(삼색이)이와 루이(턱시도)가 거의 지내고 있어서 슬이 방에 애기 고양이를 데려다 놓았다. 일단 범백이 음성이 나왔지만 혹시 나중에 발현될 수도 있어서 2주는 격리해야 한다고 했다. 

 슬이 방에 들어간 아기 고양이는 침대 밑으로 숨었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 애기 고양이가 있던 그곳은 8차선 도로 앞 상가로 고양이 급식 터가 있을 곳이 없다. 하지만  건강하게 자란 것으로 봐서는 엄마 고양이와 같이 생활했던 것 같다. 급식터도 없는 곳에서 엄마도 없었다면 이렇게 건강할 리 없겠지. 

 병원에서도 계속 울어댔지만, 슬이 방에 온 이후로도 아기 고양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층간소음 신고라도 들어올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밥을 주면 먹기는 잘 먹었다. 먹고 나면 또 울고 자다가 깨면 또 울고 했다. 방에 사람이 없으면 침대에서 나와서 울고, 사람이 방에 들어가면 침대 밑 맨 끝으로 들어가 또 울어댔다.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계속 우는 거지?”

내가 혼자 말처럼 말하자 별이가 말했다.

 “창문 쪽을 바라보면서 우는 게 엄마를 찾는 것 같아,”

 ‘아, 이제야 이해가 된다. 엄마를 찾고 있었구나.’

어쩌면 그날 엄마를 잃어버려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자동차 보닛에도 들어갔다 나왔다 했는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보았어도 근처에 엄마 같은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었다.

보닛 전문 아기 고양이는 엄마 찾아 멀리, 어디선가 온 것 같다. 엄마와 형제들은 어디 있을까?


 “야옹, 야옹, 야옹, 야옹, 야옹, 야옹… ”

눈을 떠보니 새벽 3시다.

끊이지 않는 짧은 고음의 야옹 소리는 한 밤의 아파트를 흔든다. 보지 않았다면 누구도 아기 고양이가 내는 소리라고는 믿지 않을 터였다. 

“아니 얘는 어떻게 하루 종일 울어도 목도 안 쉬네.”

 큰 딸 별이가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세 마리의 고양이들도 거실에 다 나와 있다. 둘째 슬이도 침대에 앉아있다. 아기 고양이는 슬이 방 창가 턱에 올라가 있다.

삼일 째, 아기 고양이는 쉬지 않고 소리 지르며 우는 중이다. 엄마를 부르는 것일까?

그렇지만 이렇게 계속 밤낮없이 운다면 우리부터 아파트에서 쫓겨날 것 같다. 





창가에서 울다 지쳐 잠든 아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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