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하 Oct 13. 2021

천방지축 홍길묘

아리2-1

     

  언제부터 동물을 좋아했을까? 친구네 집에 강아지가 있으면 몹시 부러웠다. 독립하게 되면 강아지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물여덟 살에 결혼하자마자 직장 다니면서 아기를 낳고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양이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친하게 지내던 오빠의 창고에 길고양이가 아기를 낳았다. 노란 종이상자에 작은 아기 고양이가 여섯 마리 들어있었다. 다섯 마리는 검은색 고양이였는데 한 마리만이 갈색 줄무늬를 가졌다. 나는 줄무늬 고양이를 한 손에 들어 올렸다. 초롱초롱한 연녹색 눈이 나를 보았다. 한 달 밖에 되지 않아 500그램도 채 되지 않았다. 

 오빠는 보일러실로 쓰이는 창고는 위험하니까 데려다가 키우라고 했다. 나는 엄마 고양이와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해서 망설였다. 하지만 오빠는 어차피 엄마와는 3개월이면 독립하여 헤어지게 되고 길에서 살게 된다면 쓰레기를 먹고, 교통사고와 범죄에 노출되는 위험한 삶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2주 후 나는 한 마리를 더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한 마리를 키워보니 고양이는 배변과 목욕을 혼자서 알아서 하고 산책도 하지 않아 직장인이 키우기에도 어렵지 않았다. 우린 두 마리를 키우기로 했다. 

 지금이라면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들 여섯 마리를 다 데려왔을 것 같다. 길에서 고양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이제는 아니까. 하지만 그때 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엄마 고양이와 다른 형제 고양이들을 뒤로하고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턱시도 루이, 갈색 태비 라온이는 쌍둥이다. 하지만 외모로나 성격으로나 판이하게 달라서 전혀 쌍둥이 같지 않다. 본인들도 데려오는 시기에 2주의 차이가 나서 그런지 쌍둥이인지 모르는 것 같다. 둘은 커가면서 많이 싸운다. 

 턱시도 루이는 완전 개냥이에 몸집이 크다. 언젠가 시어머님이 보시고는 삵(*야생 포유류로 고양이처럼 생겼으나 고양이보다 몸집이 크다)이냐고 물어보았을 정도다. 태비 라온이는 새침한 성격에 극도로 예민하다. 나를 엄마로 아는지 안방에서 살고 내 침대에서 같이 잔다. 둘 다 수컷이지만 나는 라온을 공주라고 부른다. 앉아있을 때 보면 얌전하고 도도해서 꼭 영국 황실의 ‘공주’ 같다.

 루이는 말하는 고양이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다가가서 야옹한다. 더구나 윤이 나는 까만색 엉덩이를 만지면 항상 대답하는 대답 냥이다. 인간이 말을 시키면 대답한다는 대답 냥이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데 우리는 이미 쌓았나 보다. 

 하얀 바탕에 동그란 갈색과 검은 무늬가 있는 삼색이 새온은 루이, 라온보다 6개월 뒤에 우리 집에 오게 됐다. 출근하던 같은 과 직원이 횡단보도에서 구조했다. 사람이 가득했던 출근 시간에 지하철 역 앞 사거리 횡단보도로  뛰어든 새온이는 10일쯤 굶은 상태였다. 동물병원에서 1주일간 입원하고 나서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암컷인 새온은 우리 집에 올 때 태어난 지 3개월 정도였다. 길에서 살면서 무척이나 힘들게 산 것 같았다. 횡단보도에서 발견했을 때 영양실조였다. 또 꼬리도 기억자로 휘어져있고 다른 고양이의 반 정도로 짧다. 어릴 때 꼬리가 잘린 것도 같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함께 사는 고양이까지도 극도로 경계했다. 새온이는 별, 슬 언니들한테만 무장해제다. 밥 주는 나도 경계한다. 사연이 있겠지만 가끔은 서운하다.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 나의 바람과 달리 고양이들은 자주 싸운다. 평소에는 각자의 영역을 지키고 서로 데면데면하며 지내고는 있기는 하지만 언제 또 싸울지 모른다. 가끔 세 마리가 쏜살같이 서로를 뒤쫓으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면서 서로를 물어뜯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싸우는 고양이를 떼어놓느라 진땀을 흘렸다.


 별이는 세 마리의 평화가 이제야 조금 정착되고 있는데 또 한 마리를 입양한다면 기존의 고양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더 싸우게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우리 가족인 세 마리의 고양이, 루이 라온 새온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험난한 세상에 던져진, 이제 태어난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오렌지색 태비 고양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임시보호만이라도 하자고 설득했다. 구청 직원이 500명이나 되니 입양 내부 공지를 올리면 최소한 한 명에게라도 답장이 올 수 있다. 아기 고양이니까 연락이 올 가능성은 많다.

 하지만 당장 침대 밑에서 나오지도 않는 데다 하루 종일 소리를 지르고 있어 바로 입양 공지를 올릴 수 없었다. 더구나 2개월이나 밖에서 지내 아기 고양이는 지저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댈 수도 없이 공격적이라 목욕도 시킬 수가 없다. 지금은 누가 입양한다고 해도 다시 우리 집으로 데려가라고 할 판이었다. 


 아기 고양이를 구조한 지 나흘째인 날, 퇴근해서 집에 들어갔다. 이상하게 조용하다. 그렇게 울던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지 않았다. 

 “왜 안 울어? 아기?”

 “갑자기 아까부터 안 울어. 오늘 잠깐 방에서 나와서 루이랑 라온 이를 보았거든. 엄청 놀랐는데 그때부터 안 울어.”

별이가 말했다. 

 아무리 울어도 엄마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걸까? 

그날 이후 아기 고양이는 하루가 다르게 적응해갔다. 목욕도 하고 사람 손도 탔다. 10일 만에 침대 밑에서 나왔다. 2주 만에 슬이 방에서 나와서 다른 고양이들을 만났다. 3주 만에 온 집안을 홍길동처럼 뛰어다닌다. 아기 고양이는 겁이 없다. 오히려 자기보다 덩치가 5-6배 큰 루이, 라온을 공격했다. 작지만 날쌔서 루이, 라온, 새온이 도망치며 피했다. 

 아기 고양이는 엄마 고양이에게 교육을 잘 받은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도 경계하고 다른 고양이를 공격하는 폼이 제법이다. 다람쥐인가 싶을 정도로 날쌔다. 루이는 한 달 만에, 라온이는 삼 개월 만에, 새온이는 사 개월 동안의 계속된 도전과 실패 끝에 올라간, 장롱 위를 아기 고양이는 구조된 첫날 가볍게, 단번에 올라갔다. 부엌 맨 끝에서 슬이 방까지 우사인 볼트처럼 뛴다. 

 처음에는 임시보호만 하고 다른 집으로 입양을 보내려 했으나 우리 집에 너무 오래 있었다. 우린 정이 들었다. 왈가닥, 천방지축, 홍길묘, 로켓, 총알, 묘사인 볼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입양 보내서 다른 집에 간다면 또 삼일 간 소리 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잡힐 때는 내 손을 물기까지 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무는 건 묘사인 볼트의 취미였다. 다른 고양이는 물론 인간까지도 계속 물려고 한다. 입양 보낼 수가 없을 것 같다. 다른 집에서 키우기 어렵겠다. 이런 천방지축을 받아주는 집은 많지 않을 테니까.

아기 고양이는 엄마 고양이를 못 찾았지만 인간 집사 가족과 자기가 평생 살집을 찾았다. 엄마 찾느라고 보닛에 들어가서 소리 지른 지 한 달 만에 결국 우리 집의 막내 고양이로 낙점되었다. 

 아기 고양이의 이름은 ‘아리’다. ‘아리땁다’에서 따온 ‘아리’.

 아리는 오렌지색과 갈색이 오묘하게 섞인 태비 고양이다. 얼굴은 오렌지색이 많아 밝아 보이고 눈은 아몬드 같은 연갈색이라 신비롭다. 별이와 슬이도 여자아이니까 예쁜 이름이 좋다며 ‘아리’라는 이름에 동의했다. 


 “천방지축 홍길묘, 아리. 오빠, 언니들 그만 좀 괴롭혀.”

아리가 온 후 루이와 라온이가 결막염에 걸렸다. 또 루이는 며칠 전 새벽 4시에 라온과 싸우다가 어깨가 탈구되어 상반신에 붕대를 감았다. 사실 고양이들은 워낙 유연해서 탈구라는 것이 무척 드물다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아리는 세 마리의 고양이를 보기만 하면 공격하고 꼬리를 물고 난리다. 자기들보다 몇 배 작은데도 세 마리의 고양이는 속수무책이다. 아리는 아무 잘못도 없지만 세 마리의 고양이들은 스트레스를 받는 게 분명하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부엌에만 가면 쫓아오더니 이제는 아예 부엌에 터를 잡았다. 루이, 라온, 새온과 달리 못 먹는 게 없다. 사료를 충분히 먹었음에도 우유라도 마실라 치면 달라고 난리고 밥 먹으려고 하면 자기도 먹겠다고 먼저 식탁에 올라온다. 

 잘 때 보면 천사인데 깨어나면 완전 천방지축 홍길묘다. 이제 4개월 되었으니까 조금 더 크면 나아지겠지? 

 오늘도 33평의 아파트를 끝에서 끝까지 대각선으로 뛴다.  

 천방지축 홍길묘, 묘사인 볼트 아리!


 

부상병 루이 
이제 우리 집의 주인이 다됐다. 아리

라온 공주

새온 , 루이


대답 냥이 루이

이전 14화 보닛 전문, 아기고양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