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3-3
【안녕하세요? 우리 구 구정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선 ** 고양이사랑 동아리는 고양이 중성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중략-】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중성화에 진심이다. 성묘라면 공원에서 발견한 그날 중성화한 고양이들도 많았다.
난 민원 답변 초안을 쓰다가 잠시 머리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빽빽한 아파트 틈 사이로 세로 줄처럼 푸르른 하늘이 보였다.
고양이를 사랑하지만, 길에서 태어나선 안 돼. 길에서 태어난다면 인간의 쓰레기를 먹고 살게 되고, 로드킬이나 구내염으로 죽게 될 수 있어.
그날은 이 민원 건이 아니더라도 바쁜 날이었다. 근무시간 후에 인근 지역으로 중성화 출장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업무로 시청에 보고하는 문서도 마감 날이었기 때문에 나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답변 초안과 시청보고를 겨우 근무 시간 안에 마칠 수 있었다.
6시가 넘어 서둘러 인근 ***동으로 갔다. 한 달 전 동 주민 센터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직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 직원은 담당하는 기초수급자 할아버지 집에서 고양이 다섯 마리를 발견했다. 턱시도 엄마 묘가 두 달 전 그 집에 들어가 애기들을 네 마리 낳았던 것이다. 하지만 수유기라서 바로 중성화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한 달을 기다린 터였다. 그동안 나는 마더 앤 캣 베이비 사료를 계속 배달해주고 있었다.
처음에 직원은 엄마 묘를 중성화시키고 아기들을 공원으로 데려가라고 했었다. 기초수급자 할아버지는 다섯 마리나 되는 고양이들을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았다. 본인도 기초수급을 받아 겨우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기들을 공원으로 데려가는 것을 계속 미뤄왔다. 힘들어도 웬만하면 그냥 거기서 키울 수 있도록 하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이제 턱시도 엄마가 아기를 낳은 지 두 달이 되어 엄마 묘를 중성화해야 했다. 두 달이 넘으면 또다시 임신할 수 있으니까.
“이 집이예요. 어르신 집에 계세요?”
사회복지직원이 할아버지를 불렀다. 열려있는 방에서 머리가 하얀 깡마른 할아버지가 나왔다. 방안에는 담배연기, 무언가 찌든 냄새가 가득했다. 나는 코를 만지는 척 하면서 숨을 참았다. 방이라야 T. V와 이부자리, 서랍장 하나를 빼면 한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전부였다. 전형적인 쪽방이었다. 화장실도 밖의 공동화장실이다.
이런 공간에 거짓말처럼 천사 같은 네 마리의 주먹만 한 아기들이 군데군데 박혀있다. 까만색과 갈색의 삼색이 아기는 TV뒤에, 검은색과 하얀색이 섞인 점박이는 이불 구석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올 블랙 아기 냥 두 마리는 창문턱에 앉아있다. 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도 이 열악한 공간이 공원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최근 공원에서는 로드킬로, 내가 발견한 아이들 사체만 해도 다섯 마리가 넘었다. 나무들도 많고 분수도 있어 나름 자연이라고 생각했던 공원이 이렇게도 위험한 곳이었다니!
공원은 사면이 도로로 둘러싸여있어 로드킬이 자주 일어났다. 게다가 점점 흉흉해지는 세상에 동물학대자가 언제 나타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할아버지가 엄마 턱시도를 가방에 넣어주었다. 엄마 묘 애니는 눈이 크고 푸른색이어서 바비 인형 같았다. 애니는 나지막하게 야옹거리며 큰 눈을 불안하게 움직였다. 푸른 눈을 들여다보며 나는 말했다.
“괜찮아. 애니야. 수술만 하고 돌아올 거야. 이제 힘들게 살지 말자.”
아기들이 6개월이 되면 중성화해주고 사료배달도 계속 하기로 약속했다. 할아버지는 거의 방치하는 듯 했지만 쫒아내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다음날 퇴근 후, 애니를 데리러 갔다. 애니는 벌써 기운을 차린 듯 앉아있다. 무엇을 찾는 것인지 계속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애니. 아기를 찾는구나.
서둘렀는데도 밤 9시가 되어서야 할아버지 집에 다시 도착했다. 방문은 열려있고 할아버지는 집에 없다.
“애기들이 어디 있지? 아. 여기 있네?”
애기들 네 마리가 줄줄이 창문에 매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를 기다렸구나! 나는 가방 문을 열었다. 중성화 수술 후 아직 회복이 안 되어 아픈 몸인데도 애니는 사뿐히 창문턱으로 뛰어올랐다.
이 쪽방에서라도 잘 살았으면.
그래도, 어찌됐든, 여기는 집이니까.
길이 아니니까.
공원에는 비가 오고 있다. 사람들도 고양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젖은 사료를 버리고 새로 담고 비바람에 더러워진 급식 터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어? 리리야. 왜 비 맞고 다녀.”
작은 주먹만 한 노란 솜뭉치가 걸어왔다. 2주전 이사 온 애기 냥 리리다. 역시 다세대 쪽에서 나타난 것 같았다. 리리는 다가와 나의 슬리퍼에 붙었다. 2주 동안 공원에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만졌는지 강아지가 다 되었다. 이제 리리는 누구든지 사람만 보면 다가왔다. 우산을 씌워주었지만 이미 비를 흠뻑 맞은 채였다. 리리는 작은 몸을 흔들어 옅은 노란 색 털의 빗물을 털어냈다. 그러더니 조그마한 머리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나의 갈색 눈동자와 리리의 노란 눈동자가 빗물 속에서 마주쳤다.
‘애니. 이제 애기를 낳지 않게 돼서 천만다행이야.’
나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귀엽게 생긴 애기들이라도, 아무리 예쁘더라도 태어나선 안 돼.
인간은 오랜 세월동안 고양이를 길들여 왔지만 책임지지 않으니까.
길고양이들은 야생동물도 반려동물도 아닌 채로 길에 버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