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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22. 2023

강남 고양이

-애니3-2

“민쌤, 공원에 가서 스티커 모두 제거하세요.”

이번에는 총무과에서 내게 전화가 왔다. 총무과의 태도는 일단 논란이 된 것은 문제라는 것이었다.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어떤 말도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장님, 민원이 어떻게 하나도 없겠어요? 올바른 일이라면 집행하는 것이고 불법은 불법이라고 하는 것이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인 거죠. 공무원이 도대체 왜 있는 겁니까? 민원 해결하는 게 우리 일이잖아요?”

나는 목소리를 높였으나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간부회의에서 결정한 일이었다.

 창밖에는 비가 장대같이 내리고 있다. 나는 잠시 내 긴치마를 바라보았다. 양말을 벗고 슬리퍼를 신었다. 공원은 퇴근시간이 지나 옅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람도 고양이도 보이지 않았다. 적막했다. 빗소리만이 공원을 덮고 있다. 

 중앙의 급식터로 먼저 갔다. 보건소에서 사준 삼나무 급식 터가 있는 곳. 

 몇 달 전만해도 여기 아직 까치, 또치가 있었지. 내가 태어나서 본 가장 예쁜 고양이인 우리 까치, 또치 쌍둥이가 이 사물함 급식 터에 자주 올라가서 자곤 했다. 보건소에서 잘한 게 하나 있다면 이 사물함 캣타워를 사준 것이라고 말했었는데. 그 까치, 또치는 모두 로드킬로 죽고 사물함은 혼자 비를 맞고 있다. 

스티커를 떼고 다음 장소로 갔다. 여기는 공원의 북쪽 끝으로 다세대와 맞닿아있어서 이사 오는 아이들이 많이 왔었지. 지난해 초봄엔 치즈 네 마리가 한꺼번에 나타났었다. 형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같이 나타나서 그런지 치즈들은 꼬리를 치켜들고 기세도 당당했었지. 급하게 그 주에 다 잡아서 중성화를 했었는데. 이제 그 치즈들 다 어디론지 사라지고 수수 한마리만 남아있나. 작은 암컷인 수수는 성질이 강해서 만나기만 하면 하악과 소리를 한꺼번에 지르곤 한다.

 세 번째 장소는 잦은 급식 터 공공기물파괴로 한 달 전 아예 폐쇄해버렸다. CCTV가 없어서 신고를 해도 방법이 없었다. 여기 살던 아기 올블랙 남매, 핫세와 올리가  6개월이 되어 중성화하자마자 로드킬로 죽었다. 

 마지막 네 번째 급식 터는 공원 오른쪽 분수대 근처에 있다. 가장 나이든 (그래봤자 만 세살이지만) 아치와 피치가 숨어있는 곳이다. 수컷들은 다 사라지고 그나마 암컷인 겁 많은 아치와 피치가 로드킬을 피해 살아남은 건가. 

 드디어 스티커를 전부 뗐다. 우산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비에 흠뻑 젖은 머리를 흔들었다. 비를 맞은 게 억울한 게 아니었다. 

 진실이 짓밟혀도 아무도 분노하지 않고 아무도 신경 안 쓴다는 게 무서웠다. 

 나만 피해 가면 된다? 그건 아니잖아. 


  비가 조금 잦아들었다. 사무실로 돌아가려다가 나는 뒤로 돌아섰다. 공원을 바라보았다. 지난 삼년동안 공원에 참 많이도 왔다 갔다 했었는데.

삼년의 시간동안 나는 많이 변했을까?

겉으로 본 공원은 그동안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공원의 고양이들은 참 많이도 사라지고 또 나타났었지. 

 우리가 돌본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 큰 힘이 되지 못했다. 

 인간도 살아가기 힘든 이 위험한 세상에서, 아마도 역부족 이었을까. 

우린 그냥 밥을 주고 중성화를 해줄 수 있을 뿐이었다. 급식과 중성화를 해주더라도 길고양이들은 일상적인 로드킬과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물학대자는커녕 하다 못해 자잘한 민원도 우리는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급식과 중성화만이라도 잘 되고 있는 곳은 사실 드물다. 

 결국 우리 공원의 이런 환경조차도 길고양이에겐 서울의 강남 같은 곳이었다. 대부분의 길고양이들은 훨씬 더 열악한 곳에서 살고 있을 터였다. 


 월요일 아침, 총무과에서 답변하라고 간략한 민원 내용을 보내왔다. 주말 내내 기분이 엿 같았지만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들이 원한 것이 바로 이것일 거다. 

약자를 괴롭히는 것, 고양이를 괴롭히는 것,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자들. 

 “민쌤. 민원 20개에 대한 답 글 초안을 오늘 안에 써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너희들! 제대로 만났다. 

나는 문어, 무너지지 않아. 나는 마이크를 잡듯이 키보드에 나의 촉수를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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