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날의 달고나
“요즘 핫하다는 그 음료가 이거예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흑당 밀크티였는데 이젠 달고나 밀크티가 인기네요”
점심을 먹고 간 카페에서 동료들은 모두들 달고나 밀크티를 주문했다. 트렌드가 바뀌는 속도는 광속이라서 나는 이미 따라가기를 포기한 지 오래지만 사람들은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밀크티에 달고나 조각들이 가득 올려져 몹시 단 것 같아 보이지만 직원들은 별로 달지 않다고 맛있다고 한다. 나는 연갈색 달고나 조각들이 한가득 올려져 있는 밀크티를 가만히 바라본다. 연한 갈색 조각에 작은 공기구멍이 송송 나있는 모습이 예쁘다.
설탕을 가열해서 약간의 소다를 넣으면 부풀어 올라 이런 연한 갈색 거품 덩어리가 된다. 식으면 모양 그대로 고체가 되고 이것을 망치로 부수어서 먹는 것이다. 공기거품이 있어 조금만 힘을 주어도 잘 부서졌다.
떡볶이는 작은 간장 종지 같은 플라스틱 그릇에 2조각이 기본이었다. 손가락만 한 길이의 두 가닥에 10원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두 세 그릇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10원에 만족해야 했으므로 간장종지에 2가닥은 너무 적었다. 엄마는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꼭 2가닥에다가 반가닥을 더 주었다. 다른 집은 두 가닥에 십 원인데 두 가닥 반을 엄마는 10원에 팔았다. 간판도 없는 떡볶이 집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우리 집은 곧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 빼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님으로 가득 찼다.
저녁 8시가 되면 이제 아이들도 다 집으로 돌아가고 문을 닫는 시간이었다. 엄마는 파느라고 우리에게 못 먹게 했던 떡볶이를 4 자매에게 똑같이 나누어주었다.
“오늘은 많네. 빨리 먹자. 이리 와라”
“와. 맛있겠다.”
우리에게 남은 떡볶이는 세상 최고의 음식이었다. 통통 불어서 처음보다 많이 커져있었고 차가웠어도 왜 이렇게 맛있는지 우린 쫄아든 국물까지 긁어먹었다. 많이 팔려서 별로 남은 게 없을 때는 너무 안타까웠다.
엄마는 매일 저녁에 정산을 하고 나서 언니는 100원 나는 50원을 주었다. 우리는 다음날이 되면 학교 갔다 와서 매일 새마을금고에 갔다. 새마을금고가 있던 사거리는 걸어서 한참 가야 했지만 우리는 매일 뛰어서 갔다. 매일 저금을 했고 매일 통장에는 돈이 차곡차곡 쌓였다.
어느 날이었다. 우리 집 건너편에 파라솔이 하나 생겼다. 아이들이 거기로 다 몰려가서 우리 집은 파리만 날렸다. 개천 바로 위에 있던 다리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파라솔을 펴고 뽑기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돈도 주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며칠 뒤 학교에서 돌아오니 앞에 있던 파라솔은 없어지고 대신 그 집에 있던 모든 물품이 우리 집에 들어와 있었다. 이제 우리 집은 떡볶이가 아닌 뽑기를 팔게 되었다. 엄마는 파라솔의 주인과 담판을 짓고 모든 물품을 산 것이었다.
아이들은 곧 뽑기의 신세계에 매료되었다. 뽑기의 장점은 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떡볶이는 다 조리해서 파는 것이었지만 뽑기는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다. 설탕 한 스푼을 국자에 넣고 연탄불에 가열한다. 얼마 안 되어 설탕이 녹아 갈색 물이 되면 소다를 젓가락으로 찍어 넣어 젓는다. 그러면 약간 부풀어 오르면서 갈색 연한 고체덩어리가 된다. 그러면 그것을 꺼내어 철판에 올리고 누르면 평평한 동그란 작은 부침개처럼 되고 거기에 별 모양, 하트 모양, 물고기 모양 등 여러 가지 모양을 틀로 찍어 만들어 먹는 것이다. 이것과 함께 달고나라는 것도 있었는데 하얀 네모난 설탕 같은 것을 국자에 넣어 녹여 먹는 것이었다.
“너 네 집 달고나 해? 나랑 같이 집에 가자.”
우리 반의 부반장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집에 와서 그 애는 달고나를 만들어서 설탕에 뿌려먹었다. 그러면서 맛있다고 했다. 나는 그 애가 좋아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그 애는 가끔 학교 갈 때 우리 집에 들렀다. 엄마는 팔아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주지 않던 달고나를 나를 위해 만들어 주셨다. 우린 달고나를 함께 먹으며 등교했다. 가난해서 어두웠던 학교생활에 한줄기 빛이 비쳤다.
장사를 시작한 지 몇 달이 흘렀다. 근처에 사시던 외할머니가 급하게 뛰어오셨다. 이 지역을 전부다 철거하고 재개발한다는 거였다. 외할머니는 빨리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 집은 곧 장사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그곳을 떠나 봉천동 산동네로 가게 되었다. 엄마는 평생 집 짓는 일, 빌딩 청소, 영화관 청소, 공공근로 등 힘든 일을 도맡아 하셨다. 그렇지만 그 후로 우리는 단 한 번도 새마을금고에 간 적이 없었다.
“왜 안 드세요? 이런 거 안 좋아하세요?”
“아, 아뇨. 저는 그냥 좀 소화가 안돼서요.”
“주임님, 어릴 때 이런 거 안 먹어보셨나 보다. 맛있어요. 하하”
나는 헛웃음을 지었지만 사실은 그날이 생각나서 달고나 먹기가 싫다.
그때는 몰랐던 엄마의 마지막 날, 나는 이 지역에서 가장 맛있다는 단팥빵을 사 가지고 갔다. 사실 엄마는 단 것을 정말 좋아했다. 국수도 설탕물에 말아먹었다. 가끔 초콜릿 쿠키나 단팥빵을 사서 친정에 가면 엄마는 아이들처럼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날 엄마는 먹지 못했다. 중환자실 간호사는 엄마가 그 전날부터 먹지 않고 있다며 메디칼 음료를 주었다. 엄마는 그 음료조차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결국 단팥빵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날 저녁 우리는 병원에서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입원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나 이것보다 훨씬 더 잘 만들 수 있다. 달고나 장사도 했었잖니.”
“엄마, 나는 어린 시절 중에서 그때가 젤 좋았어. 거기 철거만 안됐다면 우리 정말 부자가 됐을지도 모르는데. 엄마도 그렇게 고생 안 했을지도 몰라.”
만약 엄마가 달고나 밀크티를 본다면 웃으실 거다. 그리고 나의 얼굴에도 엄마를 닮은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이제 가셔야죠. 점심시간 끝나가요.”
나는 일어선다. 곱슬머리에 동그란 얼굴, 항상 낙천적이셨던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있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찾아냈던 엄마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나는 사무실로 빠르게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