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메데오 발비
2024. 2. 5
제목 : 마지막 지평선
작가 : 아메데오 발비
P289 ∼ 마지막
나는 가끔 우리 후손들이 무엇을 알게 될지 궁금해진다. 지난 4세기 동안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가팔라졌다. 상황이 계속 이런 식이라면 인류는 점점 더 심오하고 정확한 지식을 쌓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알고 있는 것도 불완전하고 임시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평온함을 유지해야 한다.
단념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식에 굶주려 있으니까. 우리는 진화를 통해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졌다. 이제 그 지식에 관한 열망이 단순한 생존의 차원을 넘어 우리가 어떤 종인지 정의하고 우리가 존재하는 의미를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요점은 지식과 의미에 관한 갈망을 잘못된 확신으로 대체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의구심을 품는 데 익숙해지는 법을 배우면서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그리고 답이 없는 질문이 존재한다는 가능성도 받아들여야 한다. 왜 우주 전체가 관점의 오류인지, 지나친 일반화가 아닌지 궁금할 수 있다. 우리가 신의 관점을 사용하지 않고 매우 한정된 관점을 수용하면 아마도 신비로움은 증발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의 일부다. 그래서 뮌히하우젠 남작처럼, 우리도 가끔 우리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진흙에서 벗어나려 할 때도 있다.
저 밖에 우주가 있다는 사실만큼 나를 놀랍게 하는 것이 또 있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자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각은 정말 확실하게 유일한 것인데, 공간과 시간이 정확하게 접합하는 지점에서 내가 ‘나’라고 부르는 일시적인 원자 집합체에 주관적인 경험, 즉 계속 변화하는 지각의 덩어리가 동반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외부에서는 현실 전체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을 가질 수 없는 것처럼, 초점의 중심에 근거를 두면 모든 것이 그 중심을 향해 모이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면 우주와 의식 모두 관찰대상이 될 수 없다.
의식이 우연이나 변덕, 혹은 우리 각자의 존재를 우연하고 무의미하게 만드는 쓸모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창조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 두 관점 중 어느 것과도 결부되지 않고, 우리가 우주의 작은 파편에 지나지 않으면서 그 우주를 밝혀서 현실로 만드는 존재라는 간단한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주를 만든다고 할 수도 있는 현실에 감사하면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경험이 없으면, 우주에는 아름다움이나 고통, 기쁨, 비극, 질서, 혼란이 없을 것이다. 공허하고 어두운 체계, 복잡한 만큼의 의미는 쓸모도 가치도 없는 장치일 뿐일 테다.
우리는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도, 의식이 있는 이유도 모르고, 앞으로 알게 될지도 의심스럽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 각자는 현실 전체를 밝히는 짧은 불꽃이다. 우리는 우주가 들여다보는 거울이고, 존재하는 것을 향해 마음의 눈을 열고 잠시나마 이곳에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의미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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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 청소년 에스에프문고를 읽으면서 과학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어려웠고 나는 문과를 선택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에 대한 열정은 대중과학서와 에스에프소설에 대한 탐독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전히 과학은 어렵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과학서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과학은 진실에 가까이 가려고 하니까요. 적어도 노력하니까요. 그것이 어쩌면 이룰 수 없는 명제라 할지라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