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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야생동물을 보았나요?

비둘기가 사라진다면

by 민하

오늘 야생동물을 보았나요?

-비둘기가 사라진다면-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 에스컬레이터로 뛰어간다. 출근시간까지 10분밖에 안 남았다. 사무실에 도착하려면 버스로 한 정거장이 남아있다. 걸어가면 15분, 버스 타면 5분이다. 걸어간 적이 많지만 오늘은 버스를 타야겠다. 횡단보도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는데 대형 쇼핑몰 앞에 하얀 무엇인가가 보인다. 비둘기다.

마술사 옆에 항상 등장하던 그 하얀색 비둘기.

다른 비둘기들처럼 하얀 비둘기도 여기서 먹고사는 것 같다. 1주일 전쯤 출근길에도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지하철 역 에스컬레이터 바로 앞에 있었다.

‘교통량이 많아 위험하고 먹을 것도 없고 여기 있으면 힘들 텐데.’

나는 걱정이 된다. 하얀 비둘기는 다른 비둘기보다도 더 길들여진 듯, 사람 곁에서 맴돌며 연신 먹을 것을 찾고 있다.

‘비둘기가 뭐라도 먹었을까?’

하얀 비둘기는 목 부분이 먼지가 묻은 것처럼 회색빛이다.

앗, 지각이다. 나는 버스를 향해 뛴다.


겨우 사무실에 정시에 도착했다. 나는 먼저 사내 내부 망을 켠 후 오늘의 뉴스를 본다. 밤새 지구 멸망이 일어나지나 않았는지, 혹시나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한다.

‘한국인 90% 정치 갈등 심각, 정부의 부동산 정책 또 실패, 아파트 가격대란, 미친 물가,

지난 50년간 전 세계 야생동물 68% 감소 / 인류에 의한 제6의 대멸종 진행 중

68퍼센트라니. 제목만 훑던 나는 깜짝 놀라 인터넷 기사를 클릭한다.

【와이즈만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오늘날 인간의 생물량은 남극에 사는 크릴이나 흰개미와 비슷했다. 하지만 야생 포유류는 6분의 1로 해양 포유류도 5분 1밖에 남지 않았다.

식물도 절반이 멸종했다. 이를 두고 과학자들은 "6,500만 년 전 공룡을 사라지게 한 제5의 대멸종에 이어 인류에 의한 제6의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말한다.

결국 지구에 남은 것은 인간과 가축이었다. 현재 육지 포유류의 60%는 인간이 키우는 가축이고 36%는 인간이다. 야생 포유류는 4%에 지나지 않았다. 새도 마찬가지다. 70%가 닭이나 오리같이 인간이 키우는 사육조류(가금류)였고 야생 조류는 30%에 그쳤다.】


그나마 조류가 조금 더 나은 건가. 그다음 기사는 더욱더 놀랍다.


【뉴스에서는 지난 50년간 모든 야생생물이 평균 68% 감소했다는 사실은 재앙 수준이며,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자연 세계가 손상되고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 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 시스템이 지속될 경우 개체 수 감소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생생물이 70% 가까이 감소한 것은 단지 50년간 동안의 결과다. 몇 천 년 동안 축적된 것이 아니다. 아침에 보았던 하얀 비둘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비둘기들이 늘어나게 된 원인은 대체로 86 아시안 게임, 88 서울 올림픽 때부터 라고 한다. 88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2,400여 마리의 비둘기를 일제히 날렸다. 올림픽을 축하하는 의미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날린 것이다.

비둘기들은 날아가다가 성화 봉송 대에도 둥글게 앉았다. 순간 성화에 불이 붙여지고 미처 날아가지 못한 비둘기에게도 불이 붙었다. 당시 개막식은 TV로 생중계되고 있었고 이장면도 전 세계에 전송되었다. 4년 후 1992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는 서울 올림픽을 타산지석 삼아 성화를 먼저 점화한 이후에 비둘기들을 날렸다. 동물보호의 관점에서 서울 올림픽은 가장 실패한 올림픽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수입한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이후 90여 차례 크고 작은 행사에서 비둘기들을 날려 보내면서 비둘기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비둘기들은 사람들에게 길들여지고 사랑을 받았다. 오랫동안 먹이를 급여받았다. 어디서든지 공원에 가면 사람들은 비둘기에게 먹을 것을 주었었다. 서울시청 옥상에서는 몇 천 마리의 비둘기를 키우기까지 했다. 이렇게 되어 비둘기들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9년, 급기야 도시의 비둘기들은 유해동물로 지정되었다. 환경부에서는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상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을 유해동물로 지정하는데 비둘기도 이 목록에 포함시켰다.

하루아침에 비둘기들은 굶주리게 되었다. 정책적으로 비둘기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먹이를 주지 않은지도 10년이 흘렀다. 굶주림으로 개체 감소를 추진하고 있다.

비둘기의 수명은 보통 10년에서 20년이다. 비둘기들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산란을 한다고 하며 한 번에 2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평생 짝을 바꾸지 않는다. 대부분 우리가 보고 있는 비둘기들은 야생 비둘기들도 있지만 그때 날려 보낸 비둘기들의 자손도 많을 것이다. 더군다나 하얀 비둘기는 야생에서는 태어나기 쉽지 않다. 그때 그 자손이거나 사람들이 키우다가 버려졌거나 탈출했을지도 모른다.


사무실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조금 걸어가면 분수가 있는 공원이 하나 있다. 공원 가장자리 끝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붙어있다.

비둘기가 생태계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먹이를 주지 마세요.≫ 현수막 아래, 비둘기들이 십여 마리가 앉아있다.

이 현수막에 자기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글이 적혀있음을 모르는 비둘기들은 현수막을 커튼 삼아 학교에 모인 학생들처럼 얌전하게 앉아있다. 쨍쨍한 햇볕 아래 지쳤는지 날개를 바닥에 대고 있다.

중앙의 작은 분수대에도 비둘기들이 모여 있다. 분수대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틈을 타서 비둘기들이 몸을 씻고 있다. 십 여 마리 정도 되는 비둘기들이 차례로 분수대에 앉아 깃털을 적신다. 날개를 파닥거리며 목욕을 하고 깃털을 정돈한다. 각자 커피를 든 몇 사람이 크게 떠들며 다가오자 비둘기들은 단체로 날아간다. 닭둘기라며 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비둘기는 깨끗한 동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세계 곳곳에서도 비둘기들의 증가는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다른 식으로 접근한다. 공원에 비둘기들을 위한 집을 만들고 먹이를 주며 알을 낳으면 인공 알로 바꿔치기하는 방식으로 개체수를 조절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개체수를 조절해야 한다면 좀 더 인도주의적인, 동물보호적인 관점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


시계를 보니 한시가 다되어간다. 나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 공원 벤치에서 일어선다. 도시에 사는 내가 오늘 야생의 동물을 보았다면 그것은 비둘기다. 까치나 참새도 가끔 볼 수 있지만 그들은 멀리서만 볼 수 있다. 비둘기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야생조류다.

사람들이 내다 버린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두어 개 가로등에 기대어 있었다. 두 마리의 비둘기가 그 위에 앉아있다. 비둘기들은 컵라면에서 라면을 건져먹고 있다. 누군가 쓰레기 위에 컵라면을 먹다가 버렸나 보았다. 비둘기가 라면을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긴다.


굶주리는 비둘기는 생태계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비가 올 때마다 낮게 날던, 어릴 때 본 제비들은 이미 못 본 지 오래되었다.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침이 두렵다. 공원에 가도 비둘기 한 마리도 없는 세상이 올까 봐 무섭다.

회색빛 도시에 인간과 친한 야생동물인 비둘기도 없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비둘기.jpg 공원의 비둘기들
안양천.jpg 안양천에서 본 야생동물-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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