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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크노 캄파 루미노사

- 은하수를 본 적이 있나요? -

by 민하

아라크노 캄파 루미노사


보트는 강을 따라 동굴로 들어갔다. 회색의 석회암 동굴벽이 눈에 들어왔다. 갖가지 모양의 종유석과 석순이 미세한 빛에 반사됐다. 나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순간적으로 탄성을 지를 것만 같았다. 입구에서 마오리족 관리인이 신신당부했었다. 소리를 내서도 안 되고, 사진은 더더욱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아라크노캄파루미노사를 보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동굴의 어두움이 더욱더 짙어졌다. 동굴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노를 젓던 마오리족 가이드의 손짓에 천장을 바라보았다. 점점이 별빛처럼 무수한 빛들이 빛나고 있다. 동굴의 천장을 가득 메운 별들은 은은하게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은하수를 본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아쉽게도 은하수를 직접 본 적은 아직 없었다.


이 별빛은 사실은 ‘아라크노 캄파 루미노사’라는 곤충의 유충이다. 아라크노(거미줄 같은) 캄파(곤충) 루미노사(빛을 발하는)는 스페인어에서 따왔다. 이름처럼 거미줄 같은 피싱줄(낚싯줄)을 드리워 먹이를 잡는다. 그리고 먹이를 유인하기 위해 빛을 발하는데 이빛은 그들의 배설기관에서 발하는 빛이다. 작은 크기에 비해 빛은 강해서 마치 별빛을 연상하게 한다.

아라크노 캄파 루미노사의 성충은 약 120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이들은 알에서 부화하여 3밀리리터의 작은 유충이 된다. 유충 단계는 그들 생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9개월에 걸쳐 3센티미터 정도까지 성장한다. 유충 기간 동안 그들은 천장에 붙어 피싱 줄을 드리우고 몸에 빛을 내어 먹이를 유인한다. 9개월 후 성숙해지면 번데기가 되어 몇일만에 모기와 닮은 성충으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이 성충의 목적은 명확하다. 특이하게도 번식만을 위해 존재한다. 성충은 입이 없다. 번식만을 위한 시간은 단 며칠이면 족하다. 성충은 번식을 끝내고 아사하게 된다. 성충의 시체는 자신의 알들을 위한 먹이가 된다. 별빛을 닮은 것도 신비하지만 삶 자체도 신비하다. 경이로운 생명체다.

이들에게는 가느다란 피싱 줄이 서로 얽히지 않기 위해 바람이 없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리고 천적도 없어야 한다. 삼천만 년 전 와이토모 동굴은 원래 바닷속에 있었다고 한다. 이천만 년 전부터 어떤 지각의 변동으로 인해 땅으로 솟게 되었고 화산 분출, 지진, 단층 작용을 통해 현재의 동굴이 서서히 만들어졌다.

뉴질랜드의 와이토모 동굴은 이들에게 천연의 요새다. 대륙과 분리된 뉴질랜드, 고립된 이 동굴에서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라크노 캄파 루미노사가 서식한다. 이곳의 특이하고도 고립된 환경으로 인해 반디 벌레는 지금까지 생존해왔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원래 이 동굴을 알고 있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신비한 생명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만 비밀을 지켰다. 그들은 이 신비한 생명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조상 대대로 이미 알고 있었다.

1889년, 관광을 위해 서양인의 설득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개방됐다. 그렇지만 철저히 동굴은 관리되고 보호되고 있다. 이 동굴의 관리인들은 거의 그때의 마오리 부족 족장의 직계 자손이다.


서랍을 정리하다가 9년 전에 여행했던 뉴질랜드 와이토모 동굴에 관한 팸플릿을 찾아냈다. 와이토모 동굴에 대한 역사와 이 유일한 반디 벌레에 대한 설명이 빼곡히 적혀있다.

그때 우리는 7박 9일간의 호주 뉴질랜드 여행을 갔었다. 그동안 일주일 이상의 여행은 가본 적이 없었다. 동남아를 벗어난 처음의 여행이었다. 호주의 시드니,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등을 여행했다.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감명 깊었다. 하지만 더욱더 눈에 들어온 것은 그들의 자연을 보호하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아직도 아름다운 자연이 남아있다. 우리는 커다란 공원에서 식사를 하면서 호수의 오리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보았던 아름다운 아라크노 캄파 루미노사도 마오리족이 보존하지 않았더라면 멸종했을 것이다. 모리셔스 섬에만 서식했던 도도 새는 발견된 지 정확히 100년 만에 멸종됐다. 마구잡이 사냥이 원인이었다. 스텔라 바다소는 스페인 선원들에 의해 맛있다고 소문난 지 27년 만에 멸종됐다. 우리는 그들을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볼 수 없다. 존재했었다는 것만을 알고 있다.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해외여행을 나중으로 미뤘다. 단 며칠이라도 공부하는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았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때가 있지만 자연은 항상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이상기후가 여기저기 뉴스에 등장하고 바다에는 죽은 물고기가 떼로 떠다니고 태평양 어디엔가는 한반도의 7배가 넘는 크기의 플라스틱 섬이 있다. 이제 나는 전에 내가 여행을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 아름다운 곳들이 점점 바뀌고 있다. 내가 갈 때는 전에 본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KA MATE! KA MATE!

(I'll die! I'll die!)


KA ORA, KA ORA!

(I'll live, I'll live!)


마오리족 전통 마을에 갔을 때 그들이 추던 하카 춤이 기억난다. 그 춤은 전쟁하러 갈 때 추는 용감하고도 힘 있는 춤이다. 원주민 분장을 하고 혀를 내밀고 팔과 다리를 흔들면서 노래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오히려 슬픔을 느꼈다. 한때 뉴질랜드의 원주민으로 50만 명 이상 살았으나 유럽인과의 전쟁으로 이제 10분의 1 정도만이 남아(*사실 마오리족은 세계 원주민 중 가장 많이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맥을 지키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서글펐다.


코로나가 끝나면 사막으로 진짜 은하수를 보러 가야겠다. 100년 전 전기가 없었을 때, 사람들은 은하수를 못 본 사람이 드물 테지만 지금은 은하수를 본 사람이 많지 않다.

아라크노 캄파 루미노사, 은하수를 닮은 이 신비로운 생명체가 계속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하카춤.jpg 하카 춤추는 마오리족
아라크노캄파루미노사.jpg 아라크노 캄파 루미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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