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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가방 공장

1편- 락의 생일 파티

by 민하

제1편- 락의 생일 파티


작업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수정이가 어제부터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때마침 공장장이 들어와서 다시 사람들은 작업에 열중했다. 나도 실을 기계 바늘에 끼웠다.

점심시간에 은선 언니가 얘기해주었다. 수정이가 어제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고향인 거제도로 내려가서 10일 동안 있다가 온다고 했다. 중절 수술도 충격적이었지만 10일 동안 쉬면 다시 일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렇게 빨리 몸이 회복되는 건가? 몹시 힘들 것 같았다. 나는 많은 것이 궁금했지만 언니들은 수정이만 안됐다면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곧 희진 언니의 시댁 얘기가 나오면서 모두들 웃기 시작했다.

지난주 출근시간에 재민이와 수정이가 함께 걸어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수정이는 원래 기숙사에 살지만 가끔 재민과 밤을 보내고 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일한 지 이제 2주째다.


첫 출근하는 날,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처음이라서 너무 긴장되었다. 성동구에 있는 40명 정도 되는 조그마한 공장이었다. 이곳은 군용 가방을 만드는 곳이다. 나는 저번 주에 면접을 보았고 수습생으로 일을 하기로 했다. 수습생은 시다라고 불렸다. 공장은 빨간색 벽돌 건물이었다. 마치 고등학교 건물을 연상시켰다.

작업장은 4층이었다. 문을 열자 100평 정도 되는 공간에 사람들과 그 사람들 수만큼의 커다란 재봉틀이 나를 압도했다. 그 커다란 까만색 철로 된 재봉틀은 왠지 무시무시하게 커 보였다. 공장장은 자리를 안내해주더니 처음부터 반말이었다.

“민이라고 했지? 모든 것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해.”

안 그래도 긴장해있었던 나는 조금 더 의기소침해졌다. 처음 하는 일에다가 기계도 처음 보는 거라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재봉틀에 실을 거는 게 우선이었는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기계에 왼쪽 엄지손가락이 끼었다. 다행히 곧 빼긴 했으나 피가 많이 났다. 휴지로 대충 말고 있었는데 공장장이 오더니 밴드와 소독약을 주었다.

“쉬었다 해”

무서운 얼굴이었지만 처음이니까 봐준다는 듯 가버렸다. 많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피가 많이 났다. 멈추는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밴드로 엄지손가락을 감았다. 공장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작업에 열중해있었다.

그때 건너편 옆에 앉은 여자가 눈에 띄었다. 처음 보기에도 재봉틀을 다루는 솜씨가 능숙해 보였다. 그녀의 발 옆에 있는 바구니에 카키색 가방이 잔뜩 쌓여있었다. 가슴에는 금빛으로 「1급 재단사」라고 쓰여 있는 명찰이 빛나고 있었다. 1급 재단사가 되기 위해선 숙련된 기술과 적지 않은 경력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도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사실 그녀가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이유는 일을 잘하는 것보다도 그녀의 외모 때문이었다. 정말 티브이 드라마에라도 나올 것처럼 예쁜 얼굴이다. 약간 짧은 보브 스타일의 웨이브 머리에 하얀 피부, 붉은 입술이 말 그대로 백설 공주였다. 저만큼 예쁜 여자는 아마도 내 생애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여자임에도 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중에 그녀의 이름이 수정이란 걸 알았다.


“민, 이번 주 수요일 저녁에 시간 있어요?”

재민은 작업 도중 잠시 쉬는 시간에 내 자리에 왔다.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머뭇거렸다. 그동안 나는 수정의 남자 친구로만 재민을 알고 있었다.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재민은 내게 처음 말을 건 것이었다. 그는 이번 주 수요일이 락의 생일인데 그날 기숙사에서 생일파티를 할 것이라며 오라고 했다. 내가 계속 망설이자 그는 나와 친한 은선 언니도 올 것이라고 했다.

“아 다른 언니들도 오는 거죠? 알았어요.”

나는 겨우 대답했다. 내가 주저했던 것은 이 공장에 입사한 지 이제 3주 차여서 몇몇 사람들의 얼굴을 겨우 알뿐 제대로 이름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살갑게 대해주었던 은선 언니와 몇 언니들과만 얘기해봤을 뿐이다.

락이라면 지난주 언젠가 점심시간에 5분 늦게 들어와서 벌칙으로 노래를 불렀던 사람이다. 팝송 “스마일 어겐”을 불렀는데 목소리도 좋고 잘 불러서 기억에 남았다.

다음날 나와 은선 언니는 시장에 들러서 락의 생일선물을 샀다. 언니는 컵세트를 나는 베개를 샀다. 이름도 이제 처음 안 사람이지만 그래도 생일파티에 가는데 선물은 사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락과 은선 언니는 같이 일한 지 몇 년 되었다고 했다.

은선 언니는 락에 대해 조금 알려주었다. 그는 거제도에서 살다가 몇 년 전에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수정과 락은 거제도에서 함께 자란 마을 친구였다. 수정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하고 먼저 서울로 갔다. 락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수정을 따라서 서울공장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수정은 그사이 이미 남자 친구가 생겼다. 백설 공주처럼 예쁜, 게다가 1급 재단사인 수정이 왜 재민과 어울리는지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민은 키도 보통이고 외모도 그냥 평범한 스타일의 남자였을 뿐이었다. 나는 락이 몇 년 전 올라왔을 때의 실망감을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수정은 락의 첫사랑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락의 생일날, 일이 끝나고 나는 은선 언니와 몇 사람과 함께 락의 기숙사로 갔다. 나는 점심시간에 항상 은선 언니의 여자 기숙사로 가서 언니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쉬었었다. 그래서 여자 기숙사는 가봤지만 남자 기숙사는 처음이었다.

2-3평밖에 안되어 보이는 방에 10명이 들어갔다. 방은 좁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갑자기 재민은 락이 안 하던 청소를 엄청 했다며 나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했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재민은 락과 나를 이어주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락이 엄청 착하다느니, 천연기념물이라느니 뭐 이런 말을 하면서 말이다.

락은 별 대답 없이 얼굴이 상기된 채 웃고만 있다. 아마도 락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락은 잘생기고 키도 컸지만 의외로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며칠 전 출근하는데 현관에 혼자 서있던 락을 보고 얼떨결에 손을 흔들며 인사했던 게 생각났다. 직원이라는 것 만 알 뿐 이름도 몰랐지만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날 생일파티는 케이크를 락의 얼굴에 바르는 것으로 끝났다. 우리는 노래방에도 가고 호프집에도 갔다. 사람들과 조금 친해졌다. 재민과 락, 그리고 수정은 22살, 나는 21살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말을 놓기로 했다. 재민은 한 살 차이는 그냥 친구라고 했다.

그날부터 락은 공장에서 지하철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지하철까지는 10분 정도면 도착했다. 락은 나를 바래다주고 다시 잔업을 하러 가야 했다. 나는 수습생이라 잔업을 하지 않았지만 숙련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잔업을 했다. 잔업을 하지 않으면 월급이 얼마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공장장에게도 미운털이 박힌다고 했다. 공장에서 지하철까지는 10분이 걸렸다. 10분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항상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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