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미카 찾기
미카를 잃어버린 지 정확히 45일째다. 나는 이제 우리 동네의 골목골목을 머릿속에서 펼칠 수 있다. 마치 3D 지도를 구현하듯 내 머릿속에서는 우리 동네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들도 하나둘씩 떠오른다. 이쁜이, 총총이, 초록이, 하트, 노랑이, 혼돈, 짧은 꼬리 등 내 마음대로 이름 붙였지만 자기 나름의 생활방식과 성격, 그리고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내가 깨닫기 전부터 우리 동네에 함께 살고 있었다.
“미카. 우리 미카. 어딨니?”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다시 한번 불렀다. 만약 미카가 내 목소리를 듣는다면 나올 것이다. 담벼락 사이의 작은 틈새로 노란 꽃이 피어있다. 이런 곳으로는 갔을 것 같지 않지만 알 수 없다. 나는 고양이가 아니지만 고양이처럼 생각해야 한다.
여기는 주택단지다. 그렇다면 고양이를 해치려는 위험한 사람들도 많으므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음식을 구하기 위해 주거단지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과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 후미진 뒤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 살아있다면 그런 곳에 우리 미카가 있을 것이다.
동네에는 길고양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전에는 출퇴근하느라 이렇게 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지 몰랐다. 정말 예쁜 고양이들은 다 길에 있다고 누군가 이야기했었는데 두 달째 골목을 돌다 보니 맞는 말이었다. 이렇게 지저분하고 척박한 곳에서도 이렇게 길고양이들이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험악한 세계에 맨몸으로 던져져서 생존을 위해 힘겹게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걷다가 차 밑에 형체가 있어 멈췄다. 총총이였다. 캔을 주면 먹고 총총히 사라지는 뒷모습이 멋져서 나 혼자 총총이라고 이름 붙인 하얀 바탕에 까만 점박이 고양이다. 나는 가방에서 캔을 꺼내 주고 거리를 유지했다. 길고양이들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면 안 된다. 나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우리나라에는 길고양이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길고양이들은 항상 사람들을 경계할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모르는 동안 길거리에서 장난으로 죽임을 당하거나, 실험대상이 되는 고양이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숫자다.
삼거리로 갈라지는 골목을 돌아가는 길에 보약탕 전문 간판이 보인다. 약초뿐만 아니라 흑염소, 야생동물의 이름도 쓰여있다. 몇 달 전 신문에는 몇 천마리나 되는 길고양이를 잡아 산채로 통에 넣어 끓여 나비탕으로 팔았다는 사람들의 기사가 났었다. 어떻게 생명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인간인 것이 부끄럽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우리 미카가 과연 이런 세계에서 살아남았을까? 벌써 두 달째다. 길고양이이긴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상자에 넣어져 우리 집에 온 미카는 길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사람들에게 친근함을 느끼기 때문에 오히려 범죄의 타깃이 된다. 요즘 안 보이는 하트가 걱정됐다. 하트는 우리 아파트 단지 입구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이다. 등에 하트처럼 갈색 얼룩무늬가 있었다. 하트는 날 좋은 날이면 아파트 입구에 앉아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도 피하지 않았다. 미카도 우리 집에서 애교가 가장 많아 강아지처럼 나를 따라다니곤 했다.
어둠이 짙어졌다. 나는 시계를 본다. 벌써 아홉 시다. 내일도 또 출근하려면 오늘도 10시에는 돌아가야 한다. 두 달째 퇴근하고 두 시간씩 동네를 샅샅이 살피고 있다. 매일 가지고 다니는 플래시 전등도 몇 개째 새로 샀다. 남편은 남편대로 별이는 별이대로 다 매일매일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미카를 찾고 있다. 하지만 어디서도, 누구도 미카를 찾지 못했다. 나는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다시 한번 꺼내 확인한다. 부재중 전화는 없다.
미카가 없어진 걸 알게 된 것은 녀석이 사라진 지 4시간이나 지나서였다. 아침에 택배가 와서 문을 열어준 것을 제외하고는 문을 열지 않았으니까 미카는 그때 나갔을 것이다. 토요일이었고 나는 오랜만에 느즈막까지 잠을 잤다. 택배가 왔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문을 열었다. 상자를 가지고 들어와서 상품을 확인하느라 깜빡 문을 닫지 않았다. 그 작은 실수가 이렇게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될 줄은 몰랐다. 오후에 간식을 주려고 아이들을 확인했는데 미카가 없었다. 가끔 침대 밑이라던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 숨어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날은 느낌이 이상했다. 먹을 것을 마다하는 미카가 아니었다. 아무리 잠을 자더라도 캔을 따는 소리가 들리면 어디선가 어슬렁어슬렁 큰 몸을 흔들며 걸어 나오곤 했다.
온 집안을 이 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럴 수는 없었다.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미카는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는 친구 만나러 갔던 별이와 직장 근무 중이던 남편까지 다 모였다.
한 달이 넘도록 온 동네를 샅샅이 뒤졌지만 미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우리는 컴퓨터로 미카의 사진을 붙인 전단지를 만들어 인터넷에도 올리고 아파트 관리소의 허가를 받아 곳곳에 붙였다. 가끔 전단지를 보고 전화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워낙 미카와 닮은 길고양이가 많은 것도 문제였다. 우리는 미카를 알아볼 수 있지만 사람들은 턱시도 고양이라면 다 미카처럼 보였을 것이다.
‘오늘은 다른 길을 찾아볼까?’
나는 익숙한 골목길을 돌아 나와 횡단보도 건너 있는 시장까지 걸어갔다. 이렇게 먼 곳까지 갔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그냥 걷고 싶었다. 이미 내 머릿속의 이성은 지쳐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것도 지우려 하고 있었다.
시장은 시간이 늦어 거의 문을 닫았다. 가끔 문을 연 가게가 한 둘 있을 뿐 지나가는 사람도 없이 적막하다.
시장 옆 거의 쓰러져가는 담벼락에 고양이가 두 마리 있다. 아무렇게나 쌓아져 있는 벽돌 위에 노랑 치즈 고양이가 앉아있고 그 밑에 갈색 얼룩 고양이가 바닥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조심스레 지켜본다. 가방에서 캔을 꺼내서 그들 앞에 놓았다. 작은 목소리로 나는 말한다.
“많이 먹어, 살아남아야 해.”
얼룩이와 치즈 고양이가 캔 옆으로 다가오자 나는 돌아섰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눈을 크게 뜨고 돌아보았다. 아까는 없었던 까만 고양이가 캔을 보고 나온 것이다.
‘앗, 턱시도 고양이다.’
본능적으로 눈이 커졌다. 미카보다 작고 목 주변과 입 주위가 회색빛인 고양이다. 미카는 아닌 것 같다. 너무 작다. 노랑 치즈 고양이와 함께 있다. 캔을 먹으려 하다가 나를 보더니 경계하는 눈빛으로 벽돌 위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에 내가 그 고양이의 얼굴을 본 것은. 그리고 그 얼굴의 분홍 코 옆의 까만 점, 이것은 미카다.
“미카, 이리 와. 너 정말 미카지?”
내가 다가가자 캔을 먹다가 말고 갈색 얼룩 고양이가 도망갔다. 미카는 잠시 캔을 내려다보고 주저하더니 이내 그들을 따라 도망갔다. 나는 정신없이 따라갔지만 그들은 골목을 돌아 사라졌다.
여기다. 여기 살고 있었다. 미카는 믿을 수 없게도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내가 부르자마자 노랑 치즈 고양이를 따라 도망갔다. 그럴 리가 없는데 우리는 5년이나 함께 살았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한다. 전화기를 꺼내는 내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왔다.
“여기야! 민혁 씨! 여기야. 드디어 찾았어.”
나는 이튿날부터 일주일간 사무실에 휴가를 냈다. 시장 근처 담벼락에 진을 쳤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캔과 츄르를 주면서 고양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분명 미카였지만 우리가 불러도 오지 않았다. 캔만 먹고 도망치기를 몇 번이나 하고서야 나는 맨손으로 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시청에 전화해서 포획틀을 빌렸다. 다른 고양이를 두 마리나 잡고 놓아주고서야 세 번째, 겨우 미카를 잡을 수 있었다. 미카는 다시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