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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그레이스 라켓

내가 총소리를 낼 수 있는 그날이 과연 올까?

by 민하

“연골 파열입니다.”

의사는 MRI를 보여주면서 자세히 설명했지만 이미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수술해야 한다고 한다. 다행히 많이 파열된 것은 아니어서 파열된 연골 부분만 다듬어주면 끝나는 것이라 수술시간은 30분도 안 걸릴 것이고 회복기간도 한 달 정도면 될 것이라고 했다. 실비보험도 들어있어 비용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회사에 병가를 내야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나는 잔뜩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 다시 스쿼시를 할 수 있는 건가요?”

“ 안 하는 게 좋죠. 이제 운동을 바꿔보세요. 무릎에 무리 안 가는 수영이나, 실내 자전거 이런 걸로 요”

젊은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나 진지하게 말했다.



어릴 때 가난해서 못해본 것이 많아서 그런지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딸아이 영어 학원을 알아보고 있었다. 잠시 영어 테스트를 보는 1시간이 남아 근처에 시립복지관으로 갔다. 시립이라서 싸게 피아노 강습을 해준다는 정보가 있었다. 담당자는 대기가 많아서 육 개월이 걸려야 자리가 나온다고 무표정하게 얘기한다.

“대기에 이름 넣어드릴까요?” 담당자의 말에 나는 손을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장생활 20년 만에 생애 처음으로 휴직을 낸 터였다. 1년간의 휴직이기 때문에 육 개월 대기는 안되었다. 앞에 붙어있는 포스터가 보였다. 시립복지관 5.6층이 스포츠센터였다. 올라가 보니 때마침 스쿼시 수업이었다. 코치로 보이는 30대 남자가 여자 회원들을 강습하고 있었다. 순서대로 달려가 까만 탁구공처럼 생긴 공을 라켓으로 치고 있었다.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난 망설임 없이 5층 접수처로 가서 등록을 했다. 몇 년 전에 마트에 갔다가 그 건물에서 스쿼시 연습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멋있어 보였다. 이후 나는 버킷리스트에 적어놓았었다.

다음날 오전 9시 난 이미 스쿼시장에 있었다. 코치는 처음이냐고 물어보고 바로 강습을 시작했다. 나처럼 처음 온 사람이 몇 명 있었다. 다 내 또래인 것 같았다. 오전 타임이라 전업주부들이 많을 것이다. 보기보다 뛰는 양이 상당했다. 40분 강습이었는데 10분 만에 땀이 온몸에 흘렀다. 선생님은 처음이라 못하는 나에게 친절하게 “괜찮아요, 잘했어요!”를 연발했다. 동기부여가 되었다.

선생님도 좋았고 운동도 좋았다. 그리고 같이 배우는 사람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은 전업주부였고 한 사람은 웹디자인 프리랜서로 모두들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 얘기가 통해서 우리는 같이 배우면서 밥도 먹고 차도 마셨다. 그동안 항상 사무실에만 있었기 때문에 오전에 연습하고 차 마시는 시간은 나에겐 진정한 자유였다. 강습을 끝내고 오전 10시에 샤워하면 웃음이 나왔다. 지난 20년간 평일에 운동은 물론, 오전 샤워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스쿼시를 오래 한 사람들은 모두 라켓이 있었다. 스포츠센터에서 빌려주는 라켓은 보통 무게가 220g 정도였지만 선수들이 쓰는 라켓은 100에서 130g 정도 되었고 치는 힘도 달랐다. 조금만 힘을 줘도 공이 세게 쳐졌다. 스쿼시를 시작한 후 삼 개월 후 인터넷을 뒤지다가 핑크색 그레이스 라켓을 사게 됐다. 115g이었고 가격도 20만 원이나 되었지만 큰맘 먹고 샀다. 내 인생의 운동을 찾은 것 같았다.

나는 운동을 가기 전에 매일 핑크 라켓을 꺼내어 물티슈로 닦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라켓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핑크색 라켓을 들고 있으면 운동선수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세져서 하다 보면 숨이 턱턱 막혀왔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한번 더를 외쳤다.


1년이 지나갔다. 나는 강습시간에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았지만 복직할 시간은 더욱더 빨리 다가왔다.

다행히 직장인 타임이 있어서 저녁 7시로 등록을 했다. 같이 배우는 사람들이 바뀌었다. 전에는 주로 전업주부 여자들이었다면 이제는 직장인들 남자들이었다. 그동안 육아 때문에 회사 동료밖에 아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운동을 하면서부터는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과 대화하며 사회 경험을 더 넓힐 수 있었다.

어느 날 30대 초의 남자 회원이 들어왔다. 처음이라고 했는데 자세부터 남달랐다. 알고 보니 중학교 때 테니스 운동선수를 했다가 부상으로 그만두었다고 한다. 민우는 곧 체육관 사람들 모두에게 다크호스가 되었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15년 된 체육관 최고 회원과 상대가 되었다.

민우와 고수가 게임을 할 때면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들이 게임을 할 때면 벽면에 직선으로 고무공이 세게 맞아서 탕하는 소리를 냈다. 총소리 같았다. 사격장에서 헤드폰을 끼고 집중해서 총을 쏠 때 나는 소리 같았다. 이 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후련해졌다. 접시를 벽에 세게 던져서 접시가 산산조각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달까? 마치 총소리는 스트레스를 겨냥해 쏜 것처럼 “탕”하는 소리를 내며 스트레스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하지만 아직 힘이 부족한 나는 그 소리를 내지 못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지만 언젠가는 총소리를 내고 싶었다. 열심히 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곧 체육관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퇴근 후 7시에 센터에 도착하여 옷을 갈아입고 실내 사이클을 타다가 8시부터 강습하고 9시에 끝나도 나는 집에 가지 않았다. 9시 30분까지 복도에서 혼자 연습한 후 샤워하고 집에 갔다. 문 닫는 시간이 10시였기 때문에 더 있을 수는 없었다.

나의 운동에 대한 열정은 평일 강습시간인 일주일에 세 번, 세 시간만으로는 부족했다. 우리 센터 회원들과 토요일 오후 시간에도 자유 게임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시간의 시간제한이 있어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

몇 달 후 인천 *** 경기장을 찾아냈다. 그곳도 시간제한이 명목상으로는 있었지만 테니스코트가 10개, 스쿼시 코트가 10개의 대형 경기장이라서 인원이 남아 시간은 지켜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마다 9시에 인천에 도착해서 3~4시까지 쳤다. 거의 밥 먹는 시간 빼고는 게임을 했다. 우리 회원들은 거의 직장인이어서 30대가 많았다. 나보다는 많이 어렸다. 그런데도 나는 항상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치는 사람이었다. 정말이지 지치지 않는 체력이라고 다들 말했다. 나도 내가 체력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류라고 밝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세 달 후 강습시간에 다리가 심하게 아파왔다. 걸을 때는 괜찮았지만 경기 중 뛰기만 하면 아팠다. 무언가 이상했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해서 석 달을 쉬었으나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에 갔다. 그동안 비싸서 MRI를 안 찍는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결과가 무서워 미룬 것이다. 나에게 연골 파열은 어쩌면 다시는 스쿼시를 할 수 없게 되는 최악의 결과였다.

연골 수술을 한지 벌써 이년이 지나가고 있다. 스쿼시를 못한 지난 이 년 동안 MTB 메리다 자전거를 살만큼 자전거에도 빠졌다. 자전거는 운동과 여행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스포츠 중에서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운동은 거의 없다. 하지만 스쿼시는 실내 스포츠라서 날씨와 무관하지만 자전거는 춥거나 바람 불거나 밤이거나 하면 타기가 힘들었다.

그동안 주말에는 자전거 여행을 하고 주중에는 헬스장에서 열심히 실내 자전거를 타며 다리 근육을 만들려 애썼다. 연골은 재생이 되지 않지만 근육으로 보충할 수 있다고 한다. 100% 전의 체력으로는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서재에 있던 핑크 그레이스 라켓을 다시 꺼내어 닦는다. 월수금 저녁 9시 나는 달력에 미리 적어놓았다. 선생님과 회원들을 빨리 만나고 싶다.

나에게도 총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날이 과연, 올까?


라켓1.jpg 코로나가 터져 스쿼시를 못한 지 2년이 되었다. 내년엔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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