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개론 1편-
사무실에 나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민희니?”
처음부터 반말이다. 누구지? 이럴 사람은 거의 없는데.
“나야. 민철이. 잘 지냈어?”
“민철이? 정말? 정말 진짜 너야?”
깜짝 놀란 나와는 달리 오랜만에 전화한 민철은 담담했다. 그는 전화한 목적을 이내 말했다. 결혼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결혼식에 와달라는 말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행복감이 묻어있었다. 나의 결혼 이후로 보지 못했으니까 15년 만이었다.
“민희, 너 몰라? 민철이 이상한 거?”
“어떤 거 말하는 거야?
짐작이 가긴 했지만 모른척했다.
“너한테 너무 심하잖아. 주변 사람들이 다 알 정도 라구.”
“난 친구관계가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단지 그뿐이야.”
추석이 지나고 며칠 후 강민의 누나 결혼식 날이었다. 강민은 네 명의 누나가 있다. 이번이 가장 친한 네 번째 누나 결혼식이라 의기소침해있었다. 민철과 나는 강민을 위로해주러 그의 집 근처 부천까지 찾아갔다. 서점에서 책을 산후 호프집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민철이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강민이 나에게 심각하게 말한 것이다.
언제부턴가 전과는 다른, 나를 보는 민철의 눈길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우리 셋의 우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민철과 강민은 유일한 친구들이었다. 여자 동기들도 있었지만 밤까지 남아있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민철의 고백에 냉담하게 반응했다. 강민은 오히려 내게 더 철저하게 선을 그으라고 충고했다. 나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강민이 보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인듯했다.
* * *
나는 대학 입학하면서 2학년 때까지 오전 9시까지 출근해서 아르바이트하고 오후 6시에 학교로 퇴근했다. 밤 10시 수업이 끝나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힘들었지만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배들을 만나고 엠티를 가고 소모임에서 주말마다 책 읽기를 하면서 점차 학교는 나의 모든 것이 되어갔다.
민철과 강민은 학생회 간부였다. 그들은 거의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전대협 발대식, 거리시위, 대자보 만들기, 화염병 만들기까지도 열심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밤에 술을 먹고 온 강민이 나에게 화염병 던지기 시범도 보여주며 해보라고 했다. 나는 던지기를 잘하지 못해서 잘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1층에 있던 학생회실을 가면 그들은 항상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강민은 우리 과 동기였고 민철과 절친이었다. 우리는 같은 단과대라서 2학년 때부터 나까지 같은 사회과학 책 읽기 소모임이 되었다. 우리는 집에 가는 방향까지 같았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인해서 시위나 동아리 모임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지만 책 읽기 모임과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현실을 깨달아나갔다. 그럴수록 더욱 아르바이트 때문에 밤에만 학교에 가는 대학생활이 싫어졌다. 나도 그들처럼 아침부터 학교에 가서 책 읽고 토론하고 시위에 참가하고 후배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결국 3학년부터는 학자금 대출로 등록금을 보태고 시간제 알바를 하면서 학생회에서 일했다. 민철과 강민은 학생회 일과 세미나, 동아리일로 나는 거기에 시간제 알바까지 하면서 바빴지만 우리는 여전히 함께 다녔다. 나는 이제 그들처럼 매일 학생회실로 출근했다.
민철과 강민은 모임에 갔다가 와서 나와 함께 작업을 했다. 글씨를 잘 쓰는 민철은 주로 대자보를 쓰는 일을 했다. 키 큰 강민은 시위할 때 맨 앞에 서는 전투 조였다. 나는 단과대 편집부 책자를 만들었다. 우리는 함께 모임도 가고 시위도 참가하고 엠티도 갔다. 그리고 매일 밤 집에 갈 때마다 함께 지하철을 탔고 그날 있었던 일을 서로 얘기했다. 우리에게 매일 지하철에서의 1시간이 몇 년 동안 쌓여갔다.
그해 여름에도 학생회는 농활을 갔다. 나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가지 못했다. 퇴근한 후 열흘 동안 학생회실에서 책을 읽었다. 나는 자주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정치대 앞의 먼지에 쌓인 가로등이 가까스로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갈 때 자꾸 옆자리를 쳐다보았다. 열흘 후 까맣게 탄 얼굴로 돌아온 그들의 모습에 웃음 지었다.
* * *
이미 지하철 역 안까지 매캐한 냄새가 가득 차있다. 나는 인파를 제치고 먼저 개찰구로 뛰었다. 개찰구 앞에도 경찰이 줄지어 있다. 학교 쪽으로 가는 입구가 막혀있다. 야구장 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학교 건너편 출입구로 나왔다. 경찰들로 둘러싸인 길에는 수많은 종이들과 최루탄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벌써 끝난 모양이다. 「독재정권 퇴진을 위한 결의대회」가 예정되어있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출발했는데도 늦었다.
한참을 돌아 학교로 들어갔다. 호수에 햇볕이 반사되어 5월의 학교는 평화로워 보였다. 사회과학관 건물이 보였다. 사람들이 건물 계단에 서있다. 홍 선배, 민철, 선희다. 난 손을 흔들려하다가 말았다. 모두들 심각한 얼굴이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홍 선배와 이야기를 하던 민철은 나를 보고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민철을 빼고 다른 사람들은 정문 쪽으로 갔다. 민철은 내게 다가왔다. 심각한 분위기에 나는 민철을 바라보기만 했다.
“강민이 다쳤어.”
나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머리에 최루탄 파편이 박힌 것 같아.”
“뭐라고? 강민이?”
나는 가방을 떨어뜨렸다. 민철이 나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결의 대회를 마치고 시민과 함께 하기 위해 거리로 가두시위가 예정되어있었다.
경찰은 교문을 겹겹이 둘러싸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는 것을 막았다. 백골단(*하얀 헬멧을 쓰고 청자켓과 청바지를 입은 특수 경찰)이 앞에 있고 그 뒤에는 방패와 곤봉을 든 전경(*전투경찰의 줄임말로 시위 등을 막기 위해 군대로 차출된 의무경찰들)들이 전경버스를 뒤로 한 채 겹겹이 줄지어 있었다.
학생들이 교문 진출을 하려고 하자 경찰은 최루탄을 마구잡이로 쏘기 시작했다. 까만 최루탄이 길바닥에 몇 번을 튕겨지며 도망가는 사람들 사이로 떨어졌다. 그때였다. 전투 조를 지휘하던 강민이 쓰러졌다. 강민이 쓰러진 바닥 위로 피가 고였다.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지는 않다고 병원을 다녀온 홍 선배가 말했다. 뇌를 건드리기라도 했더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천만다행으로 머리 뒤쪽이라서 두개골을 뚫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파편이 여기저기 박혔기 때문에 수술은 오래 걸릴 거라고 했다.
어제, 집에 갈 때 이상하게 표정이 안 좋았던 강민이 생각났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웃고 대화했을 텐데 혼자 심각했었다.
* * *
금요일 수업은 마지막 시간까지 꽉 차있다. 밤 10시다. 나는 평소처럼 강민과 민철을 찾아 1층으로 내려갔다. 강민은 학생회실 소파에서 자고 있다.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온 것 같았다. 나를 기다리다가 잠이 든 것 같다.
“술 마셨어?”
강민은 졸린 목소리로 아니라고 하며 가방을 들었다.
“민철이는?”
“아직 모임에 있어. 오늘 집에 못 간대”
강민은 술을 마셔서 그런지 유난히 피곤해 보였다. 걸어가는 그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원래도 키가 크고 말라서 휘청거리듯 걷기는 했다.
“괜찮아?”
“아니 오늘 술 조금 마셨는데. 힘드네.”
나는 키 큰 강민의 어깨 밑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겨우 어깨에 닿을락 말락 했다. 가까이 다가온 강민에게서 약한 술 냄새가 났다. 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걸어가기 힘들어 그는 내 손을 잡았다. 너무 꽉 잡아서 아팠다. 우린 어깨동무를 하고 손을 잡은 채 지하철로 걸어갔다.
“술 많이 마신 것 아냐?”
나는 손이 아파서 조심스럽게 빼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오늘 몸이 안 좋아서 그래.”
강민은 내일 결의대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교문 진출과 가두시위까지 예정되어있어 경찰과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요즘 분위기 살벌하던데 괜찮을까? 경찰에 잡히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런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해. 옛날에는 아예 학교에 경찰이 살았잖아. 싸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으니까.”
강민은 피곤한 얼굴에도 결연하게 말했다.
“나 이래 봬도 전투 조대장이야. 그렇게 약하지 않아.”
“누가 믿겠어? 이렇게 말랐는데.”
나는 일부러 웃었다. 하지만 강민은 첫인상부터 믿음이 갔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광주항쟁 때문에 정외과에 왔다고 했던 그때부터 나는 강민의 이름을 기억했다.
* * *
나는 시계를 본다. 평소라면 우리 셋이서 지하철로 걸어갈 시간이었다.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민철도 일어섰다. 나는 정문 쪽(병원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민철은 면회 금지인데 어디 가냐고 물었다.
“다른 병실 가는 것처럼 가면 되잖아? 창문 밖에서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민철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이제 수술 끝난 것 같은데. 아직 의식이 안 돌아왔을 거야.”
병원은 학교 부속병원이라 학교에 붙어있다. 전등만 군데군데 켜있을 뿐 적막했다. 민철은 불안하게 여기저기를 흘끗거렸다. 사복경찰이 있을지 몰랐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 버튼을 눌렀다.
711호의 유리문을 들여다보았다. 입구 쪽의 병상 앞에 머리가 하얀 아주머니가 앉아있다. 강민의 어머니인 듯했다. 그 아주머니 앞의 침대에 붕대로 머리가 칭칭 감겨있는 환자가 있다. 어떤 드라마에선지 본 것 같은 장면이다. 도저히 강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병실 앞의 하얀 명찰을 확인했다. 최강민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나와 민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병실 밖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민철이 나의 팔을 붙잡아 막차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릴 때까지. 그때서야 우린 말없이 지하철을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