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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철의 결혼식

-정치학개론 2편-

by 민하


하얀 턱시도를 입은 민철이 보인다. 우리는 마주 웃는다. 민철은 이리오라고 손짓한다. 민철은 신부에게 나를 소개해주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민철의 신부는 웃고 있다. 신부와 민철은 행복해 보였다. 민철과 남매처럼 좀 닮은 듯 한 얼굴이다. 나는 정말 민철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민희야.”

네이비 정장을 입은 약간 깐깐해 보이는 스타일의 남자가 서있다.

‘설마, 홍 선배?’

나는 맘처럼 다가서지 못하고 천천히 걸어간다. 20년의 세월을 딛고 우리들이 서있다. 홍선배 주위로 선희, 은식, 석준이 둘러서 있다. 선희를 빼고는 다 거의 20년 만인 것 같다. 홍 선배와 키 큰 어떤 남자가 말하고 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난 단번에 강민을 알아본다. 강민은 나를 보고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못 보았나? 난 다가간다.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강민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본다.

“왜 몰라. 당연히 알지.”

“반가운 척도 안 하네. 너무 오랜만이잖아.”

“그래. 진짜 오랜만이기는 하지. 거의 20년이 다 된 것 같다.”

강민은 학교 때의 풋풋함이 사라지고 아저씨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왠지 고생을 많이 한 듯한 얼굴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작은 호프집을 갔다. 그렇게도 할 얘기가 많았던 전과는 다른 어색함이 우리 사이에 흘렀다. 강민은 언론사를, 민철은 아이티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회사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제 강민과 민철은 강북에 산다. 강민은 일산에, 민철은 노원구 쪽이라고 했다. 나만이 아직도 대학 때처럼 강남에 살고 있다. 그들은 그쪽에 산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가끔 만나서 술 한 잔 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육아와 직장생활에 내 쪽에서 친구들을 못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좀 서운했다.

우정을 지키기 위해 난 항상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때로부터도 10년도 더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단지 우리의 성별이 다른 것이 문제였다는 것을 나는 결국 알게 되었다. 남녀 사이의 우정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그때까지의 나는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깊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강민은 쌍둥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결혼한 지 10년 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아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이란성 남녀 쌍둥이였다. 애지중지하는 게 당연했다. 우리는 막차시간이 되기도 전에 일어섰다. 더 이상 함께 지하철을 타지도 않았다. 다음을 기약했지만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20년 만이었다.


* * *


서둘러 학교로 뛰어갔다. 강민이 다시 학교에 돌아왔다. 최루탄을 맞고 수술한 지 석 달 만이다. 강민은 학생회실 구석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나는 강민을 보자마자 반가움에 다가갔다. 하지만 강민은 무언가에 열중해있어서 내가 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새로 들어온 컴퓨터를 만지고 있었다. 강민의 손에는 컴퓨터 책이 들려있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강민은 잠깐 돌아보며 아는 척을 할 뿐 별 반가운 척을 하지 않는다. 그러더니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나 군대 신청했어.”

나는 놀라서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다. 강민은 게다가 영장이 나올 때까지 컴퓨터를 배울 거라고 한다.

“최강민, 무슨 소리야."

내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우리 셋이서 졸업할 때까지 집행부에서 함께 하기로 약속했잖아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강민은 나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부터 자기를 위해 살 거라고 말이다.

“이제 곧 4학년이야. 취직 준비해야지."

강민은 가방을 멘다. 집에 가자고 한다. 아직 민철이는 오지도 않았다. 벌써 며칠째 대선 승리를 위한 총학생 회의에 바쁘다. 민철이를 기다리자고 했더니 강민은 피곤하다고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우린 서로를 기다려주었었다. 지난 3년 동안 거의 막차를 같이 탔었다. 보신각 종소리를 지하철에서 함께 들은 날도 있었다.

그런데 돌아온 강민은 변한 것 같다.

"오늘 아침부터 컴퓨터 수업 듣고 왔더니 힘들어. 나 먼저 갈게"

나는 말없이 강민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우리 중에서 가장 선두에 섰던 강민이었다. 믿을 수 없다.

대자보 마무리 작업을 할 때쯤 민철이가 들어온다. 막차시간에 맞춰 뛰어온 듯 급한 모습이다. 호수 쪽으로 가면 시간이 촉박해 사범대 언덕길을 넘어 지하철로 간다. 우리는 겨우 막차를 탔다.

“강민이 이상해진 것 같지 않아?”

나는 말했지만 민철은 아니라고 했다. 그냥 강민은 군대에 가려는 것뿐이라고.

나는 갑자기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았다.

'최루탄 때문에 머리가 이상해진 게 분명해'

나는 생각했다.

돌아온 강민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셨다. 나는 술 마실 시간도 없었지만 그 모습이 싫어 술자리에 가지 않았다. 강민은 더 이상 우리 독서 모임에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강민이 먼저 군대에 가버리고 민철과 나만이 학교에 남았다.

만약 강민이 최루탄을 맞지 않았다면 그가 그렇게 군대에 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민철과 나도 옛날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4학년이 되면서 민철과 나는 더욱 바빠졌다. 더 이상 함께 지하철을 타기도 힘들어졌다. 민철이 집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민철은 근처 자취하는 친구 집에서 지내는 것 같았다.


* * *

호프집에서 나왔다. 우린 지하철에서 헤어졌다. 선희와 나는 같은 방향의 지하철을 탔다. 선희랑 대화하다가 물었다.

“강민 말이야. 그때 최루탄 맞아서 수술했잖아. 그때 이후로 사람이 변했어. 너 알아?”

내 말에 선희는 똑같다고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덧붙였다.

“그전까지는 용기 있고 항상 선두에 섰었는데. 그 이후 완전 좀생이가 된 것처럼.”

선희는 말도 안 된다며 반박했다. 원래 강민은 용기 있거나 그렇지 않았다고 처음부터 소심했다고 말했다.

내가 틀렸을까? 선희가 틀렸을까? 기억은 물론 완전한 사실은 아니다.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나의 기억과 선희의 기억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우리의 기억도 각색된다.

내 기억 속에서 강민은 그 사건 이후로 완전히 달라졌다. 강민에게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난 그것을 느꼈다. 강민의 눈은 어딘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목적지 없이 가는 배처럼 초점이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강민을 피했다. 허공을 바라보는 그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강민이 군대에서 보낸 편지에도 나는 답하지 않았다.


* * *


아르바이트가 늦게 끝났다. 10시도 넘어서 지하철로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지하철 역 앞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민철이었다.

“너 웬일이야?"

민철은 잠시 살게 있어서 나왔다고 했다. 민철의 얼굴은 약간 피곤해 보였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오래도록 누군가를 기다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은 너를 보려고 나왔어. 잠깐. 너 얼굴 본지 오래된 것 같아서.”

하지만 이제 막차시간이었다. 많은 이야기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다음에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내가 돌아서자 민철도 손을 흔들었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는 계단을 뛰어 지하철역으로 올라갔다. 어두운 가로등 밑으로 민철의 모습이 작아져갔다.

지하철을 타고 나서야 나는 민철에게 너무 소홀했나를 생각했다. 얼굴 못 본 지 일주일이 넘었던가? 이 주일이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자리에 앉은 나는 금새 눈이 감겨왔다. 머리를 떨어뜨리며 졸기 시작했다. 내일도 새벽같이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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