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학 개론 제3편 마지막 편 -
민철은 큰 도화지에 매직으로 우리나라 전도를 그렸다. 그리고 거기에 태백산맥을 세로로 길게 그었다. 그 뼈대에 가로로 묘향산맥, 소백산맥 등을 쓱쓱 그려 넣었다. 솜씨가 좋았다. 내가 내일 지리 시간에 가르쳐야 하는 산맥지도였다.
4학년 5월, 한 달 동안 나는 교생실습을 하게 되었다. 송파구 쪽에 있는 중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광명에 있는 우리 집에서는 두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언니의 사무실이 서울대입구역이라 그곳에서 한 달 동안 살기로 했다. 언니의 사무실에서는 한 시간 정도면 출퇴근이 가능했다. 사무실에 간단한 조리도구가 있었다. 밤이 되면 소파를 붙여서 이불을 덮고 잠을 잤다.
집도 아니고 학교도 아닌 다른 곳에서 하는 생활은 처음이었다. 출퇴근도 힘들고 매일 만나던 친구들도 볼 수 없었다. 그런 내게 민철은 위로가 됐다. 그는 항상 학교가 끝나고 이곳으로 왔다. 사실 그의 집하고 가깝기도 했다. 그는 학교 얘기도 해주고 자료도 함께 만들었다.
우리는 거의 저녁을 함께 먹었다. 사무실 건물 지하에 있는 덮밥집이 단골 식당이었다. 그 식당은 값도 쌌고 맛도 있었다. 난 항상 카레덮밥을, 민철은 짜장 덮밥을 먹었다. 그는 카레의 특유한 향을 싫어했지만 나는 카레가 좋았다. 민철은 카레를 싫어하면서도 어디를 가든지 카레전문점을 보면 나에게 말하곤 했었다.
“저기 가서 먹을까? 너 좋아하잖아.”
* * *
그가 일하는 곳은 첨단 아이티 계통의 중소기업으로 종로 근처에 있었다. 그의 결혼식 석 달 후 나는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다. 업무가 끝난 수요일 저녁, 나는 지하철을 타고 시내 중심부로 향했다. 도착하기 20분 전 민철의 문자가 왔다.
「저녁 뭐 먹을까? 카레 먹을래? 여기 전문점이 있어」
20년 전인데도 아직도 민철은 잊지 않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문자를 보냈다.
「아니, 괜찮아, 다른 거 먹어도 돼. 도착해서 정하자」
민철은 지하철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화창한 날이라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길거리에는 다정해 보이는 연인들, 서로 친한 친구들의 소리가 밝게 들려왔다. 그 사이로 이제 연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도 아닌 우리의 어색한 말소리가 뒤섞였다. 카레전문점으로 가자는 민철에게 나는 카레를 싫어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무심히 말했다.
“사무실 근처에 있어서 많이 먹었거든. 나는 좋아해. 몸에 좋아서. 너는 어때? 싫어하면 다른 거 먹을까?”
발걸음을 맞춰 걸어가던 나는 놀라 민철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느새 나를 앞질러 뒷모습만 보였다. 나는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다 그제야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흔들었다.
“왜? 무슨 생각해?”
“아냐. 그냥, 좀. 우리 아무거나, 간단한 거 먹자.”
나는 근처의 돈가스 집으로 들어갔다.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그는 애써 나를 지웠는지도 모른다. 내가 카레를 좋아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싫어한다는 사실까지도.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싫어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에게 좋은 기억이 다른 사람에겐 힘든 기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조차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이 크고 나서야 알았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할 여유가 없었다.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서 출근하고 일하고 여섯 시에 아이를 찾아 데려오면 설거지와 집안일이 쌓여있었다.
민혁(남편)은 위로가 될 수 없었다. 그 자신도 막 시작된 경찰일을 힘들어했다. 나는 경보 선수, 속성 요리사, 청소 전문가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뛰어가도 유치원에서는 늘 별이 , 슬이가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 30분 안에 음식을 만들어도 아이들은 항상 배고픈 채로 나를 기다렸다. 식사가 끝나면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계는 12시를 가리켰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움과 별개로 시간적, 육체적인 여유가 없었다.
이런 내게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위로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무의식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 민철을 골랐나 보았다. 그는 지난 힘든 몇 년간 나의 꿈에 나타났다. 민철은 울고 있는 나를 안아 주었다. 피곤한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손바닥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나는 학교 때 민철에게 쌀쌀맞게 대한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지금 밥이라도 사려했지만 마침내 나는 깨닫게 되었다. 결국 나를 위로한 것은 민철이 아니라 나의 기억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어떤 책에서 말했었다.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기억이 없다면 무슨 수로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기억이 있어도 우리의 기억은 각색된 것이다. 그렇다 해도 민철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지금은 아니어도 그 당시 학교 시절에는 우린 서로 위로가 되었을까? 단지 기억만으로도 고마운 걸까?
* * *
경찰의 진압이 임박해왔다. 아침에 교내진입을 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이미 몇 겹의 경찰 진압 버스가 학교 정문 앞에 진을 치고 있다. 지도부에서는 모두 산을 통해 해산을 하라고 했다. 관악산 쪽으로는 등산로가 많아서 경찰을 배치하기가 힘들다. 5만에 가까운 대학생들이 모였으나 모두들 산을 통해 거의 빠져나갔다. 우리는 밤에 서울대 뒤쪽, 안양 방면으로 관악산을 타서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 전날 전대협 발대식을 마친 후였다.
나는 민철, 강민과 함께 어두운 밤에 산을 타고 내려왔다. 새벽 3시였다. 아직 지하철이 운행될 시간이 아니라서 우린 각자의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민철의 집으로 갔다. 그의 집이 안양 쪽 산 밑이었다. 민철의 방은 본채랑 약간 떨어져 있는 건넌방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몰래 들어갔다. 산을 타느라 녹초가 된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창호지 문틈으로 아침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민철과 강민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방의 작은 책상 위에는 태백산맥 전권 세트가 놓여있었다. 민철이 이모에게 선물 받은 거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이불을 덮어주고 방을 나왔다. 집으로 가기 위해 탄 열차 안에서 태백산맥을 읽었다. 그 후로도 민철은 내게 태백산맥을 순서대로 빌려주었다.
* * *
“건축학개론 봤어?”
그 당시 유행했던 영화라서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민철은 봤다고 대답했다. 내가 엄청 울어서 별이가 난감해했었다. 내가 많이 울었다고 말했더니 그는 영화에 슬픈 부분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해서라고 말했다. 대학시절을 떠올리면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나왔을까? 그때는 힘들었어도 하루하루가 항상 새로웠던 시절이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서 돌아가고 싶은 때를 입력하라면 나는 그때를 떠올릴 것이다.
민철은 오백 한잔을 마시고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나는 반쯤 남은 맥주잔을 바라보다가 시계를 보았다. 벌써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계산서를 집어 들며 일어섰다. 민철은 자기가 사겠다며 3차를 가자고 했지만 나는 내일 출근이 진지하게 걱정되었다. 지하철 역에서 우리는 이제 서로 반대 방향의 집으로 가기 위해 헤어져야 했다. 나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려다가 다시 민철을 불렀다. 다가온 그에게 가방에서 꺼낸 책을 건네주었다.
“깜박할 뻔했네. 이 책 내가 안 돌려주었잖아.”
“이거? 내꺼였나? 나 필요 없어. 너 가져도 돼. 세트 버린 지가 언젠데.”
나는 내손에 남겨진 태백산맥 마지막 권을 바라보았다. 너무 낡아 누렇게 변한 종이가 보였다. 내가 탄 지하철 문이 닫혔다. 그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며 책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지하철 창밖으로 옅은 눈발이 휘날렸다. 나는 민혁에게 카톡을 보냈다.
「지금 지하철 탔어」
곧 민혁의 답장이 왔다.
「옛날 애인 만나니까 좋아?」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헛소리하면 죽는다」
나는 빨리 문자를 보낸 후 핸드폰에서 영어 앱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