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떠날지 알 수 없다면 1편-
“그러니까 전엔 말도 잘하고 농담도 하던 친구예요. 그런데 요즘 어둡고 말도 잘 안 하고 자꾸 깜빡깜빡하는 게 이상해요. 누나가 오늘 한번 집에 가서 만나보세요.”
“언제부터요? 언제부터 그런 것 같아요?”
친구는 한 달쯤 된 것 같다고 그때부터 어둡고 말을 안 하는 것 같다고 한다. 자꾸만 잊어버리는 것 같다고도 했다. 오늘도 같이 병원 가자고 약속했는데 안 나와서 전화했더니 모르고 자고 있었다.
“하지만 건망증은 나도 있는데. 요즘 술을 좀 많이 마신다고 아빠가 그러던데 그것 때문이 아닐까요?”
친구는 분명히 아니라고 말하면서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정말 내가 생각하기에도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지금 친구와 같이 있는 석이가 왜 직접 전화를 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퇴근 후에 아빠 집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본 건 이주일 전이다. 반찬 갖다 주러 아빠 집에 갔었다.
“요즘 술을 많이 마시네. 방에서 술병이 많이 나와.”
하얀 머리의 아빠가 석이의 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문을 열어보니 담요를 머리까지 쓰고 석이는 자고 있다. 피곤한지 코를 골고 있다. 나는 코로나 상황이라서 밖에서 못 마셔서 그런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아빠에게 말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8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위로 4명의 누나들이 다 결혼하고 아빠와 엄마와 석이 셋이서 산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지난해 엄마가 돌아가셨다. 결혼해서 분가한 우리들과는 달리 석이는 더욱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우울증일까?
결혼 전에 살던 우리 집에서 나온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처음엔 시댁에서 아기를 봐주어 시댁 근처에 살았다. 하지만 시누이가 아기를 낳아서 어머님이 세 명의 아이들을 돌보기가 힘들게 되자 나는 엄마 집 근처로 이사를 왔다. 아이들이 커서도 계속 엄마 집 근처에서, 근처로 이사 다니며 살았다.
애들이 커서도 적어도 한 달에 한번 이상 엄마 집에 갔다. 그래서 석이도 자주 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석이는 버스운전기사라서 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대화를 나눈 적은 별로 없다. 거의 자고 있거나 깨어있더라도 게임을 하고 있고 곧 야간근무로 출근해야 했다.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살뜰히 챙겼다. 네 딸 이후에 엄마 나이 마흔에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아빠의 강압에 계속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던 엄마는 드디어 석이를 낳고 나서야 그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고 튼튼해서 장군감이라고 모두들 자랑스러워했다.
엄마는 담요에 싸인 아기를 안고 택시에서 내렸다. 산동네에 갑자기 나타난 택시에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조산소로 아기를 보러 갔다가 함께 집에 왔다. 아빠는 엄마를 부축하고 엄마는 자랑스럽게 아기를 안고 골목 계단 길로 내려왔다. 무뚝뚝하고 엄하기만 한 아빠가 한동안 다정해졌다. 부엌에 드나들면서 미역국을 끓였다.
석이가 돌이 되자 석이의 옷을 다 벗기고 누드사진을 찍었다. 사진사와 엄마, 아빠는 아기의 그곳(?)이 잘 보이도록 구도를 잡느라 시간을 많이 들였다.
“튼튼하고 잘생겼네.”
사진관 아저씨는 석이를 보고 말했다. 그 후 동네 사진관에는 석이의 돌 누드사진이 샘플로 한동안 전시되어있었다. 사진관은 초등학교 가는 길에 있어서 나는 항상 볼 수 있었다.
오후쯤에 석이의 문자가 다시 왔다. 오전에 들렸던 병원에서는 엠알아이 날짜만 잡고 집에 가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른 병원에 갔다고 한다. 뇌혈관 전문병원인 그 병원은 예약을 안 하고도 MRI를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입원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문자를 보자마자 전화를 했다. 또다시 석이의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입원하라고 했다고 했다며 가족이어야만 진료상담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사무실에서 차로 10분 거리도 되지 않았다.
친구는 석이의 입원 수속을 해주고 입원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 석이는 입원실 한쪽 구석에 앉아있다. 내가 손을 흔들자 석이는 표정 없이 손을 들다가 내렸다. 나는 무언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쉽게 말을 할 수가 없다. 간호사가 왔다. 같이 의사 면담을 하라고 한다.
의사는 MRI사진을 보여주었다. 동그란 뇌 부분에 하얀 구름 같은 것이 있다. 나는 알 수가 없지만 의사의 눈에는 무엇인가 확실히 보이는 듯했다.
“여기 머리 중앙에 무엇인가 있습니다. 정확한 것은 수술해서 조직검사를 해보아야 알겠지만 빨리 큰 병원에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석이는 멍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의사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모든 정황이 뇌암인 것 같아요. 특례 적용해놓았으니까 빨리 병원을 찾아보세요.”
의사는 석이는 혼자 있을 수 없는 환자니까 누군가 돌봐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올 사람도 없었지만 석이는 멀쩡해 보였다. 화장실도 혼자 가고 담배도 피웠다. 누가 봐도 건장한 3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좀 이상한 거라면 전에 비해서 반응이 좀 느린 것 정도밖에는 없다.
“진희니? 너도 올 수 없지?”
나는 나의 바로 밑의 동생, 셋째에게 전화를 했다. 석이는 1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첫째인 언니는 논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둘째였고 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은 결혼한 지 오래됐지만 아이가 없다. 하지만 나를 빼고는 다들 집이 멀어 명절에 친정에 오는 것도 버거워했다. 누구도 동생을 간호한다고 나설 것 같지 않다.
다행히 간호 통합서비스가 돼서 신청했다. 그걸 신청하게 되면 전담간호사가 있어서 돌봐주기는 하지만 면회는 금지라고 한다. 코로나 상황이기 때문에 돌보는 사람,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가족이라도 면회는 되지 않았다. 방법은 없다. 석이의 친구도 입원물품을 산 후 다시 들어올 수가 없어서 병원 측에 맡기고 돌아갔다.
“석아, 통합 병동으로 옮겨야 돼.”
내 말에 석이는 잠깐 얼굴을 들더니 다시 얼굴을 돌렸다. 내가 물품을 들자 석이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지금? 가자는 거야?”
“응, 지금.”
통합 병동은 같은 층 반대편에 있다. 나는 앞서서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석이는 한참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 나름 열심히 오는 것 같은데 보폭이 짧았고 느렸다. 마치 팔십 오세인 아빠의 걸음걸이 같다. 나는 못 본 척 다시 천천히 앞서 걸었다. 석이는 서른아홉 살, 게다가 남자다. 나와 열 살 차이인 석이의 걸음이 이렇게 느릴 수는 없다. 무언가 이상했다. 나는 온몸이 차가워졌다.
“석아, 코로나라서 지금 같이 있지는 못하는데 곧 종합병원으로 옮길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내가 금방 올게.”
석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표현하지 않으려고 말을 절제하는 것 같다. 나는 차마 그의 얼굴을 볼 수조차 없다. 어깨에 손을 올리자 석이는 그만 가라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