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 캐치(nice catch)

- 어떻게 떠날지 알 수 없다면 5편 마지막 편-

by 민하


남편 민혁이 나를 흔들었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나는 겨우 고개를 돌린다.

“민하씨. 전화 왔어.”

핸드폰을 들어보니 새벽 6시, 발신자에 호스피스 병원 이름이 떠있다. 놀라 통화 버튼을 눌렀다.

“병원이에요. 몇 시까지 올 수 있으세요?”

지방이지만 평일이라서 차는 많이 막히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두 시간은 잡아야 한다

“될 수 있으면 빨리 오세요. 어쩌면 임종을 못 보실 수도 있습니다.”

이럴 수는 없는데? 호스피스로 간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다. 석이는 나이가 젊기 때문에 최소 이, 삼 개월은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호스피스 병원에서는 매일 죽는 사람을 볼 것이고 임종이라는 것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다. 실수 할리 없다. 믿을 수밖에 없다. 나는 언니와 동생에게 전화하고 아빠 집으로 출발했다.


“석아. 가자. 다른 병원으로 가자. 더 좋은 곳이야.”

석이는 나와 함께 앰뷸런스를 탔다. 앰뷸런스는 사이렌 소리를 내며 1시간 반을 달렸다. 복잡한 차들과 거리를 지나 점점 초록색과 한적한 길로 접어들었다. 호스피스 병원에 도착했다. 이국적인 주황색 지붕을 가진 하얀색 건물이 몇 개 동 있는 이 병원은 6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조용했다.

키가 크고 몸집이 좋은 목사가 우리를 맞았다. 오랜만에 따뜻한 인사였다. 이곳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교회에서 상당 부분 재정을 보조해주어 입원비가 저렴했다.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석이가 입원하는 병실에 짐을 풀었다. 세 명 이서 같은 병실을 쓰고 있고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어 가정집 같았다. 창문으로 화단과 작은 언덕이 보였다.

전담 호스피스 간호사는 내 손을 잡으며 얼마나 힘들었냐며 석이의 병명과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물었다. 내 이야기를 듣는 그녀의 눈에 안쓰러운 표정과 눈물이 맺혔다.

호스피스 의사는 석이를 진찰하고 콧줄 호스를 다시 한번 꽂으려 시도했으나 완강한 거부로 하지 못했다. 결국 이제부터는 영양주사로만 음식을 공급할 거라고 한다. 호스도 빼고 진통제도 맞은 석이는 훨씬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아빠를 모시고 언니와 진희, 은희가 도착했다. 면회가 되지 않기 때문에 입원하는 날 우리 가족 모두 모였다.

코로나로 인해서 대면하는 면회는 되지 않았지만 만약 상주해서 간호를 원한다면 1명 만은 허용이 되었다. 숙식도 무료였다. 마지막에 가족이 함께 상주해서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병원에서 환자가 마지막 가는 길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빠가 석이의 얼굴이라도 더 볼 수 있도록 며칠 지내다 오시라고 말했다. 아빠는 한 달 만에 석이를 본 것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 작업을 마치고 병실로 들어갔다. 석이는 잠이 든 것 같다. 나는 가방에서 야구공 하나를 꺼냈다. 야구공에는 버스운전기사 동료들의 싸인들이 적혀있다. 처음에 입원시켜주었던 용민 씨가 종합병원에 면회 왔을 때 준 것이다. 야구동호회 회원들이 석이의 완쾌를 바라며 싸인을 적었다고 했다. 야구공에는 갖가지 필체로 적힌 이름들과 간단한 말들이 작게 쓰여있다. 석이는 버스회사 야구동호회에서 포지션이 포수라고 했다.

「나이스 캐치」

난 작은 글자가 잘 보이도록 석이의 베개 끝에 자리를 잡아 야구공을 놓았다.

건장한 체구의 석이가 침대에 누워있고 작은 보조의자에 머리가 하얗게 세고 비쩍 마른 아빠가 앉아있다. 석이와 아빠는 아무런 말도 없다. 둘이서 살 때도 서로 별로 말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전담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혹시 자고 가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내가 아빠라고 하자 간호사는 환자와 아빠 둘 다 오히려 불편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가셔도 될 것 같다고 한다. 아빠에게 그냥 집에 가자고 하자 아빠는 힘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석이를 남겨놓고 돌아오는 길에 국밥집에 들렀다. 모두들 일찍 오느라 밥을 못 먹었다. 오후 네 시였다. 이런 상황에서 맛을 못 느낄 줄 알았다. 하지만 국밥은 맛있었다. 종합병원에 있을 때보다 모두들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것 같다.


아빠는 이른 아침인데도 일어나서 사천 년 문헌통고라는 책(※일제강점기 때 한문으로 출판된 우리나라의 역사, 풍속, 지리 등을 다룬 책)을 읽고 있다. 좌우로 흔들흔들하면서 주문 같은 소리를 낸다. 몇 달 전에 인터넷 규장각에서 내가 구해다 준책이다.

“무슨 일이냐?”

병원에서 임종이라고 오라고 했다고 말하자 아빠는 깜짝 놀란다.

“뭐? 오늘 좋은 꿈을 꿔서 상태가 좋아진 줄 알았는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빠는 호스피스 병원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경치가 좋으니까 좋은 병원인 줄로만 안다.

두 시간 후 병원에 도착했다. 벌써 9시다. 그때서야 나는 사무실에 아무 말 없이 출근 안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간호사는 믿음 실이라는 방으로 안내했다. 이곳이 임종 실인가 보다. 넓은 방 한가운데 석이가 누워있다. 현실 같지가 않다.

나는 천천히 침대로 다가가 침대 난간을 잡고 석이를 바라본다. 의사는 석이의 동공을 작은 불빛으로 비춘다. 그는 석이의 한쪽 눈은 이미 풀어졌다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석이의 가슴이 격하게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숨 쉬는 게 아주 힘들어 보인다. 석이는 눈도 뜨고 있지 않다. 방안에는 석이의 힘겨운 숨소리만이 가득하다.


면회는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 목요일 30분만 허용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창문을 사이에 두고 하는 것이었다. 접촉은 할 수 없고 유리창을 통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입원하고 나서 첫 번째 수요일은 버스회사 동료들이 간다고 했다. 용민 씨와 야구동호회 동료들이다.

다음날, 목요일은 아무도 면회가 예정되어있지 않았다. 이번 주에 입원했기 때문에 언니와 동생들은 다음 주에 면회 간다고 했다. 나도 그때 같이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날 아침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나는 갑자기 오후 반가를 냈다. 차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몰았다. 비치된 명부에 방문자 이름을 적었다. 명부에는 환자 이름과 함께 병명도 적혀있다. 췌장암, 위암, 간암, 유방암, 교모세포종 등 나는 명부 속의 병명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호스피스 병원에는 말기암환자 중에서도 운이 좋은 사람? 만 들어올 수 있다.

병동 앞 창문에서 면회를 기다린다. 옆에서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다른 환자와 그의 친구들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면회하고 있다. 사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마른 남자가 전화로 창문 밖의 친구들과 통화한다. 그의 얼굴은 웃기까지 한다. 무슨 농담을 하는지 친구들과 웃음꽃이 피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여기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웃다니 나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잠시 후 석이의 휠체어가 창문 쪽으로 다가왔다. 전담간호사가 밀고 있다. 간호사가 나를 발견하고는 석이에게 몸을 낮추어 이쪽을 보라고 한다. 석이는 힘겹게 고개를 든다. 유리창을 통해 석이의 눈과 나의 눈이 만났다. 나는 손을 흔든다. 간호사는 무릎을 굽혀 바짝 다가가며 묻는다.

“누나 왔네? 몇째 누나야? 누나가 몇 명이야?”

석이는 뭐라고 한 것 같다. 원래 말이 없는 석이가 간호사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하다니 나는 놀란다. 간호사는 누나가 많아? 6명이야? 하며 미소 지었다. 나는 손을 들어 4를 만들어 보였다. 간호사는 전화기를 가리켰다. 아마도 전화를 받으라는 것 같다. 간호사가 나에게 전화를 연결시켜 주었다.

“석아. 잘 지내고 있지? 너무 아프지는 않아? 괜찮아? 아프면 간호사님에게 말해.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하고. 석아. 아프지 않고 잘 지내야 해. 누나가 또 올게. 석아. 정말 괜찮아?…….”

이러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목이 메어온다. 간호사는 전화기를 들어 석이가 잘 지내고 있다고 고통도 많이 덜한 것 같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석이가 힘들어하는 것 같으니까 들어가겠다고 한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다시 손을 흔들었다. 그때 힘없이 축 쳐져 있던 석이의 오른쪽 팔이 조금 들렸다가 다시 내려갔다. 순간 나는 알아챘다. 석이가 내게 손을 흔들려고 팔을 든 것을 말이다. 석이가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매주 창문 면회 때마다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다음날이 나의 두 번째 면회였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일주일 휴가를 내서 같이 지내려고 계획도 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처음에 입원할 때 들어왔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마지막까지, 끝까지 실수를 계속 반복하다니 후회가 밀려왔다.

석이는 격한 호흡을 계속하고 있다. 들이쉴 때 가슴이 올라가고 내쉴 때 다시 내려온다. 이렇게 힘든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석이의 까칠한 머리를 만지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아빠는 말없이 침대 주위를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간다. 두 시간이 지났다. 점점 석이의 호흡이 처음처럼 격하지 않은 것 같다. 조금씩 약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느 순간 더 이상 가슴이 올라가지 않았다. 설마?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는 청진기를 대보고 눈에 빛을 비춰본다. 그는 고개를 들고 일어섰다.

“오전 11시 20분”

의사가 밖을 향해 말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석이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한다. 나는 다시 한번 석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다시는 이 감촉을 느끼지 못하겠지. 다시는 너의 얼굴을 보지 못하겠지. 이제 다시는….’

몇 분이 지나고 간호사가 들어와서 수의를 갈아입혀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나는 눈물을 참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언니와 동생의 이제 도착했다는 문자와 전화가 차례로 울렸다.


아빠 집에 반찬을 가져다주러 가도 석이는 없다. 예전에 엄마와 아빠가 살던 안방에는 아빠의 한문책들과 족보들만 가득하다. 옆의 석이의 방을 열면 빈방이다. 장례식 후 제부들과 함께 와서 장롱까지 다 정리했다. 이제 석이는 내머리속에서 빡빡 깎은 머리털의 감촉으로 느껴진다.

뜯지도 않은 택배박스안의 모자와 속옷은 조카준다고 언니가 가져가고 병실에 있던 야구공은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나는 청소를 하다가 책장에 놓여있던 공을 들어 천천히 돌려본다.

「나이스 캐치, 기사 클럽, 버스 브라더스, 힘내!, 파이팅, 사랑해, 꼭 돌아와, 승리!…」

이공을 던지면 석이가 씩 웃으며 받을 것만 같다. 그리고 용민씨와 동료들이 나이스 캐치라고 외칠것이다.

나는 공의 먼지를 조심스레 닦고 천천히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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