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저녁의 삼겹살 파티
4차선 도로 옆에 전원주택이 있다. 마침 식탁을 차리고 있던 윤우가 내차를 보고 뛰어나왔다. S팀장님과 나는 차에서 내렸다.
“윤우쌤, 은열쌤, 민쌤! 진짜 오랜만이네요!”
“네. 민하쌤, 신쌤도요.”
우리는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는 모두 사물놀이 동호회 아침소리 회원이다. 코로나 때문에 계속하지 못하고 간간히 했던 사물놀이 수업 이후 1년 만인 것 같다. 주택 옆에 감나무와 밤나무가 심어져 있고 식탁이 놓여 있다. 식탁 위에는 천막도 있어서 비가 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옆에 있는 텃밭에는 호박, 가지, 오이, 고구마, 배추들이 익어가고 있다.
“우리 집에서 삼겹살 파티할까요? 오시겠어요?”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말했다.
“아, 좋죠. 선생님 날짜 잡아요.”
S팀장님도 좋다고 해서 그 주 금요일로 모임을 잡게 되었다.
4년 전 직장 사물놀이 동호회 강사로 오셨던 L 선생님은 국립국악원 사물놀이 단 소속이다. S계장님이 국립국악원 직장인 동호회 지원 사업에 신청하면서 구청 사물놀이회가 생겼다. 처음에는 사물놀이 동호회에 50명이 등록할 정도로 잘되었지만 3년이 지나면서부터 사람들이 거의 모이지 않아 해체했다. 우리는 선생님의 제자들이 모인 아침소리라는 사물놀이 동호회에 들어갔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수업을 못한 지 2년째다. 결국 S 팀장님과 둘이서 L선생님에게 개인 레슨을 받은 지 6개월째였다.
선생님의 집은 화성에 있는 상가 전원주택으로 1층은 상가로 임대를 주었고 2층은 선생님네 별장으로 쓰인다고 한다. 평소에는 수원에 있는 아파트에서 지내다가 주말이 되면 텃밭 농사도 짓고 거기에서 기른 야채와 함께 야외에서 고기도 구워 먹는다고 했다.
금요일 오후 4시 반, 회사에서 일찍 출발했다. 6시 정도에 화성에 도착했다. 이미 선생님은 화로에 장작을 넣고 있다.
아침소리는 주로 국립국악원에서 수업을 받은 사람들 중에 더 오래 사물놀이를 할 사람들이 모여서 격주 일요일에 5시간 정도 집중 수업과 동호회 활동을 한다. 국악원에서 주로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을 많이 받아서 선생님들이 많다.
드디어 삼겹살 파티가 시작되었다. 6명이 모였다. 코로나 시국이라 다 부르지 못하고 최소인원만 모였다. 사람들은 삼겹살과 구운 김치를 먹고, 나는 진동하는 고기 냄새 속에서 오이를 먹었다. 이럴 땐 배지 테리언이라는 것이 좀 힘들기도 하지만 이건 내가 선택한 거니까. 고기 굽는 냄새에 아직도 군침이 돌았다. 그래도 버섯과 떡을 구워 먹으니까 좋았다.
따스한 가을 저녁이다. 아직 밖에 있어도 쌀쌀하지는 않다. 민쌤은 아침소리 회원 중에서도 가장 열심인 사람 중의 하나다. 30대 중반인데 아예 나는 예술이랑 결혼한다고 비혼 선언까지 한 사람이었다.
이십 대 후반에 이집트로 2년 동안 코이카(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해외자원봉사)를 갔던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때 쏟아질 것 같은 은하수도 많이 보았다고 한다. 은열 선생님은 레트리버처럼 생긴 큰 개 두 마리와 같이 산다. 아침소리 회원 중 몇 안 되는 남자다. 윤우는 유일한 20대로 엄마가 판소리를 해서 국악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다. S팀장님은 국악원에서 사물을 배운 지 벌써 5년째다. 구청 사물놀이회를 거쳐 나와 함께 사물을 배우고 있다. L선생님은 서양 무용학과를 나와 국립 국악원 사물놀이단이 되신 분이다. 부인도 한국무용을 하시고 아들도 무용을 한다.
같이 얘기를 나누면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 것 같았다.
저녁을 먹은 후 우리들은 장작불을 가운데 놓고 모여 앉았다. 우리는 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모두들 타오르는 장작불을 바라보았다. 요즘 유행한다는 불멍이다.
오렌지 빛 불길이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타올랐다. 불꽃은 장작나무를 투명한 검은빛으로 만들며 스산한 공기를 온기로 바꿔주었다. 불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옛날에 불을 믿는 화교(火敎)가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불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이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 못한 걸까? 아마도 대학교 때 캠프파이어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야옹, 야옹”
갑자기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노란색 치즈 고양이 한 마리가 삼겹살 냄새를 맡고 찾아왔다.
“아. 쌤들, 저는 안 먹었으니까 제꺼 고양이 줄게요.”
나는 쌤들의 눈총을 받으며 삼겹살을 챙겨 고양이에게 가져다주었다. 고양이는 잘 먹었다. 다 먹고 또 달라고 야옹야옹했다. 누가 키우는 고양이는 아닌 것 같았다. 먹이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고양이는 두 접시를 먹은 후 총총히 뒷산으로 걸어갔다.
나도 전원주택의 꿈이 있다. 햇볕 좋은 날에는 이불을 탁탁 털어서 2층 테라스에 널고 마당에 싶은 나무에 잎의 색깔로 계절을 알고 싶다. 아침엔 까치소리에 잠이 깨고 밤에는 부엉이 소리가 들려서 호젓해지는 그런 곳에서 자연과 함께 하고 싶다.
그때가 되면 친구들뿐만 아니라 고양이들도 초대해서 불멍을 해야겠다.
삼겹살 파티- 직접 재배한 야채들
늦가을의 불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