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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Sep 24. 2022

죽을 만큼 두렵겠지?

공원  고양이들 -44

  이제 슬이 방에는 아무도 없다. 그래도 강치는 하루의 전부를 장롱 위에서만 지냈다. 화장실을 갈 때와 밥을 먹을 때만 잠깐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다. 불안해서 잠도 안자는 것 같다.  

 사실 슬이 방은 이층 침대가 있어서 고양이들이 좋아했던 방이었다. 낮잠을 잘 때 이층에서 네 마리가 포개져서 모여 자곤 했었다. 갑자기 고양이들은 생애 처음으로 금지구역이 생겼다. 강치는 장롱 위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고양이들은 이상한 지 방묘문 앞에서 냄새를 맡으며 왔다 갔다 했다.

 “캣 타워 큰 거 하나 더 사자. 엄마. 다섯 마리면 캣 타워 하나로는 안 돼.”

역시 별이는 나의 파트너였다. 나는 별이가 고른 캣 타워를 바로 주문했다. 


  “강치! 안녕? 오늘은 뭐하고 지냈어?”

나는 매일 퇴근하면 책상에 올라가서 장롱 위에 있는 강치를 보며 말을 걸었다. 강치가 장난감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장난감도 열 개나 장롱 위로 올려다 주고 간식도 맛있는 것만 주었다. 하지만 반응이 없다. 며칠이 지나도 처음의 긴장된 자세로 똑같이 앉아있다. 내가 보이는 건지 안 보이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몇 개월 전 공원에서부터 내가 밥 주는 걸 보아왔기 때문에 분명 날 알 텐데. 

 “강치 왜 이렇게 반응이 없지? 공원에서는 개냥이였는데.”

내가 한숨을 쉬자, 오히려 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엄마. 나는 강치가 이해가 돼. 이렇게 힘들어하는 게. 강치 입장에서 생각해 봐. 공원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납치돼서 잡혀왔잖아?”


 오! 정말 그렇다. 강치는 구조가 필요한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개냥이라 집에 가서 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사람들의 판단 속에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잡혀왔다. 

 사실 우리 집에 있는 네 마리의 고양이는 집에 오는 것이 훨씬 나은 케이스였다. 우리 집 첫 고양이들인 쌍둥이 루이, 라온은 발견되었던 그곳에 살았다면 굶어 죽었을 확률이 높다. 보일러실 창고는 위험하기도 했고 근처엔 급식 터가 전혀 없었으니까. 새온, 아리도 마찬가지였다. 애기 때 왔어도 이미 엄마를 잃어버리고 며칠이나 굶다가 내게 구조된 것이었다. 

 새온이는 열흘을 굶어 장에 아무것도 없는 채로 출근길 횡단보도에 뛰어들었다지? 아리는 35도의 뜨거운 한낮, 차 안 보닛에 있었잖아. 집에 와서도 엄마를 찾느라고 삼일 동안이나 목이 쉬도록 울어댔지. 

 “새온이는 세 번 죽을 뻔했지. 두 달된 애기가 열흘 동안 굶어서, 횡단보도에 뛰어들어서, 또 신장 한 개 떼어내는 수술 하느라.”

나는 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의 대답에 말을 이어갔다. 

 “강치는 가족이 다 있었잖아. 공원에 엄마도 있고 형제들도 다 있었지. 집도 있고, 인간 친구까지. 근데 혼자서만 이상한 데 끌려왔으니 얼마나 무섭고 기가 막히겠어.”

 “강치 아저씨랑 정말 친구 같았어.”

별이의 말이 백번 맞다. 나는 이제야 며칠째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 강치가 이해되는 것 같았다.


 하루라도 굶어본 적이 있을까? 강치는? 

길고양이로 태어났다 해도 처음부터 돌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4월에 태어나 12월 초에 P님의 집에 갔으니 추위도 경험한 적도 없다. 공원에서 태어나 엄마인 엄치와 함께 살고 있었고 남매인 하치, 아치와 사이가 좋았다. 급식 터엔 항상 밥이 있었고 사람들은 점심시간마다 간식을 가지고 왔다. 애기 때부터 강치 아저씨와 아가씨 캣맘 S님을 만났다. 강치 아저씨는 장난감까지 가져와서 놀아주었다. 

 나무에 올라가서 놀고 아침마다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흙을 밟으며 형제들과 살았는데 어느 날 잡혀온 것이다. 공원과는 너무나 다른, 하늘이 보이지 않는 좁고 네모난 곳으로.

 죽을 만큼 두렵겠지? 꼼짝도 못 하도록 무섭겠지?

 내가 그랬다면 지옥에 빠진 줄 알 것 같다. 가족도 없이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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