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교류 활동이 부족했던 나는 어려서부터 스스로를 내성적인 아이로 생각했다. 친구들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할 때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랐고 목소리를 덜덜 떨렸다. 대중 앞에 나서기는 무엇보다 싫었고 친구들 뒤에 숨어서 대세에 맞추어 물 흐르듯이 흘러 가는 것이 마냥 편하고 좋았다. 그런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며 그것도 영업사원이 되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영업 & 마케팅 전략을 개발하여 PT를 밥 먹듯이 해야 했고 내 어깨에 놓인 책임감이라는 녀석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욱 더 높고 단단해져 갔다. 이 사회는 그렇게 외향적이고 전투적이며 독립적인 내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들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좋아한다. 물론 타인들을 배척하는 독단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친구들이나 마음이 맞는 지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과 추억들도 소중한 내 인생의 한 부분이다. 제주도 올레길을 혼자 걸으며 그 주변 환경이 주는 상쾌함을 만끽해 보기도 했다. 배가 고프면 언제라도 홀로식당에 들어가 나만의 속도로 식사를 즐기는 여유의 참맛도 알고 있다. 프로젝트 휴식기에는 한 번에 10~20권의 책을 주문해 쌓아 놓고는 그 동안 독서하지 못한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한 글자 한 글자를 아끼며 읽어 내려 가기도 한다.
대학 이전, 어렸을 때에는 혼자 밥을 먹으면 내가 왕따라도 된 기분이었다. 대학생이 되자 내 세상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원할 땐 언제든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강의 시간을 짤 수도 있고, 강의 신청을 하지 않았지만 내 스타일에 맞는 유익한 교수님의 강좌가 있다면 몰래 교실에 잠입해 도둑 강의를 들어본 적도 있다. 친구들이 말려도 복수전공으로 관광학을 들어보기도 했고 학점과 장학금에 상관없이 가장 어려운 강의들로 골라 듣기도 하였다. 주간에 개설된 강의를 신청하지 못한 경우에는 야간반에 개설된 동일 강의를 신청하기도 하였다. 이 때 야간반 학생들로부터 많이 욕을 먹었다. 이래뵈도 내가 성적우수장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학점을 뺏아가는 불청객이었으리라.
나는 홀로 정처없이 것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늘 가던 길보다 둘러 가더라도 새로운 길을 걸으며 주변 가게들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고 그 동네의 하늘을 올려다 보기를 좋아한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 내가 살던 이문역에서 서울역까지 종종 걸어갔다. 청계천을 따라 걸으며 주변 건물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내 눈에 담았다. 다리가 쑤시면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나 빼고는 모두 일상에 쫓기는 바쁜 사람들 같아 보여 내심 뿌듯했다. 당시에 나만이 느끼는 그 여유는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맛있는 감정들이었다.
결혼한 지 이미 10년이 흘렀지만 나와 똥띠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물론 2세가 없어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우리 똥띠가 일방적으로 나 혼자만의 시간을 존중해 주고 있는지도. 똥띠는 나와 완전히 반대인 종속이다. 혼자 여행도, 밥도, 쇼핑도, 산책도, 그 어떤 것도 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고, 또 웒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무엇이든 나와 함께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나의 기쁨과 행복을 위하여 기꺼이 나만의 시간을 존중해 주고 있다. 혼자 문을 닫고 들어가 하루종일 책을 읽어도 훼방을 놓지 않는다. 쓸데없는 자격증 모으느라 밤 늦게까지 공부해도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한 마디 말도 없이 비행기 티켓을 끊고 떠나 버려도, 며칠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도 묵묵히 그저 나를 기다려 주는 지원군이다.
불혹을 지나 흰 머리가 하나 둘씩 올라오니 나도 이제 사람이 좋아진다. 혼자만의 시간보다는 둘, 셋과의 시간이 설레인다. 나로 인하여 다른 누군가를 기쁘고 즐겁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내 주변 사람이 나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와 똥띠는 간혹 노년기를 상상해 본다. 둘 중 하나가 저 세상으로 간다면 어쩔 수 없이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고.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수없이 보내 봤지만 똥띠는 그렇지가 않다. 이제부터라도 훈련을 좀 시켜야겠다. 혼자 산책도 보내고, 여행도 보내고, 시장도 보내고, 요리고 시키고,,,,. 뭐 내가 똥띠보다 하루 더 살면 되겠다.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