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을 기다리다

다시 돌아올 푸른 하늘을 기다리다

by 아포리스트

해가 비치는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흐린 날이 대부분이고, 비 오는 날도 있다. 맑고 맑던 날들이 그리워지고, 눈을 찡그리게 만든 그 태양도 점점 보고 싶어진다. 하늘이 흐리니 시름만 늘고, 시름에 잠기니 칙칙한 모든 것들에게 미움을 주게 된다.


어쩌면 반대일 수도. 나의 흐림이 화창한 세상을 더욱 흐리게 만든 것일지도. 맑든 흐리든 붉든 푸르든 나에게는 흐렸던 날씨는 나와 숨은 나를 이어주는 또 다른 우물이었을까. 내가 흐리기에 흐렸던 날들만 남았고, 수많은 맑았던 날들은 모두 잊었던 것일까.


어쩌면 하늘은 우리의 모습을 비춘 또 하나의 호수일지도. 색을 잃은 우리를 투영하는 거대한 거울일지도. 하늘은 무지개를 원하기에 비를 내리는 것일까. 우리 또한 하나의 무재개가 되기를 원하는 것일까.


구름은 나의 밝은 태양을 가리니 참으로 밉고, 비는 추적추적 시도때도 없이 내리니 싫어지기만 한다. 깨끗해진 공기는 다음 날은 다시 혼탁하고, 젖은 땅을 오가며 괜히 웅덩이만 피해가니 차라리 해가 날뛰는 날이 나은 듯하다.


창밖을 봐도 늘 칙칙하니 그럴 일도 점점 줄게 됐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더욱 좋게 됐다. 무거운 한숨을 쉬며 하늘을 우러러 본 날도 훨씬 줄게 됐다. 오늘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외면하며 언젠가는 다시 비칠 태양을 기다린다.


비가 내리고 그쳐도 무지개가 고개를 내미는 일도 줄었다. 그것 또한 색을 잃어가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으니 마음이 아프다.


태양이 있었던 날이 있었고, 언젠가는 밝은 태양이 구름 사이를 뚫고 그 모습을 비출 것이나, 오늘만큼은 흐린 내 마음이 복받쳐 비에 섞여들어 사라질 눈물을 흘려본다.


오늘도 많은 일이 있었다. 흐린 때가 있고, 비가 그때 섞여 들어와 더 흐리게 하고. 그것을 맑은 때가 중화시켜 주니 원점에서 다시 내일을 기다린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행복함이라는 건 맑은 날이 더욱 각인되었기 때문이고, 불행이라는 건 흐린 날이 더욱 각인되었기 때문이지, 어쩌면 그 둘의 삶에는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흐린 날은 어째서 그렇게 진하게 기억에 남는지. 오늘은 또 비가 와서 더욱 기억에 남겠다. 그저 그것들이 내 속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맑은 날들을 해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비구름이 너무나도 질렸으니 맑은 날을 기다리게 되지만, 흐린 날이길 바라는 건 비가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내가 어떻든 그대가 어떻든 오직 있는 것은 흐린 구름과 비뿐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는데도 이 비는 영원히 내릴 것만 같다. 그 비가 그치고 얼마 안 되는 청명한 밤이 오기라도 하면 나는 비가 내리기를 원치도 않지만 다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린다.


회색 위에 숨어있는 푸른색은 보일 기미가 없다. 다채롭던 하늘의 색은 이제 회색과 검은색, 오직 둘만 남았다. 비가 억수로 쏟아져 저 흐린 하늘이 씻겨져 내려갔으면 좋겠지만 요즘은 비도 구름의 벗이기에 차라리 없기를 바란다. 무지개가 있으면 좋겠다만 구름만 남기에 차라리 억수로 쏟아지기를 바란다.


하루하루가 간다고 하지만 그저 가기만 할 뿐 변함이 없고, 이제는 일기예보는 볼 필요도 없게 됐다. 내 마음이 흐리듯, 내 하루가 어둡듯, 하늘도 변함없이 흐리기만 하다.


하늘을 그리라고 하면 나는 회색을 그리겠다. 푸른 하늘은 본 지 오래돼 그릴 자신이 전혀 없다. 이미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을 푸른 하늘, 내일도 모레도 그는 오지 않겠지만 나는 그래도 기다리겠다. 붉게 물드는 모습, 푸르게 빛나는 모습, 모두 돌려받고야 말겠다.


하늘을 그린다. 회색으로, 검은색으로, 칙칙하고 어둡게 그린다. 종이를 회색으로 물들인다. 참 하늘과 똑 닮았다. 자세히 보니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다. 매일 봤었던 그 하늘이 아닌, 다른 것을 그린 건가? 분명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나를 둘러싼, 모두를 둘러싼 벽들인가? 웅장하고도 거대한 것이 정말로 똑 닮았다. 사방팔방에서 나를 가로막고 있는 웅장한 벽들, 건물들. 다른 것 없이 하나같이 모두 차갑고 압도적인 건물들, 창백한 회색이 참 닮았다. 하지만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얼어붙어버린 우리의 마음인가? 전부 까맣게 물든 모습이 참으로 닮았다. 누구 하나 신경쓰지 않는 무심하고 차가운 그 모습이 무척 비슷하다. 붉은색, 푸른색 할 것 없이 칙칙한 게 다를 바가 없다. 그래도 아직 불씨 하나는 남은 우리라기엔 너무 어둡지 않은가?


아, 알았다. 이 그림은 우리였구나. 하나같이 다를 거 없는,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하나 사라져 봤자 두 눈을 씻고 찾아봐도 달라진 게 없을 우리들과 완전히 똑같구나.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모두 회색뿐인 우리들을 그려버렸다. 회색, 회색 얼굴, 회색 마음을 지닌 우리들을 그리고 말았다. 진실은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았겠구나. 하늘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던 그때가 더 나았는데.


조각난 이 세상은 숨은 태양을 끌어올리기엔, 흐린 구름을 걷어내기엔 너무 약하고 약하다. 모든 것을 증오하고, 모두에게 미움받고, 증오가 모든 것을 가르고 있다.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비극을 초래하고 있다.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위에 선 우리들은 마치 하늘과 땅이 만나지 못하듯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둘 사이의 구름이 하늘과 땅을 막는다.


증오가 구름을 만들며, 분열은 비를 내린다. 비는 다시 구름이 되어 영원히 태양을 막는다. 합쳐지지 못하고, 공존하지 못하고, 그저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 뿐인 우리는 결코 하나의 점에서 만나 구름을 걷을 수 없는 것인가. 태양을 볼 수 없는 것인가.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태양을 볼 날이 올지도 모른다. 구름이 걷히고 비가 그치고, 증오와 분열, 미움과 혐오가 사라지는 그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이 위아래 없이, 하나가 하나로서 인정받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겠구나. 아직 날이 흐린 것을 보니 오늘만큼은 흐리겠구나. 아직은 우리가 맑은 날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건가? 오늘도 구름은 그대로 있고 비는 가끔씩 내린다. 우리도 아직 하늘을 보기엔, 푸른 하늘을 보기에는 덜 성숙한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는 구름을 뚫고 해가 비춰올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


아, 오늘은 결국 하늘이 개지 못했구나.


해를 본 지 오래됐다. 해의 밝음을 잊었고, 해의 따뜻함을 잊었다. 푸른 하늘을 잊었고, 붉은 빛깔도 잊었으니, 가슴속에 남은 것은 회색뿐이다.


창문 너머 본 하늘은 늘 회색이지만, 지금 나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그 밑의 모든 것들까지 회색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슬픈 것은 맑은 날이 오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흐린 날이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밖이나 안이나 모두 칙칙하기도 하지만, 더욱 슬픈 것은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기다릴 것이다. 맑은 날이 오기까지, 푸른 하늘이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모든 것이 본연의 색을 되찾기를 기다릴 것이다. 봄에는 꽃 속에 섞여들고, 여름엔 맑고 맑은 하늘과, 가을엔 붉게 노랗게 물든 잎사귀들과, 겨울엔 찬바람을 타고 백설에 묻히는 그런 때, 그런 날이 오기까지를.


아직은 멀었다. 해는 오늘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해에게 이런 추태를 보이고 싶진 않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색을 되찾았을 때 해는 이미 떠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해를 기다리는 것이지? 그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인가? 흐린 날이 여간 싫은 게 아니라서 그런가?


내가 기다리든 아니든, 바라든 바라지 않든 비와 구름은 아직도 하늘을 덮고 있구나. 내일은 분명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겠지. 내일은 또다시 흐린 날일 것이고, 어쩌면 비가 올 수도 있고. 그러면 나는 내일 다시 해가 곧 비치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흐릴 것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해를 기다리고 있겠지. 내일은 또다시 어제의 세상으로 돌아가야겠지.


해가 뜨고 지고, 하늘이 맑게 푸른 날,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겠지만, 오늘 이 비는 영원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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