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내고 다듬자. 모든 것을 조각하자. 거친 바위들을, 모난 돌들을 더욱 아름답게 조각하자. 네모나고 둥글게, 아름답고 보기 좋게 만들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자. 볼품없고 보기 싫은 모든 것들을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변모시키자. 갖가지 날뛰는 돌과 쇳덩이들, 모두 조각으로 만들어내자.
말 안 듣는 재료들은 더욱 모질게 다루어 거칠고 올곧게 그려내자. 순한 것들은 보듬어 주며 살살 다뤄 부드럽고 둥글게 조각하자. 하나의 조각상이 되어 모두의 환호를 받아라. 너는 기록으로서 남을 터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은 더는 없을 것이라고.
네 아름다움은 수십 세기가 지나고도 변치 않을 것이다. 그 누가 태산을 뒤엎으려는 의미없는 짓을 하리. 지금은 비록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완성품은 아름다울 것이다.
무미건조한 다채로운 너를 그 어떤 작품이 따라가리. 아, 그 돌멩이는 추했으나 아름답구나. 아름답지 못한 화려한 것들이 박수를 받고 있으니, 그래, 너도 하나의 추한 조각상이 되거라.
나는 모든 것을 조각합니다. 조각가라고도 불리지요. 시궁창에서 찾아낸 돌을 깎아내어 작품을 만들기도 하며, 아름다운 광택을 내는 것들을 녹여 틀에 맞추어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의미있는 것은 이 거칠고 쓸모없는 것들이 모양을 갖출 때의 그 아름다움이랍니다.
사람들은 나의 작품에 박수와 갈채를 보냅니다. 감동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하게는 눈물을 흘리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동요됩니다. 더욱 많은 조각들을 원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다시 작품들을 조각해냅니다. 더욱 아름다운 듯, 더욱 웅장한 듯, 더욱 화려하게 보이도록 조각해냅니다.
제게는 수많은 돌과 쇳덩이들이 외쳐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신을 조각해달라고 부르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그중 가장 아름다운 돌을 골라내어 더욱 아름답게 만듭니다.
개중에는 저의 손길을 밀어내는 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추한 모습을 고집하는 돌들과 쇳덩이들이 있지요. 그러면 저는 더욱 힘주어 깎아내고, 더욱 뜨겁게 달구어 기어코 그것들을 조각해내지요.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주지요.
참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들은 조각상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일까요? 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박수와 갈채를 받으며 감동을 주기를 원치 않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 돌들은 제 가장 깊은 비밀을 아는 걸까요? 아참, 제 비밀에 대해서는 당신만 알고있는 게 좋겠네요.
하지만 저는 제 작품들을 보며 딱히 동요되진 않습니다. 아름다운 자태와 영롱한 빛깔을 보고도 별 감흥은 없군요. 그들도 이 사실을 알기에 조각되기를 원치 않는 걸 수도 있겠네요. 당신도 제 비밀을 알고 나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래도 제 작품이 많은 환호를 받으니 그건 참 좋은 것 아닌가요?
생각해보니 어차피 당신이 비밀을 퍼뜨려봤자 상관은 없겠군요. 어쨌든 사람들은 영원히 제 작품을 갈망할 것이에요. 설사 당신의 입이 가볍다고 해도 제가 크게 고민할 일은 없어요. 당신이 제 비밀을 알려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이런 게 제일 나은걸요.
제 작품들에는 큰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당신은 눈치채셨나요? 아마도 몰랐을 거예요. 저도 몰랐다면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니까요.
이 아름답고 다채로운 조각들에는 다를 바가 전혀 없답니다. 그저 재질, 기법, 세세한 요소만 다를 뿐, 본질은 모두 같답니다. 그게 다른 것 아니냐고요? 메세지가 같으면 차이가 있는 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오십보백보이듯이, 제 조각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모든 조각은 자신이 제일 아름다움을 외치지만, 글쎄, 비밀을 아는 저에게는 그저 도토리 키재기로밖에 보이지 않네요. 조각상에 날개가 달려 날아오르지 않는 이상,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이란 것 자체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한 문장 안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런 것들에게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줄 수가 있을까요?
조각상이 아무리 화려해봤자 인간을 따라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조형물을 그 누가 재창조할 수 있을까요? 저 또한 그와 닮은 물건을 만들어내려 할 뿐,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인간보다도 아름답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패러독스, 이것이 예술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제 눈에는 둘이 참 닮아있더군요.
조각들에는 각기 다른 메세지가 있다지만, 그건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럴 뿐, 하나하나 다를 거 없는 어린 양이랍니다. 하나는 광택이 나고, 하나는 회색으로 물든 조각상, 하나는 사람, 하나는 동물이라지만, 모두 관중들에게 순종하는 하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제 작품들로부터 아름다움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색은 있지만 없고, 화려하나 건조하니 어찌 그것을 아름답다 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것은 오직 인간뿐, 그러나 닮았다고 이야기했지요?
제 조각상의 비밀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혼의 존재를 믿습니까? 사실 저도 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있는 것들에겐 그렇지 않은 것들과 무언가 다른 작용이 있다고는 믿습니다. 제 조각상에는, 그런 것이 없단 말입니다. 그냥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조각상이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느냐고 묻겠지만, 접근을 한 번 바꿔보시지요. 살아있지 않기에 아름답지 못한 것 아니겠습니까? 공장에서 움직이는 기계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스위치 하나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와 비교하면 참 비슷하지 않습니까? 어찌보면 기계가 더 낫다고 할 수 있겠군요. 기계는 무언가를 찍어내기라도하지, 제 작품들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죽어있는 흉물 아닙니까?
'조각된' 것들이 어찌 아름다움이라는 특권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만들어진 것들은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깎고, 그것을 버텨낸 고귀한 것들만이 아름다울 수 있지만,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사용된 돌이 아무리 화려해봤자 그것은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야기했던 저항하는 돌들은 추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름답기에 화려함을 거부하는 것일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제 작품들은 너무나도 화려합니다. 티 하나 없는 옥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사들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그들의 흉터와 칼자국들이 그들의 발길을 보여주기 때문이며, 철학자들의 고뇌가 더욱 찬란하고 감동적이게 와닿는 이유는 그들의 가슴속에 깊게 박힌 쇠못 때문이랍니다.
티 하나, 흠집 하나 없이 매끈한 제 조각들은 그저 아름다움을 모방할 수밖에 없답니다. 그들은 그저 예술가가 만든 자들일 뿐이거니와, 그들에게는 세월과 상처, 고난이 만들어낸 흉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수백 년 동안 어디 한 곳에 전시돼 있었던 그것들에게 흉한 아름다움이 있을까요? 그렇기에 그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고귀한 것들의 표절작에 불과합니다.
한 멍청한 예술가는 그냥 돌을 작품이라고 전시해 놓았더군요. 군중의 많은 비난을 받았죠. 어디서 주워온 돌멩이를 갖고 어떻게 예술이라고 말하냐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냐고요? 아뇨, 저는 그 예술가는 굉장히 천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시대를 잘못 만났을 뿐이지요.
물론 그의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랍니다. 그는 그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인정받고 응원받는 그런 예술가가 되겠죠. 아마 그와 비슷한 예술가들은 모두 같은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그저 대중의 생각을 읽지 못했던 것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을 그 생각을.
그런 예술가들이 인정을 받을 때가 올 가능성이 있냐고요? 전혀. 고대, 바로크, 야수파, 사실주의... 많은 예술 사조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모두 같았습니다.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모방해내는 것.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잘못된 방식으로 그 접근을 해왔죠. 방향이 어떻게 전환될지는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합니다만, 아마 그 접근법을 바꾸는데에는 300년은 걸릴 것입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아직 그것들이 완전히 예술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합니다. 순수한 자의체의 아름다움, 그것을 깨닫는데 또 몇 년을 써야 할까요. 아니, 영원히 깨닫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바위로 건물을 쌓기는 참 힘들잖아요? 변한다는 건 디자인뿐, 뿌리를 뽑아 옮겨심진 못했군요.
앞으로도 끊임없이 무언가 변화가 있을 것이고, 무언가 새로운 게 있을 것이지만, 영원히 바뀌지 않는 무언가는 항상 남아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상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겠지만, 사람의 보편적인 그 마음이 변치는 않을 것입니다.
변화라고 이름지은 퇴보는 항상 같았습니다. 더욱 효율적으로, 더욱 안정적으로, 더욱 보기 아름답게 발전해 온 겉보기에 지나지 않았지요. 저는 이것을 변화라고 인정하겠습니다. 아래로, 더 깊이 내려가기 위한 변화.
예술 역시 사람들의 비위에 더욱 맞추기 위해, 더욱 궁극적인 목표에 맞추기 위해 발전해 온 것입니다. 경로이탈자들은 결국에는 비극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가지를 쳐서 나무의 모양을 바꿔내는 일은 매우 힘들지만, 뿌리까지 뽑아내어 다른 나무를 심는 일은 더더욱 힘듭니다. 지금 우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이것보다 더 잘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네요.
제가 그런 시대가 오길 바랄까요? 돌멩이 하나가 돌멩이 하나 이상의 가치로서 인식될 수 있는, 그 개인의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을, 근간의 교체를 바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어쨌든 울퉁불퉁한 바위보다는 조각상이 보기 좋으니까요.
미술관에 가면 모두들 그림, 조각 등을 보러 오지, "내가 본 예술품이라고는 미술관 화장실의 소변기 밖에 없더라."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정신병원에나 가보라고 할 것입니다. 저라도, 당신이라도 그럴 것 같네요.
우리는 이미 하나가 되었습니다. 통일과 화합을 부르짖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모두 하나의 줄자를 갖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이상 통일해야 할 것이 뭐가 있을까요.
이미 단단한 석재로, 견고한 청동으로 굳혀버린 나의 조각상, 그들의 조각상, 우리의 조각상. 앞으로 만들어질 조각상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할까요? 화려함이라는 흉을 덮어쓴 그 동상을 보며 나와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할지.
그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변치 않을 추한 우리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