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by 아포리스트

가면을 쓴 자는 행복하다.

가면을 썼기에 행복하다.


그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그 마스크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오직 비탄만이 있게 된 그들의 최후의 보루이자 미소를 띤 안식처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상처와 흉터, 깊은 근심과 일그러짐을 숨겨줄 수 있는 얼굴뿐이지만, 그렇기에 행복하다.


우리가 쌓아온 가면을 천리만리 떨어지게 된 다른 이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어 행복하다. 그들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두 번째 얼굴은 그들을 맞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나도, 아무도 모른다. 모르는 게 낫겠다 싶다. 흉측한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아 더욱 벗을 수 없게 만든다. 결국 그 표피는 나의 얼굴이자 외모가 되었다.


본질을 받아들일 자는 없고, 그것을 아는 자도 없다. 가면을 벗겨낸 자도, 눈물을 드러나게 한 자도, 그 자의 흉측함에 일그러진 얼굴을 숨길뿐이다. 어쩌면 그 정도로 어리석기에 타인의 가장 깊은 부분을 꿰뚫고자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모르는, 나조차 잊은 나의 모습을 다시 드러내기 위해, 가면을 벗겨내겠다. 망망대해에서 잃어버린 심해 속에 가라앉은 것을 되찾기 위해 나는 나의 마스크를 찢어내겠다.


단단한 대들보와 그것을 바치는 기둥을 하나하나씩 빼가는 위험천만한 젠가를 뒤엎겠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마. 더 이상 페인트와 장식으로 그것들을 가리지 않으마. 화려하지 않고, 도리어 추할지라도 무너지지 않는 그 단단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


색이 늘 변하는 가증스러운 카멜레온 같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겠다. 비 속에서도, 쨍쨍한 햇빛 속에서도, 검푸른 바닷속, 칠흑 같은 밤 속에서도 늘 하얗고 고운 자를 경멸하겠다. 등 돌리면 변하고, 하룻밤 지나면 바래는 나를 욕할지라도, 그 모습을 증오하는 자가 있더라도 나는 그것을 사랑하겠다.


벗은 자를 욕하고 침을 뱉어라. 추한 모습을 마음껏 드러내며 아랑곳하지 않는 자를 비웃고 경멸하라. 그러면서도 그 자를 향해 미소 지은 너를 보며 박장대소를 터뜨려주겠다. 경멸을 숨긴 너에게 나는 그런 너에 대한 경멸을 분명하게, 선명하게 보여주겠다.


눈물을 보이는 그 자를 무시하고 외면하라. 일그러진 모습을 욕하며 그 추태를 농락하라. 울지 못하는 너희들은 글쎄 얼마나 기쁘냐? 눈물이 차올라도 미소만 지은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가? 가면이 만들어낸 너희의 귀에 걸린 웃음보다 일그러진 흉측한 얼굴에서 만들어진 눈물이 훨씬 더 아름답다.


불변은 역겨우며, 변함은 본질이다. 미소는 가증스러우며, 흉측함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오직 겉모습, 그것도 거짓된 것이 변하지 않을 뿐 본질은 항상 변하게 되어 있다.


거짓을 거부한 우리의 모습을 경멸스럽다 하지 말아라. 너희의 표면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전혀 고귀하지 않다. 진실을 인정한 자만이 고귀한 모습을 가진다.


그 진실된 모습을 추하다고 하지 말아라. 그것을 누가 만든 것이냐? 본래는 아름다웠던 진실된 모습을 답답하고 독한 가면이 썩힌 것 아니냐? 너희가 거짓된 가면으로서 가리려는 본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 것 같으냐? 오히려 거짓을 부인하지 않은 너희의 진실이 더욱 추할 수도 있다.


회의된 자는 듣고, 허무한 자 또한 들으라. 너희의 그 도탄과 슬픔은 거짓으로부터 온 것이다. 너희의 본모습이 추악해서 그런 것이 아닌, 너희는 그 아름다운 가면의 독함에 예민했기 때문이다. 진실된 것을 찾을 수 없는 모두에게서 온 것이다.


이제는 인정할 시대가 왔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자신만을 남긴 자만이 진정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때가 와야 한다. 파도가 더욱 거세지는 지금이 자신의 가면을 더욱 꽉 잡고 숨길 때가 아닌, 파도를 따라 변해가는 자신이 될 시대가 온 것이다. 아니, 온 것이 아닌, 와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것이 변하는 이곳에서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리이다.


꾸밈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흉측함을 가리기 위해서 사용되어 왔다. 위로라는 것은 추해 보이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경멸했기에 그것을 갈망한 것이고, 일그러진다는 것은 자신의 흉측함에 더욱 내면이 일그러지게 된 것이다.


꾸밈, 위선, 위로, 연민, 자기 증오. 이 모든 것은 진실을 더욱 멀게, 더욱 추하게 만드는 대용품일 뿐이며, 오직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쓸모없는 것들이다. 꾸밈과 가식은 그저 자신을 더 아름답게 내보이기 위해 사용된 흉측한 아이러니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꾸밈을 통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자신을 만들어낸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저 자신이 본모습을 증오했기에 만들어낸 나약한 자의 가림막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고서는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 되었을 때, 오직 웃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얼굴을 벗겨내기를 원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었다!


위로? 그 얼굴을, 그저 거짓에 지나지 않는 그 얼굴로 위로를 바라느냐? 아니면 그대의 본모습이 싫은 것인가? 어느 쪽이든, 그대는 그러한 관대함을 받을 자격이 없다. 진정한 모습을 사랑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필요가 없을뿐더러, 행복하다. 가짜를 덮어쓴 자는 불행하고 우울하나, 위로를 받을 자격이 없으니, 그것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엇 때문에 그대의 본모습이 보기 싫은 모습으로 변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아름다움을 가리려고 했던 가면의 탓이다. 본래 아름다웠던 본모습에 대한 필요 없는 증오, 열등감, 그리고 거짓에 둘러싸이며 받은 그 오물과 독이 그대의 진정함을 오염시켰다.


늦었을지 몰라도, 탐탁지 않을지 몰라도, 진짜 그대를 사랑할 때가 왔다.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자랑스러운 그 모습을 오히려 보이는 것이, 거짓과 위선으로 둘러싸인 그 모습보다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남들이 싫어할지라도 그게 뭔 상관인가? 흉물로 점 칠하느니 차라리 증오를 받겠다.


사랑과 관용, 포용과 배려. 이들은 모두 자기애로부터 온다. 거짓 속에 그대의 모습을 내던지지 말라, 오히려 그것을 드러내도록 해라.


차라리 편할 것이다. 차라리 행복할 것이다. 그대의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무지갯빛 빛깔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더 행복할 것이다.


따뜻한 햇살이 다시 비쳐오고, 제대로 보일 것이다. 흐릿하게 보이던 세상이 다시 선명히 보일 것이다. 설령 그들의 웃음 속에 칼이 숨어 있을지라도, 결코 베이지 않을 것이다.


가면을 벗은 자만이, 진정으로 행복하다.

자신이기에, 진정하기에, 나이기에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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